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걷고 뛰고, 나다워지다

by 원더혜숙


‘숨이 차. 다시 뛰는 길, 몸이 무겁다.'

처음으로 산책 코스를 달리고 있다. 역시나 두 번째 고개에서 걸어야만 했다. 헉헉. 심장이 쿵쾅 요동친다. ‘그래도 이다음은 평평한 길이지’ 길을 아는 것만으로 작은 위로가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숨소리는 거칠어지는데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우거진 숲 사이에 난 자갈길은 쭉쭉 뻗은 평지가 아니라 낮은 언덕길이라고 몸이 증명했다. ‘이제 시작인데, 또 멈출 수는 없지.’ 쉬지 않고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드디어 내리막이다. 도시에 닿은 오솔길은 철커덕 기차 소리를 전해줬다.


풍성해진 이파리들은 죽은 나무도 화합하여 길 위에 아치 형 나뭇가지 문을 만들었다. 그 밑으로 들어가니 달아올랐던 몸이 식었다. 시원한 그늘과 바람이 이마의 땀을 씻겨주었다.


30분이 지났다. 다시 오르막. 몸을 리듬에 맡기고, 보폭을 넓히고 속도를 낸다. ‘조금만 참으면 다시 내리막길이 나와.’ 내리막. 착착 차착, 걸음을 좁게.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친다. ‘달리길 잘했어.’


일주일 동안 걷기와 조깅을 쉬었던 참이다. 몸이 쓰레기통 인양 입에 해로운 음식을 마구마구 집어넣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침부터 눈꺼풀이 무겁고, 인간관계 때문에 마음이 먹구름이었다. 게으른 몸을 끌고 달린 9킬로미터, 한 시간 남짓 조깅의 끝에서 나는 활기를 되찾고, 다시 글을 쓸 의욕이 생겼다.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자연과 함께였다. 그 속에서 걷거나 뛰었다.


산골에서 살았던 어린 내게도 고민은 있었다. ‘유치원에 친구가 없어.’

버스 타는 법을 모르는 어린 유치원생. 유치원에서 집까지 1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혼자 걸어가야 했다. 풀이 무성한 논 길에 혹시 뱀이 스멀스멀 내 발등을 지나가지 않을까 눈을 부릅뜨고 조심스럽게 걸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카시아 어린 가지를 꺾어 연보랏빛 매니큐어를 발라 마르기를 기다리며 걸었다. 동무 없는 외로움은 잊고. 멀리 있던 황석산이 가까워지면 집에 도착한다.


중국 상하이에서 살 때다. 중국에서 철학 석사 공부를 끝내고, 박사를 할 마음이 도저히 나지 않아 포기했다. 홀가분하면서도 내 길이라고 확신했던 학문의 길을 단념하고 돌아선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취직은 말할 것도 없고, 꿈을 내려놓았다는 죄책감과 교수님 기대를 저버렸다는 미안함 때문에 자주 악몽을 꿨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일 때,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앞 공원. 대도시 교통 소음과 군중을 벗어난 이 작은 공원은 인공적이지만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버찌가 떨어지고 모리화가 피는 공원을 몇 바퀴 돌면, 시름이 점차 사라졌다. 작았던 내 모습이 커졌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취직에 성공.


아이 둘을 낳고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혼자라면 자유롭게 독일어도 배우고, 쇼핑도 하고 여행도 할 텐데… … 독어도 운전도 못하고, 친구도 자신감도 없어. 독일 생활도 육아도 처음이야. 모유수유 때문에 새벽에 몇 번이나 일어나야 하고, 수면부족으로 낮에는 정신없이 기저귀를 갈지. 첫째도 아직 아기. 엄마는 자기 자신은 없고, 엄마로서만 살아야 하는 걸까?’

첫째는 한국에서 낳아 산후조리도 마치고 독일로 왔다. 첫째 우울증을 이겨 내기도 전에, 둘째를 낳았다. 나는 독일에서 독일어도 제대로 못하는 이방인. 심지어 남편은 출장이 잦았다. 남편 외에 다른 도움 없이 연년생 아이들을 키웠다. 이것이 내 삶의 조건이었고, 바로 이것이네 심신(心身)을 지치게 했다. 이것이 산후 우울증이다.


독일에서는 산모가 아기를 낳자마자 많이 움직일 것을 권한다. 한국이었으면 여름이어도 양말을 신어야 하는 산후조리를 해야 했겠지만 여기선 간섭할 사람이 없다. 마음대로 해 보기로 했다. 산후조리 없이 샤워도 하고 양말도 신지 않았으며 아기를 데리고 수영장도 갔다. 갓 태어난 둘째를 아기띠에 품고, 아기 형을 앞세우고 축축한 독일 겨울 산을 걸었더니 체력은 회복됐다. 가능한 자주, 밖으로 숲으로 나갔다.

둘째가 4개월이 되던 날, 잊었던 조깅화를 다시 꺼냈다.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신은 조깅화는 30분도 제 역할을하지 못했고,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까지 세 달이 족히 걸렸다. 집에서 가까운 도로 옆 포장된 자전거 길을 내 운동장처럼 뻔질나게 뛰었다.


어느 날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흰 토끼를 봤다. 토끼를 따라, 자전거 도로를 벗어나 산으로 난 자갈길에 들어섰다. 언덕으로 시작된 숲 길을 오르면 평평한 자갈 길이 이어지고 나무들로 둘러싸인 들판이 펼쳐졌다. 그 옆으로는 1.5미터 높은 오두막이 있다. 간혹 개와 산책 나온 사람들이 지나가며 할로 인사했다.


10킬로미터 도시 달리기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숲은 내 달리기 리허설 장소였다. 가파른 오르막 길에서 몇 번이고 쉬었지만, 언덕길 끝은 내리막 길이었다. 숨 가쁘게 오르고, 숨 가볍게 내려오면서 고통과 희열을 느꼈다. 햇살이 가득한 날은 그것 때문에 좋았고 우중충한 날은 날씨를 이기고 달려서 뿌듯했다. 그러는 동안, 우울증은 증발했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와 무럭무럭 커갔고 둘 다 유치원에 들어갔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나는 독일어 수업을 듣고 이방인이라는 굴레도 살짝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방향을 놓칠 때마다 자연이 힘을 줬다.


독일어 공부도 끝냈고, 아이들도 많이 자랐으며 남편도 이직해서 더 이상 출장이 없을 때가 되었을 때.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이민 온 외국 엄마 친구들의 취직 소식까지 들렸다. “너는 일 안 하니?” 취직을 꼭 해야 할 것 같았고, 일도 하고 싶었지만 내 커리어를 접어둔지 벌써 6년. 깜깜했다.

‘전공으로 취직할 것은 아닌데, 그럼 난 뭘 해야 할까. 친구들처럼 캐셔로? 기회는 많았지만, 맞는 것은 없고, 고민에 빠졌다. 나는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엄마로서가 아니라 자신으로서 거듭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끝단 피니스테레, 대서양을 마주한 카미노 길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섰다. ‘사람이 좋고, 걷는 게 좋고, 자연이 좋아. 내가 여기 온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지.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될 거야.’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용기를 줬다.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그것만으로 충분한 힘이 됐다. 그 실 끄트머리를 잡았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자연에 기댔다. 불교신자가 선사의 고요함을 찾고, 교인이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서 교회를 찾는 것처럼, 나는 어제는 조깅화를 오늘은 등산화를 신고 자연을 찾았다. 어떨 때는 기뻐서, 어떨 때는 화가 나서, 어떨 때는 우울해서, 어떨 때는 기운이 없어서.


자연에 감동했다. 봄이 오기 전에 가장 먼저 올라온 나뭇잎 개수를 새면서 설렜다. 햇살에 투명해진 노란 유채꽃이 좋았다. 언덕을 숨기고 있는 길을 따라갔더니 그 속에서 사슴 한 마리가 툭 튀어나왔을 때, 놀랍고 반가웠다. 한 여름 햇빛이 나뭇결까지 속속들이 비추면, 내 마음까지 밝아졌다. 달팽이, 민달팽이가 빗물로 흠뻑 샤워할 때 나도 뽀득뽀득 씻은 것처럼 개운해졌다. 제 몸을 털어 잎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의 움직임을 보며 시간의 무상함을 봤다. 켜켜이 쌓인 낙엽을 타닥타닥 발로 걷어내며 숨어있는 벌레들을 아침 식사로 먹으려는 지빠귀를 발견했을 때 나는 내 할 일을 되새겼다.


자연에서 몸을 움직일 때 내 생명력을 느꼈다. 길가에 자란 풀 한 포기도, 날아가는 한 쌍 비둘기도, 변화무쌍한 하늘의 구름들도 모두 무심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그 속을 달리고, 걸으면서 나도 자연과 하나라는 사실을 깨친다. 자연의 큰 흐름 속에서 나는 작은 존재이지만, 그들 구성원처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낼 때, 또 그런 자신을 소중히 지켜 나갈 때 나는 나다워졌다.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나다워지기를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대와 조급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