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맛있다. 설탕을 넣지 않고도, 우유를 넣지 않고도 맛있다. 그 쓴맛이 좋다. 언제부터 쓴맛을 즐기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2004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유학할 때로 거슬러 오른다.
스타벅스에 유리 자동문을 들어서면 진한 커피 향기가 난다. 검은색 폴로셔츠에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부지런히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천장까지 채워진 벽장에는 커피와 관련된 장식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맛있는 케이크와 머핀이 얌전히 앉아있는 투명한 케이스 옆에는 커피콩 포대 위에 잘 갈린 커피가 소복이 쌓여 있다. 그 옆에는 가지런히 서 있는 시즈오카 커피잔과 텀블러.
작은 칠판에 오늘의 커피 자메이카산, 에콰도르산… … 매일 달라지는 커피. 당시는 아마 200엔이면 그날의 커피를 살 수 있었다. 아주 적은 돈. 유학생에게는 그 돈도 사치였다. 특히 촌에서 유학 간 내게는 더더욱 그랬다.
긴장하며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블랙커피가 가득 든 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붉은 갈색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왼쪽 창가 ‘자기’ 자리에서 노트북에 뭔가를 열심히 적다가 생각하는 그. “벌써 왔어?” “당연하지.” 큰 커피 머그잔에 커피가 벌써 반이 없다.
미국 네브래스카에서 온 조쉬와 주로 어울렸던 나는 그에 끌려 스타벅스에서 오늘의 커피, 우유도 설탕도 넣지 않은 채 블랙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가끔은 졸려서 창가에서 멍한 상태로 공부하고 있으면 조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그는 내 오른쪽 탁자에 종이에 싸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초콜릿이 크게 박힌 쿠키를 내밀었다. 고마워.
그런 그가 좋았고, 그를 슬쩍 떠보았다. “너 연애할 마음 없어?” 언제든 먹잇감을 발견하면 그렇게 적극적이고, 또 빠르게 움직였던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사랑을 완벽하게 해낼 자신이 없다고, 그는 거절했다. 아니 자기 의사 표현을 했다. 내가 고백한 건 아니니깐. 당시는 이해가 안 됐다. 그 시기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거의 모든 유학생들에게 미국 악센트로 콘니찌와라고 상냥하게 인사하고, 항상 웃었던 그는 약간 어리숙하게 보였다. 어렸을 때 턱을 다쳐서 수술을 했는데, 약간 턱이 비뚤어져서 부자연스럽게 다물었기 때문이다. 자기 동생은 자기보다 훨씬 잘 생겼다고 질투했던 이 착한 남자가 속으로는 완벽주의자였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옛 친구에게 연락할 여유는 없었다.
스타벅스를 나와 자전거를 타고, 내일 봐, 하고 작별했던 지 벌써 15년.
얼마 전 인스타그램으로 조쉬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알제리 바르잔 대사관에서 일했고, 뉴스에 그 나라말로 인터뷰를 할 정도로 멋진 놈이 되어 있었다. 그게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물론, 어리숙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싱글이었다.
나는 아들 둘에 국적은 다르지만 그처럼 마음 좋은 남편이랑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말이다. 그때 나한테 넘어왔어야 했어. 사랑과 일도 균형을 이룰 수가 있다고. 잘 맞는 여자, 위험한 나라도 여기저기 잘 따라서 다닐 수 있는 그런 열정적인 여자를 찾으면 되는 거야. 그건 나 같은 여자지.
그런 그가 옥토버페스트로 뮌헨에 올 거라고 했다. 그리고 어쩌면 스투튜가르트에 지원한 회사에서 답이 오면 독일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안타깝게도 옥토버 페스트는 취소되었다. 아직까지 그의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코로나의 여파로 회사로부터의 확답도 아직인가 보다.
내게 커피 맛과 또 아메리칸 쿠키 맛을 가르쳐 준 속으로 꽉 찬 그 남자를 조만간에 볼 수 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도 나도 여전할 것 같다. 나는 옛날처럼 그를 당황하게, 직설적인 질문을 퍼부을 것이고, 똑똑한 그는 어리숙한 얼굴로 당황하지 않고 친절하게, 답해주겠지. 스타벅스에 앉아서 그와 함께 할 시간이 기대된다.
남편이 내게 시간을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