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때문에

by 원더혜숙

공원에 터키댁, 스페인댁, 한국댁 그리고 아이들이 모였다. 올 여름은 유난히 벌이 많다.


“벌 스프레이 샀어?” 터키 엄마가 뜬금없이 바네사에게 물었다.

내가 받았다. “너는 벌이 무섭니?”

“당연한 거 아니야?”

“나는 안 무서운 게 당연한걸?”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벌집이 다섯 통이 있었어. 집에 들어서면 까맣게 벌들이 날아다니고 윙윙거렸지. 그때 벌을 안 무서워하게 된 것 같아. 많이 쏘이기는 했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어. 가만히 있으면 벌이 아무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런데 벌이 내 팔이나 어디에 앉잖아. 그럼,,,,?” “나는 입김으로 불어버려.”

그녀가 웃는다.

“그래 너는 벌 스프레이 사렴.” 그 지역에서 나는 벌꿀을 먹으면 벌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 그녀는 그냥 벌을 왜 무서워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의향이 안 보여서. 이야기를 더 하자, 그녀는 벌레 때문에 캠핑도 안 가고, 호수물이 더럽고 뭐가 나올까봐 호수 수영도 안 한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집 귀퉁이에서 까만 점들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마당에 들어가면 여기서 웅웅웅, 저기서 웅웅웅. 벌들이 부지런히 날갯짓을 한다. 벌통 네 개. 어쩔 때는 다섯 개. 엄마 마음대로다.


1990년대, 작은 성북 마을. 양봉이 유행이다. 외딴 집 앞 할머니도 외로운 감나무 옆 수돗가에 벌통을 두고 관리를 했는데, 엄마가 꿀을 짤 때는 도와주러 오셨다. 작업복에 긴 장화를 신고, 팔 토시를 하고, 까만 망을 쓰고, 훈연기를 든 그들은 바이러스를 처치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보다 더 비장했다.


벌들이 자기들이 모은 재산을 가져가는 엄마에게 자주 침을 쏘았지만 엄마에게는 연기 총이 있었다. 사정없이 연기를 뿜으면 벌들이 기절을 하고 잠잠해진다. 엄마는 그 틈을 타서 벌통에서 밀랍을 꺼낸다.


드럼통 만큼 높은 은색 큰 통 가운데는 여섯 개 정도의 밀랍을 둥그렇게 끼울 수 있다. 거기에 끼우기 전에, 칼로 삐져나온 꿀 덩어리를 잘라내서 한편에 둔다. 뚜껑을 닫고 물레를 젓듯 손잡이를 잡고 붕붕 돌린다. 5초만 기다리면 통 아래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꿀이 쏟아졌다. 바로 나오는 꿀은 세상만큼 달콤하다.


몇 방울 찍어 먹다가 보니, 엄마는 밀랍을 한 입 넣고 와그작 씹었다. 이게 진짜배기야. 어? 나는 안다. 그게 얼마나 단지. 엄마는 얼굴이 단맛에 몸서리쳤다. 그리고 또 꿀단지에 흘러내린 꿀을 검지로 발라내어 혀로 말끔히 닦아냈다. “엄마, 맛있어?” “난 단 거 싫더라. 억지로 먹어.” 꿀은 달아서 한 숟가락 이상은 다린다.


꿀단지 두 개를 가득 채웠다. 이거는 밤 꿀이야. 이상하다. 꿀벌들이 우리는 밤 꽃에서만 꿀을 모으자. 하고 간 걸까. 밤 꿀은 밤처럼 짙은 갈색이었고 밤꽃 맛이 났다.

아카시아꿀이야. 아카시아 꿀은 옅은 노란색이었고 가볍고 향긋한 아카시아꽃 맛이 났다.


가끔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설탕을 가득 넣어 섞은 주전자로 꿀들에게 간식을 줬다. 그러면 꿀도 설탕이 아닌가? 간식을 먹은 꿀들이 거기에 자연의 향기를 더해 달달한 꿀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마루에 앉아 있으면, 벌꿀들을 잡아먹는 호박벌이나 말벌들이 출현했다. 이놈들을 잡아야 한다. 말벌은 잔인하게도 산 놈을 끌고 가길 좋아한다. 분명히 벌통 현관문에는 죽은 벌들이 수두룩했는데 그것들은 가만두고, 기다렸다가 오직 싱싱한 벌들을 잡아가려고 벌통 주위를 낮게 날았다.

잠자리채보다 더 긴 채로 말벌들이 나는 길에 기다렸다가 그놈들을 잡고, 벌들을 구해줬다.


수박을 먹으면 벌들이 어김없이 출현했다. 꼼짝 마. 벌이 눈앞에, 코 위에 앉아 있으면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 그렇기 가만히 벌의 발걸음을 피부로 느껴져도 모른척하고 숨죽이고 있으면 벌은 흥미를 잃고 날아간다. 마당에서 놀다 가도, 뭘 먹다 가도 오빠와 나는 자주 얼음이 되었다.


뒤뜰 소 마굿간에 수박 껍질을 버리려면 벌통을 지나야 했다. 그림자처럼 조용히, 벌들이 절대로 관심을 주지 않는 듯한 움직임으로 천천히 그 벌 동네를 지났다. 수박에 앉은 벌을 화나게 하지 않고, 조용히 소 여물통에 수박과 함께 던져버리고, 또 윙윙거리는 그곳을 살금살금 빠져나왔다.


처음에 벌을 쫓으려고 하다가 단번에 쏘였다. 쏘이면 엄마는 거기다 꿀을 발라준다. 그럼 벌이 더 오지 않나? 꿀의 촉촉함과 진득함이 약이 되는지, 부어올랐던 곳이 다음날이면 금세 가라앉았다.


몇 해 그렇게 재미나게 양봉했던 엄마는 그 자리에 장작으로 채웠다. 그 자리에 그대로 벌들의 시체가 굴러다녔는데, 맨발로는 절대로 거길 걸으면 안 된다. 벌은 죽어서도 쏘자니깐.



우리 집에는 소도 있었고, 벌집도 있었고, 개도 있었고, 아주 어렸을 때는 핑크빛 돼지도 있었다. 또 매일 밤, 천장에서 다라라 락,,,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었다. 들에 나가면 뱀이 항상 있었다. 개구리와 메뚜기, 호랑나비도 잡아서 모았다. 그들 존재가 귀찮기는 했지만 무서운 존재는 아니다.(뱀은 징그럽고 무섭지만,,, 소스라칠 정도는 아니다) 내 어린 시절은 모든 동물 벌레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야 했다.


캠핑에서도 집게벌레나 개미가 텐트 안에 들어오더라도 아무렇지 않다. 심지어 개미가 샐러드에 빠져 있더라도, 살짝 빼 내고 먹을 만큼 비위가 강하다. 어떤 동물이나, 벌레를 여러 번 접하게 되면 무디어진다. 그것 때문에 캠핑이나, 호수에서 수영하는 걸 꺼려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가끔씩 자신이 그런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본다. 어쩌면 사소할지도 모르는 것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포기하고, 자기를 한정한 게 아닌지. 이런 한계를 극복하면, 세상에는 재미난 것이 많은데, 그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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