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자취를 했다. 자취방 주인아주머니가 엄마한테 ‘야무져서 뭐든 해 낼 아이예요.’ 나를 칭찬 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말이 다른 말보다 듣기 좋았다고.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뭔가를 하면 잘할 거라고 한다. 언어도 그렇고, 러닝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다. 그런 다른 사람의 기대가 싫지 않다.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어.’ 기대에 부흥해 희망을 안고 뭐든 시도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컸다.
논문을 열심히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 모든 것을 하고, 그걸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모르면 한 번 더 묻고, 염치 불고하고 교수님이나 공부 잘하는 애들 찾아가서 논문 쓰는 법, 논문 분석하는 법을 물었어야 했다. 논문 제출 한 달 전, 도움을 청하기에는 늦었다. 교수님보다 친구가, 자료 분석보다는 논문 쓰기가 어렵다는 안주를 씹으면서 맥주 마시는 일이 더 쉬웠고 재미있었다. 여차저차 논문 몇 개와 자료를 짜깁기하고, 외국학생이기 때문에 관용적이었던 심사기준을 통과하고 졸업했다.
결심했다. ‘단지 언어가 좋아서 중국철학을 한 거다. 연구 체질이 아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고 박사 공부를 포기했다. 중국 유학을 지원해준 교수님을 만나서 결혼 이야기만 하고 박사 진로 얘기는 못 했다. 아직도 교수님께 미안해서, 교수님이 꿈에 나온다. 꿈에서 선배 한 명과 교수님을 만나서 오랜만에 스터디를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지금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면? 그건 아니야. 내 그릇이 작았다고 변명이라도 할까? 마치 싫어서 헤어진 연인을 자주 가던 도서관 앞에서 부딪힌 것처럼 꿈속에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석사를 마치고 외국인 남자 친구를 데리고 집에 갔을 때, 엄마는 기대 반 실망 반 표정이었다. “한 번 끝까지 밀고 가야지.”라는 엄마 말이 내 목소리처럼 귓가에 뱅뱅.
홀가분했다. 엄청난 자료를 읽고 분석해야 하는 연구자의 길은 해발 3천 킬로미터까지 가야 할 산만큼 높았다. 지금 쌓인 설거지를 보면 한숨이 나오는 것처럼 그때는 자료 분석과 어둡고 긴 학문의 터널이 겁났다.
8년 전의 일이다. 취업센터에서 전공을 살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면, 이 정도 수준으로 강의도 못하고, 흥미도 없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전공책도 버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문이 좋았고 글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암호를 풀 듯 해석하면서 짜릿했다. 전공을 포기한 지금은 좀 더 정확한 의미를 따져가면 고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만, 아쉽다.
포;기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자기 능력이 모자라, 더 높은 단계 진입하기를 포기했다면? 그 선택 때문에 1년 동안 방향을 못 잡고 흔들렸다.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의식적으로 차단했지만, 무의식에서 좋은 선택이었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마침내 묻고 대답한다.
“그건 올바른 선택이었니?”
“응.”
“그런데, 그건 포기였어. 모험을 하기 싫어서 쉽고 쉬운 삶을 택한 거야.”
포기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석사를 시작할 때, 나처럼 끈기 있는 사람이 10년 정도 공부하는 학문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가 볼만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자취방 아주머니의 칭찬과 주위의 기대 찬 눈빛에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다. 마치 내가 그들의 칭찬과 기대에 부합한 인물이 된 마냥. 실제로 해 보니, 실력이 모자랐고, 끈기도 부족했으며, 문서 독해능력도 떨어졌다. 겨우 공부를 시작한 석사생이 학사 생보다 무엇이 좀 더 나을까만은, ‘허망한 자신감’이 실패 원인이었다.
고전을 줄줄 읊는 같은 반 중국 학생이 있고, 일을 하면서 석사 공부를 하는 동기도 있었고, 서양학 교수가 강의하면 알아듣고 자신 있게 영어로 질문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국말로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전공 수업을 중국어로 이해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으며 리포트나 논문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리포트는 한국 논문을 번역하고, 논문은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발췌문으로 내용을 채웠으며, 같은 의미 다른 표현으로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는 게 목표였지만, 현실은 초라한 초가집이다. 보기 좋게 자신감은 상처를 입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이다.
만약에 석사 공부란 학문세계에 있어서 걸음마를 뗀 베이비라고 하고, 자신이 부닥친 학문적 의문을 어떻게 해결하고, 질문을 계속 해내가는 법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무엇보다도 자기 기대를 무릎까지 낮췄으면 포기는 안 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여기가 아니라 미래에
양치질하면서 포스팅 쓸 걸 생각하고, 입을 헹구면서 수건에 손을 댄다. 입을 닦으면서 손은 벌써 문을 열고 있다. 물을 마시면서도 쌓아 놓은 접시를 본다. 마음은 벌써 접시를 수세미로 닦고 있다. 그다음에는 바닥에 흘린 빵 부스러기를 쓸고 있는 자신을 그린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이 저만치 앞에 간다.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이틀 전에 눈이 왔다. 시누이와 시어머니, 둘째를 카시트에 태우고 아웃렛에 쇼핑을 가는 도중이었다. 직접 운전해서, 시누이가 사고 싶다던 웍을 손에 쥐어 주고 싶은 마음에 들떴다. 아웃렛은 육십령 고개처럼 굽이굽이 휘어진 산 길을 운전해야 닿았다. 오전 9시이었다. 속도를 40킬로미터로 늦췄지만, 고개 마지막 커브에서 미끄러지듯 중앙선을 넘었다. 맞은편을 달리던 검은 벤츠의 오른쪽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범퍼로 쫙 긋고 멈췄다. 2초 후, 뒤따라 오던 검은 폭스바겐이 내 차를 쿵! 하고 박았다.
지금, 여기에 집중을 못하기 때문에 사고를 겪었다. 마음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자신과 있는 게 아니라, 아웃렛에서 웍을 찾고 있었다.
교수님의 지원과 기대로 석사를 하면서 자신도 기대가 컸지만 기대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아서 불안했다.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 또한 부담이었다. 문도(文道)에서도 한술에 배부르고 싶었지만 마음이 앞서면서 과정에 집중할 수 없고,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고 싶어서 초반에 에너지를 전부 써버려서 일찍 번아웃이 왔다. 석사 공부를 마치고 박사는 하나씩 천천히 해 나가면 됐을 텐데, 어려우면 물어보면 되고 힘들면 쉬어 가면 괜찮을 텐데, 앞서 간 마음이 이어질 학문의 길을 어렵다고, 겁을 줬다. 두려웠다. 그래서 포기했다. 도전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만족이 적어서 실망했으며, 다시 도전을 하면 실망이 크기 때문에 모험을 피하고 제자리에 머물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자신에 대한 허망한 자신감이 이런 결과를 일으켰다. 마음이 급해서 도전한 과제를 빨리 성취하고 싶다는 마음이 문제다. 기대를 낮추고, 여기에 집중해서 한다면, 실패와 포기보다 성공과 도전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인생은 장거리 달리기라던데, 이제는 백세시대, 인생은 길고 도전할 것은 많다. 자기 결점을 이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인생 과제에 임한다면 두려움이 없이 잘 헤쳐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