상하이에서 일을 하면서 자녀계획을 하고 있었다. 환경오염, 먹거리 오염, 치열한 교육경쟁, 교육비, 복잡한 교통. 아이들의 모국어 문제 등의 이유로 상하이는 잠시 거쳐가기에 좋은 곳이었지, 삶의 터전으로는 조건이 불충분하고 생각했다.
남편은 브라질에서 자란 독일인으로, 가족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렇다고 내게 한국이 그렇게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도움이 필요할 때 가족이 쉽게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자 연장이나 거주증 등록의 문제로 항상 골치가 아플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거기에 살 큰 이유는 없었다.
그보다는 남편이 여전히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고, 그가 독일어를 잘 하는 이상, 독일에서 적응하기 쉬울 거라고 판단했다. 독일은 친정(한국)과 시댁(브라질)의 딱 중간 지점이었다. 시댁 식구들이 우릴 보러 오면 그 참에 친구들도 친척들도 만나면 되고, 또 그들이 브라질에서 아쉬워하는 소시지, 자우어 크라우트도 맛보면 된다.
외국에 사는 이유
한국이 아니었던 이유는 내국인으로 사는 것보다 외국인으로 사는 것이 편했다.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외국인이니깐 예외로 이해해주는 것들의 ‘혜택’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불리하면 못 알아들은 척하기. 외국인이니깐 내국인과 똑같은 기준으로 살 필요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수의 시선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거다. 남과 다른 내 가치관을 드러내기 두려웠다)
멀어진 친정 가까워진 시댁
상하이에 있을 때 가족 모두가 우리를 보고 갔다. 시댁 식구도 한 번 왔다. 그러나 독일에 온 이후로는 조카를 빼고는 6년 동안 심지어 둘째 아이를 낳을 때도 가족들이 안 왔다. 한국 사람에게 독일은 멀고도 먼 나라인가 보다.
내 결정 덕분에 1년에 한 번씩이나 시댁 식구를 만난다. 생각보다 친구들도 친척들도 많이 없으셔서 집에만 계신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내게는 독일식 집 구조가 이럴 때는 참 편리하다. 3층 다락방에 사람이 올라가면 삐거덕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응하기 힘들다
독일은 우리가 터전을 내리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국적만 독일일 뿐이지, 브라질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10살 때부터 거기서 자랐고, 집에서 가족들하고만 독일어로 대화를 했다. 독일어에 미세한 어감 차이와 문화 차이 때문에 독일에서 정식 첫 직장 생활을 힘들어했다.
나도 심사숙고한 또 한 번의 외국 생활은 아이와 함께라서 더 힘들었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독일에 도착했고,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지내야 하는데 아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시어머니가 한 달 정도 있어줬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 또한 힘들었다. 독일 말도 못 하고, 혼자 아기는 어떻게 키워야 하나, 그래도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지금 같은 행복한 시간도 있다.
독일에 기대했던 것
교육
조기 교육이 일반적이지 않는 교육 환경이길 바랐다. 아이들이 그저 뛰어놀 수 있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독일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아무리 시골이라도 잘 갖춰 있다. 플라스틱 고무바닥이 아니라 나무토막으로 땅을 덮어 낙상 부상을 줄이고, 거의 모든 놀이기구가 철이나 나무로 만들어졌다.
병원에는 항상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나 책 코너가 설치되어 있다. 아이들이 늦게 걸어도, 그게 답답하다는 듯이 혹은 쌀쌀맞게 스쳐 가는 사람도 없다.
한 일례로, 지인의 아들이 알파벳을 다 외웠고, 어느 날 그게 유치원 교사에게 발각? 이 됐다. 유치원 교사는 지인에게 혹시 집에서 알파벳을 가르쳤냐고 추궁했다는 거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알파벳을 체계적으로 천천히 배운다고 한다. 조기교육은 지양한다는 게 교육방침이라고. 이것만 들어도 기대한 만큼의 교육여건인 것 같아 만족스럽다.
시정부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200유로(내가 살고 있는 곳은 205유로) 정도 양육수당을 받고 있으며, 이것은 아이가 다 성장할 때(만 18세)까지 받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은 회사와 연계돼 있어, 이 회사에 파견된 외국인의 자녀, 엄마가 회사에 근무하는 조건을 우선으로 아이들을 받아들인데, 한 달에 밥값 포함해서 두 아이의 유치원비로 562유로(아이가 3세 미만일 경우 더 많은 유치원비를 내야 한다. 하루 8시간 보육 기준)를 내고 있다. 남편 월급 기준으로 그렇게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다. 또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이다. 대학교도 거의 무료이지만 관리비 50 내지 70유로를 내야하고, 간혹 2학년이나 졸업학기 때 500유로 정도의 학비를 내야 한다. 아직 사교육비가 얼마나 들지, 교육경쟁이 얼마나 치열할지 모르지만, 희망적인 것 같다.
교통
교통이 한적하다. 이건 독일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시골에 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도시에서도 교통이 그렇게 복잡한 것은 못 느껴봤다.
한국 남자들 (실제로 독일 아우토반에서 속도 무제한으로 달리고 싶다는 한국 남성을 세 명이나 만났다.)이 말한 것처럼 이렇게 좋은 도로에서 무제한으로 운전할 수 있다는 것 큰 행운이. 유럽 어느 나라에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무료다. 물론 세금에 포함된 것이만 그 덕분에 남편은 세금을 아주 기꺼이 낸다. 브라질은 세금을 내더라도 세금으로 혜택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고속도로는 비극 넷을 내야하고, 이탈리아는 통행료를 내야 한다.
생활 환경
우리는 센터에서 2킬로 떨어진 구역에 사는데, 이 구역에서부터 다음 도시까지 자전거 도로가 연결돼 있다. 독일은 자전거 도로가 도로와 붙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보통 도시의 경우), 대게는 자전거 도로 혹은 보행도로라고 해서 분리해서 만들어 놓는다. 이 길은 포장도로와 비슷한 수준이며, 숲에는 자갈로 포장된 산책로가 어디로든 이어져있다.(실제로 잘 못 들어갔다가 쉽게 길을 잃는다) 이런 자갈로 산책은 독일이 최고인 것 같다. 이 자갈은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움푹 파이게 되는데, 어느 날 가보면 새 자갈로 메워져 있다. 산책로 옆에 무성한 풀을 깎는 기계가 있어서, 임업종사자가 시즌에 맞춰 깔끔하게 정리한다. 그 산책로에서 조깅하는 게 좋다. 도시와 도시 간에 산책로를 따라, 아님 도로 옆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걸으면 거의 어떤 곳까지도 갈 수 있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와 걷기에도 좋다. 독일은 어디를 가나 들판이 푸르게 잘 조성되어 있다. 이 분야 관련 일자리가 많은 건지, 기계가 잘 발달돼 있어서 그런지 관리가 거의 완벽하다. 풍경이 아름답다.
공기는 어떨까? 좋다. 실시간 대기 질 지수 시각도를 비교해보면, 한국이 노란색(보통)인 반면 독일은 거의 초록색이다.
언어 문제
중국에서 살면 아빠의 엄마의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더 많이 써야 했다. 또 한국어, 독일어, 중국어 이외도 국제 학교를 다니면 영어도 해야 할 판이었다. 여러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4가지는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어떤 것을 모국어로 삼을지도 걱정됐다. 그들이 배워야 할 언어가 적어도 우리 가운데 어느 한 명과는 완벽하게 소통하기를 바랐다. 독일에서는 아빠 말을 모국어로 하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거기다 아이들과 시댁 식구들의 언어소통이 편리하다.
(가끔씩 아이들이 남편과 자연스럽게 독일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면 부럽다. 아무리 독일어를 잘 해도 집중하지 않으면 한국어처럼 들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말을 본의 아니게 씹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사실 조금 불편하다. )
먹거리 안전 여부
독일의 먹을거리는 유럽에서도 실제로 우리 입맛에 맞는다고 하지만, 외식을 하면, 소시지 빵,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리스 레스토랑, 베트남 아시안 식당 사실 외식 옵션이 적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시골에 살고 있어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집 밥을 해 먹고, 또 그게 건강하다. 건강한 빵을 싼 가격에 살 수 있고, 유기농 슈퍼의 컨트롤도 잘 되는 편이고, 지역 유기농 농장도 잘 돼 있다. 스페인이나 모로코에서 온 유기농 파프리카와 오렌지가 얼마나 믿을 만한 먹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보다 나을 거라고 믿고 싶다.
Made in Germany. 내구성이 뛰어나 한국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독일의 제품이 19세기에는 영국의 칼과 가위에 비해서 품질이 떨어졌다. 오죽하면 소비자들을 저 품질 독일 제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영국은 1887년 상품의 생산국을 표기해야 한다는 상표법을 통과시켰다. (Erfolgreich in Alltag und Beruf) 80쪽 발췌문 당시에 독일제가 지금의 중국제와 다름없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재미있다.
거주문제
다행히 남편이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무기한 영주권을 얻어서 비자 문제도 없다.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가 많다. 운이 좋게도 거리에서 알게 된 친구, 독일어 수업에서 알게 된 친구, 또 아들 유치원 엄마들 등 친구 덕분에 가족 없이도 외국 생활이 외롭지 않다.
독일에서의 삶은 만족스럽다.
독일 사회가 어떤지 깊이 알아볼 심산으로 일을 하고 싶다. 이 사회에서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처음으로 어떤 나라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고 싶어졌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적응을 완벽하게 한다면 어느 곳이라도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