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가지 언어

독일어, 영어, 한국어

by 원더혜숙

저희 집 식탁에서는 세 가지 언어가 오갑니다.


아이들과 저의 언어는 한국어입니다. 독일에서 한국어를 듣고, 말할 기회가 적어서, 한국어로 계속 이야기하는데도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별로예요. 한국어로 말을 하면, 이해하고 독일어로 대답해요. 물론 한국에도 자주 오지 않았고, 일부러 한국 만화도 보여주지 않았어요. 인풋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에 원인인 것 같아요. 다행히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좋아졌어요. 한 달 즈음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이제 자신 있게 한국말을 해요.



유치원에 간 후로부터 아이들의 독일어가 저보다 한 수 위입니다. 못 알아듣는 단어가 있으면, 서로 알려주기로 했어요. 아이들이 한국어를 못 알아들으면 한국어로 설명을 해 줍니다. 또 독일어 단어를 찾아주고, 함께 단어를 익혔어요. 독일어 실력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이들이 배우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고, 아무래도 외국어다 보니 집중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이야기해도 들리지 않아요. 한국어는 의식하지 않아도 다 들리는데 말이죠. 그래서 아들이랑 얘기하는데도 답답해요. 여러 번 설명해줘야 하고, 말도 천천히 해야 해요.

그런 점에서 모국어로 대화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제가 한 선택이에요. 가족들과 언어로 인한 오해가 어쩌면 언어적 장벽으로 조금은 줄어든 것 같아요. 같은 말을 하면 그 말이 뼈 속 깊이 새겨져 외국어보다 더 큰 상처를 입어요. 반면 외국어로 대화하거나 한쪽이 제 말을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하면 똘레랑스를 발휘할 수가 있답니다. 가족에게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운명의 지시라고 생각하고 감내하고 있어요.


남편과는 영어로 대화해요. 중국어로 하다가, 영어로 바꿨어요. 가끔씩 비밀스럽게 중국으로 대화를 하지만 우리의 공식 언어는 영어예요. 중국어에서 영어로, 공용어를 바꾸었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영어에서 독일어로 바꿀 수 있음에도, 남편과 독일어로 대화하지 않는 이유는 영어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독일어는 밖에 나가서도 충분히 쓸 수 있고, 친구들과도 독일어로 소통하니깐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말싸움에서 남편을 이기지 못할까 염려도 있어요. 문법 다 틀려가면서 이야기하지만, 영어에 대한 감각만은 잃지 않고 있다는 자부해요.


아이들과 남편은 독일어로 이야기해요. 이들은 언어뿐만 아니라 남자라는 같은 성(性)과

후버라는 공통 성(姓)도 가지고 있어 사이가 끈끈합니다.


넷이 함께 식사를 하거나, 게임을 할 때, 자연스럽게 세 가지 언어를 섞어 써요.

남편은 아이들에게는 독일어를 제게는 영어로 말해요.

저는 남편을 보면 자동적으로 영어, 아이들에게는 한국어로 해요.


식탁에서는 주로 남편이 아이들과 대화하고, 저는 그저 들어요. 만약에 한마디 하고 싶은 상황이라면, 언어가 바뀌기 때문에 끼어드는 느낌이죠. 모국어로 대화하고 있는데, 영어나 한국말로 하면 아이들의 주목을 끌 수도 없고요. 유엔 회의도 아니고, 남편과 아이들 각각 두 번 말해야 해서 불편하거든요. 또, 영어로 하면, 한쪽은 잘 알아듣고 한쪽은 잘 못 알아들어요. 한국말로 해도 한 쪽은 알아듣고, 한 쪽은 이해불가죠.

가족 간의 소통을 위해서 네 사람의 공용어로 독일어를 채택했어요. 물론 아이들과 단독으로 이야기할 때는 무조건 한국어입니다.


아이들은 모국어인 독일어도 잘 배워야 하고, 그 문화에 적응을 해야 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문화도 이해해야 합니다. 공평하게 잘 하면 좋겠지만, 독일에 사는 이상 한국어는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독일어가 모국어고, 한국어가 일종의 외국어인 셈이에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아이들에게 영어가 외국어이듯이요.


외국어를 많이 배워온 경험으로 말하자면,

“외국어는 노력과 연습이 있어야만 잘 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를 향상시키는 방법은 그 외국어에 노출되는 시간을 무한대로 늘리기. 즉 환경을 만들어야 하죠. 또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흥미를 갖게끔 해야 합니다. 그 바탕으로 꾸준히, 열심히 인풋을 하고, 아웃풋으로 연습을 할 기회를 늘리는 거죠.


스스로도 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아이에게 시키기는 더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를 잘 하는 어린이들이 있는데, 엄마의 노력이 대단합니다. 아이들도 재능도 뛰어나고요.


엄마는 아이들이 영어(제 경우에는 한국어)를 잘 했으면 합니다.

“영어가 유용하다. 대학 입학, 취업, 공무원 시험에 필요해, 여행 가도 쓸 수 있지.”

엄마의 이런 불순한 동기는 아이에게 전하기 어렵습니다.이해는 해도 그게 동기가 될 수는 없어요.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본인이 먼저 외국어 공부를 하고, 모범이 되는 것은 어떨까요.


그래도외국어 공부에 흥미와 재미는 충분히 유도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 만화, 재미있어하는 동화, 영화 등으로 언어적 자극을 주고, 이것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거죠. 저는 아이들에게 한국어 책을 매일 밤 두 권 읽어주는 것,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 하는 것이 없어요. 방임적입니다. 더 많은 영상, 더 많은 책, 한글학교, 한국어를 하는 또래 친구 만들어 주기로 아이들의 한국어를 늘릴 방법은 많아요. 아직 아이를 이중언어로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중에 있습니다. 지금은 단지 아이들이 한국어에 흥미를 잊지 않게 도와주고 있어요.


언어 공부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해요. 얼음 땡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숨바꼭질, 돈가스 놀이를 집에서 자주 해요. 이런 놀이를 통해서 배운 단어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브 카우프만(Steve Kaufmann), 그의 외국어 공부법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는 74세인데 20개 언어를 할 수 있어요. 그는 흥미 위주로 언어를 배웁니다(그는 Stephen Krashen 이란 학자의 Compelling, 흥미 위주의 언어 공부법을 적용해요). 흥미 있는 스토리를 읽고, 듣고, 따라 하기로 언어를 배워요. 그의 발음은 가히 상상을 뛰어날 정도예요. 책을 통해서 배운 언어라 자연스럽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정말 훌륭합니다. 자료에 대한 흥미가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몰입하게 만드는 거죠. 언어 배우기에 흥미와 재미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증명하죠.


어린이는 집중력도 오래가지 않고, 아직까지 어떤 것에 특별한 흥미를 가진 아이들이 적어서, 아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기는 어려워요. 그것도 엄마의 의지만으로는 거요. 아이가 외국어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은 범위 내에 학습을 유도하려면 학습환경을 조성하는 것만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영어 유치원 보내기, 영어 책 읽어주기, 영어 영상 보여주기가 그런 것이죠. 또 할 수 있으면 외국어를 쓸 기회를 일부러 만드는 거죠. 가족여행으로 영어권에 가는 것도 좋아요. 문제는 엄마의 기대만큼 아이들이 따라주느냐,인데 기대에 어긋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비용도 만만치 않고요.

저는 아이를 이중언어로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친구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영어를 가르칠 것인가라는 다르지만 조금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둘 다 엄마의 노력은 물론 아이들의 호응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아이는 엄마와 다른 인격체로 엄마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존재고, 아이에게 동기가 있으면 스스로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강력한 동기와 흥미가 있으면 누구든지 외국어를 배울 수 있어요. 스티브가 60살 넘어서 10가지 언어를 배운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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