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홀로 하프 마라톤

by 원더혜숙


작년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했다. 올해는 실천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도시 마라톤대회는 취소되었다.


캠핑하던 어느 날, 호숫가를 달리고 있었다. 호숫가는 완만하고 간혹 그늘도 있으며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달릴 수 있었다. 팟캐스트나 음악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달릴 수 있는 코스다. 컨디션이 좋았고, 후끈 달아오른 열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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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서 하프 마라톤을 하면 어떨까.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조금만 더 달리면 하프 마라톤 거리가 되지. 게다가 올해 계획에 하나라도 엑스 자를 그릴 수 있다면 뿌듯할 거야.’ 하프 마라톤으로 호숫가를 달리는 모습을 그리고 흥분했다.


2주 후. 지금 나는 호숫가를 달리고 있다.


이제 겨우 15킬로미터를 달렸다. 평소 같으면 이 정도면 잘 견뎌낼 테지만 텐트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잤고 또 날이 너무 더워서 벌써 네 번을 더 멈췄다. 소금 한꼬집과 각설탕 두 개를 넣어 만든 에너지 보충 물은 미지근할 뿐만 아니라 입맛이 뚝 떨어진다. 게토레이, 이프로, 포카리스웨이트, 마시고 싶다. 나는 근데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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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처음 30분 달리기를 할 때만 해도 무릎이 아팠다. 그것을 극복하고, 3년 동안 줄곧 일주일에 한 시간 동안 달렸다. 10킬로미터 러닝대회에 참가하고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한계가 아닐까, 한정지었다. 어느 날, 문득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장거리 훈련을 했다. 장거리 훈련을 하고 고관절이 아파서 세 달 정도는 장거리를 할 엄두를 못냈다. 몸이 허약하구나,하고 하프 마라톤도 단념했다. 그래도 꾸준히 10킬로미터를 달렸다. 몇 달이 지난 지금 나는 15킬로미터를 더 달리고 있다.




사흘 전, 10킬로미터를 신나게 뛰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었고, 또 텐트 잠자리는 여전히 불편했다. 오른쪽 어깨가 결리고, 눈이 뻐근했다. 미룰 수도 있지만 마음으로 ‘오늘’이라고 정해 놓은 마라톤 날짜를 미루는 것은 결코 편치 않다. 새벽부터 나가고 싶었지만 여유롭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천천히 준비를 했다. 여름이라 햇빛이 따가웠지만, 그렇다고 마음 준비도 안 됐는데 억지로 달릴 필요는 없다. 혼자만의 계획과 혼자만의 레이스다. 서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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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무릎까지 올리고 신발 끈을 단단히 맸다. 스포츠 시계를 차고, 머리를 단단히 묵고 몸에 선크림을 듬뿍 발랐다. 물 한 병과 핸드폰, 이어폰을 챙겨서 등에 메는 보조가방에 넣었다. 옷을 챙겨 입는 순간부터 마라톤 모드에 돌입.


몸을 풀어주고 레이스 시작. 오르막길, 조깅을 안 할 때 이 길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산 길에서 훈련한 나는 오르막길을 토끼처럼 뛰어올랐다.


호수에 닿았다. 시원한 오전, 숲 그늘이 주는 신선함이 좋다. 오늘은 햇살이 강하다. 햇빛을 피해그늘 아래 눕거나, 수영을 하고, 스탠드업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걷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다. 모두들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 지금, 나도 휴가를 즐기고 있다. 혼자만의 마라톤으로. 누가 시키지도, 누가 도전하라고도 안 했지만 자발적으로 긴 거리를 달리겠노라고 결심했고 달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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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맞은 편, 나는 점점 햇빛에 말린 오징어가 되었다. 마른 자갈 길에서 먼지가 날렸고, 바짝 마른 나뭇잎은 어떤 그늘도 선사하지 않았다. 목은 시작부터 말랐다. 30분도 안 되서 목이 마르고 한 시간이 안 되고 500밀리미터 물은 동이 났다. 늘지 않는 킬로수에 참 마음이 급했다. 땡볕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통을 참고 있는 나는야 목 마른 당나귀.


호수에 풍덩! 하고 빠지고 싶다. 시시각각 거리를 측정했다. 이제 17킬로미터를 달렸다고 한다.

사과 주스나 포카리스웨트를 준비해뒀을 줄 알았는데 남편은 그늘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가 내 출현에 당황했다. GPS가 켜지지 않았다고.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다고.


물도 다 떨어졌고, 힘도 떨어졌지만 아직 7킬로미터가 남아있었다. 한 시간은 뛰어야 할 거리. 물 두 병과 사과 주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에야 힘이 났다.


다시 달렸다. 달리고 달렸다. 팟 캐스트에 집중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날이 뜨겁다. 그래도 달렸다. 목에 서걱서걱 소금이 맺힌다. 정말 소금일까 맛을 보니 짜다.


마지막 1킬로미터. 좀처럼 줄어 들지 않는다. 오전 10시 반에 시작한 레이스가 한 시를 가리키려고 한다. 헉헉거리며 텅텅 빈 음료수 병을 덜컹거리며 남은 힘까지 다 해서, 2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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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뛰었다.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몸을 호수에 담았다. 햇살은 뜨겁고 여전히 여름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사람들. 짧은 조깅바지를 다 걷어 불끈하는 허벅지를 자랑하면서 해변에 누웠다.


친구 바네사한테 21킬로미터 달릴거야. 했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그래. 한다. 아니 그게 뭐야. 나 21킬로미터 달리겠다고. 너 순례길 갔을 때 하루에 몇 킬로 걸었니? 34킬로미터? 그렇게 잘 걷는사람한테는 21킬로미터 달리는 거 아무것도 아니지. 달리는 것과 걷는 게 다르긴해도 대체적으로 그녀의 말이 맞았다.


하프 마라톤을 달리고도 멀쩡했다. 명치가 약간 아팠지만 금방 괜찮아졌고, 날씨가 더워서 어지럽겠구나 했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내 페이스대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긴 거리를 안정하게 달렸다. 나는 그렇게 오래 달리는 능력이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해냈다. 내 한계는 30분도, 10킬로미터 한 시간도 아니었다. 또 21킬로미터도 아니었다. 한계란 그 단계에서만 존재하고,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넘을 수 있는 것이었다.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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