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음식을 두고 오순도순 앉아서, 그간 겪은 일에 대해서 밤늦게까지 웃으며 대화하는 그런 시간을 가끔 기대한다. 특히 오랜만에 집에 가면 더더욱. 이런 내 소망은 불행하게도 실현된 적 없다.
엄마는 늦깎이 취업으로 매일 일터로 향하고, 아버지는 지금까지 일만 하셨지 나와 이렇다 할 대화를 해본 적이 없고, 우리만 보고 있기가 어색하다. 오빠 내외는 자기 일로 바쁘다. 퇴근 시간도 늦어서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을 시간도 없다.
식사를 하면 이야기할 시간은 겨우 5분이나 될까. 밥 먹으며 서로 마주하는 게 부끄럽다. 밥을 다 먹으면 자기 그릇을 가지고 식탁을 신속히 떠난다. 함께 앉아 있어도 식탁에 빈 그릇을 치우면서 간단한 확인말정도 오간다.
모처럼 시간 내서 다 같이 고기를 먹으러 가도, 고기를 굽고, 밥을 먹고 음식을 시키는 데만 열중. 밥을 먹고 나면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계산을 하고 바로 집에 가서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는 게 익숙하다. 우리 집에서는 식사는 식사일 뿐, 대화가 없다.
이런 경험에 비롯해, 나도 자연스럽게 내 가족 구성원의 허기를 채우는 일에만 집중한다. 집에 돌아오는 남편에게, 바로 밥을 대접하는 것이 내 임무다.(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밥을 찾으셨다.) 그런데 남편은 집에 오면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보다. 식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나에게 남편은 그날 있었던 일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식구 입에 밥을 넣겠다는 일념 아래 움직이는 나는 귀가 있어도 안 들린다.
방학을 맞아 시댁을 가면, 퇴직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휴가 받고 온 시누이가 있다. 한 달 동안 우리는 모두 함께 삼 시 세 끼를 같이 한다.
시댁에서는 시어머니가 요리를 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접시와 포크와 음료를 준비한다. 음식이 다 되면, 모두 함께 앉아서 먹고, 식사 중에도 자유롭게 대화가 오간다. 뒷정리는 누구든 할 수 있다. 보통 요리한 사람은 쉬게 해줘야 하므로, 그다음 일은 나나 남편이 한다. 식사가 끝나도 수다는 이어진다.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계속 앉아 있을 수밖에.
점심 식사에 대화하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되고, 오후에 다시 한번 모여서 커피를 마시면서 한 시간 더 이야기한다. 그렇게 거의 한 달 동안 안 한 이야기를 하면 1년 동안 쌓였던 이야기가 거진 다 풀린다.
나는 시댁 문화를 선호한다. 살면서 핏줄을 나눈 사람들과의 친밀성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자취를 일찍 시작하고 외지에 살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산 시간이 더 많았고, 대화다운 대화를 못 해 본 나는 그런 친밀감을 늘 갈망했다.
가족과의 친밀함. 유대감, 사랑하고 아낀다는 감정은 같이 시간을 보내고, 경험하고 대화하면서 형성된다. 가까운 사이니깐. 남들보다 더 살갑고, 지지해 주는 게 당연하다. 그런 것이 부족했던 내 어린 시절. 감정이 요동치는 그 시기, 부모님의 관심과 지지보다 친구들에게 기댔지, 우리 사이에는 대화가 별로 없었다. 말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말하려고 하면 벽에 부딪혔다. 높은 벽. 그건 회복되기 거의 어려운 우리 사이에 분단같은 것.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더욱 서먹하다. 우리 사이가 얼마나 머냐면, 한 번은 유학 중에 한국에 들렀다. 3년째다.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버지는 일이 있어서 새벽에 나가셨다.
‘아버지는? 작별 인사해야 하는데.’라고 묻는 남편은 물었다. “왜? 우리 집에는 원래 그래.” 3년 만에 만나도 ‘아버지, 저 왔어요.’ 하는 게 다. 아버지는 유학 생활이 어떤지, 논문 준비는 잘 되는지를 일체 묻는 법이 없다. 남편은 그게 너무 이상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도 독일에서 한국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빠는 ‘어 왔나.’ 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말이 필요한 게 아니지만, 어떻게 왔어? 비행기 타는 건 괜찮았어. 독일 생활은 어때? 등의 질문이 한가득일 텐데, 세월에 짓눌려 혹은 그 세대 굴레, 아님 오직 일에만 짓눌려 물어보지 못하는 질문이 그 주름진 얼굴에 묻혔다.
나 역시 무뚝뚝한 딸. 아이들은 시시각각 엄마 도움을 청하고, 남편도 챙기고 하다 보면 아버지를 신경 쓰기 어렵다. 그렇다고 줄곧 안 하다가 아빠를 앉혀 놓고 “아빠 내가 어쩌고저쩌고… … “ 하기에도 나는 너무 아빠 딸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게 익숙한 남편. 그게 자연스러운 그. 가족 간의 이런 친밀감과 신뢰가 모여서 안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남편이 그래서 마음이 안정되어 있나 보다.
내가 가지지 못한 즐거운 식사시간과 친밀감을 내 가족에서는 줄 수 있다. 퇴근하자마자, 대뜸 밥을 입에 들이대고, 또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요리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그런 요구에 즉각 응하는 것으로 친밀감과 신뢰감을 유지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 급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면서, 대화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은 벌써 자기 뮤슬리를 직접 끓이고, 접시를 준비할 줄 안다. 식탁에 앉자마자 아이들은 문득 생각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특히 유치원을 갔다 온 다음에는 흥분해서 서로 말하려고 다툰다. 이 시간을 소중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