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이 중국에 있을 때다. 나는 우한에 남아 석사논문을 쓰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상하이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었다. 우리 둘은 내 기숙사 복도에서 그가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보일정도로 가까이 살았고, 매일 같이 두 세끼를 같이 먹었다. 한 달 이상 떨어져 있다가 남자친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밴드에서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이 동행했다.
막상 그를 만나자, 서늘했다. 익숙해야 할 얼굴이 낯설었다. 말투도, 표정도, 심지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어쩐지 어색했다. 나는 그를 싫어하게 된 걸까? 아니면, 나 스스로가 변한 걸까? 내가 그간 겪은 일들을 말하지 못해서인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가 나를 안아도 어색했다. 그 느낌을 가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말을 걸어도 퉁명스러웠고 시선을 피했다.
언젠가 좋아하던 친구와 친하게 지내려다가 갑자기 싫어진 친구, 그게 무슨 이유였던 간에 그친구를 대하듯이, 나는 같이 간 친구에게는 친절하게 대하면서, 남자친구를 피하고 멀리했다. 그가 말을 걸면 무시했다. 친구들은 커플 사이의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내가 얼린 공기를 수습해야 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말이 줄고 어색했는데, 이유를 알길 없는 남자친구의 표정은 어두워지기만 하고… 친구들이 다 가고 나서 내게 울상을 하며 물었다.
“내가 뭔가 잘못했니?”
과거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었던, 낯설지 않은 질문이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혼자 모노로그를 한다. ‘아니다. 내 마음이 이상한 것이다. 그동안 연락을 잘 안 하고 ,떨어져 있던 시간이 너무 길어서 내 마음이 얼어붙었다.’ 원래 친했는데, 그 시간동안 자꾸 자꾸 멀어져서 북극에 있는 내 마음을 그의 앞으로 다시 돌려놓기가 힘들다는 생각. 꿈쩍하지 않은 나를 두고, 화를 내기도 하고 답답하다며 이유도 모른 채 미안하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말을 다 듣고 있던 나는 그의 잘못이 아니기에, 아니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어물쩡 넘어갔다.
그런 일은 남편이 떨어져 있다가 돌아오면 이따금 재현된다.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의 신발이 현관에 놓였다. 그가 없는 동안 그의 슬픔과는 달리 나대로 힘들었는데,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케어하기도 만만치 않았으니. 그가 돌아오자마자 주말 야구 심판 세미나를 간다고 했다. 그 순간 참아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끓어올랐다. 분노라기보다는, 어떤 억울함 같은 감정이었다. 이미, 한번 전화로 그걸 터뜨렸지만, 그는 나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나 보고 싶었어?”라고 묻는 남편에게 “아니.”라고 답해버렸다. 그리고 그가 침실에 들어오려고 할 때, 그에게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문을 쾅 닫았다. 그가 나를 안고 좋아할 것도, 나를 원할 것도 싫었다. 질겁했다.
옛날의 그때처럼 나는 얼어버린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너무 좋고, 당신도 보고 싶었는데, 당신은 나를 뭣처럼 취급해. 뭐가 잘못된거지?” 그가 물었다.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질문이 많았다. 여행은 어땠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데, 그런 일들을 풀지 않고 그냥 넘어가고 안아줄 수 없다. 떨어진 시간동안 멀어지고 나의 섬을 만든 후에 나는 거기까지 헤엄쳐 나오는데 너무도 오래 걸린다. 멀리 떨어지지 않게 꼭 붙어있으면 좋으련만.
억지로 그에게 몸을 맡기고 나니, 그가 또 살갑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이야기와 내가 쓰는 글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렇다. 나는 생각들을 풀어놓지 않고는, 마음을 열지 않고는 멀어진 사이를 좁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다. 마음도 그렇다. 열어두지 않으면 금세 닫힌다. 이런 감정은 오로지 내 것이어서, 그가 사과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 식으로 나를 버려둔 데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걸 나도 참 어쩔 수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서늘한 감정이 나마저 얼어붙이는 경험을 많이 했다. 이것도 정상이라고, 보통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반가움을 그리웠던 마음을 그 반대로 표현하는 나란 사람. 황당하다. 너무 늦게 온 사랑하는 이의 가슴을 마구 두드리면서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은 보통일까? 어쩌면, 나만 그런 건 아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