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가 내린다. 안경에 빗방울이 내려 시야를 가렸다. 유리관 속에서 뛰고 있는 것 같다. 장대비가 아니라면, 빗속의 조깅은 상쾌하다. 신발과 어깨와 무릎이 젖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조깅은 1년 내내, 어떤 날씨라도 상관없이 할 수 있다. 단지,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 게 문제지만,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면 빗속이라도 눈 속이라도, 땡볕에라도 달릴 수 있다. 우중, 설중(雪中)에서 조깅이라면 약간의 방수가 되는 재킷으로 충분하고, 땡볕에서라면 창이 긴 모자를 쓰고 숲에서 달리면 가능하다. 오직, 당신의 마음이 악천후를 극복하기 싫은 것일 뿐.
일주일에 두세 번,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요일을 바꿔서 9킬로미터씩 조깅을 간다. 습관을 만들려면 되도록이면 자주 해야 하니 매일 하는 게 효과적이다. 내 경우, 규칙적이지 않아서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것보다 습관 만들기 어려웠다. 일주일에 두 번 달리기는 향상되기보다는 체력을 유지한다는 느낌이다. 조깅 후 이틀 쉬는데, 하루라도 좀 더 쉰다면 근육과 마음이 너무 풀어져서 그전의 페이스만큼 달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할 수 있으면 매일 달리는 것이 좋으나, 내겐 시간이 없다. 이렇게라도 조깅 습관은 만들어진다.
일주일에 두 번을 달리는 습관을 만들게 한 큰 공로는 스마트 와치와 글쓰기이다. 실행 여부를 추적할 수 있고, 기록할 수 있으며, 그래서 조깅의 결과와 몸 상태를 점검할 수 있으며, 성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
스마트 와치는 얼마나 자주, 오래, 빨리 달렸는지 기록을 측정해 준다. 핸드폰에 연결된 어플(삼성 헬스 어플)로 그날 조깅 기록을 점검할 수 있다. 기록을 늘리기 위해서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강화해야 할지도 판단할 수 있다. 월별, 일 년 동안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달려온 시간과 거리를 보면 자랑스러웠다. 또 자신이 달린 기록을 어플로 사진과 함께 공유하고 기록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글쓰기와 조깅이 무슨 상관이냐고. 조깅을 하면서 한 생각과 관찰한 사실을 기록하면서 조깅이 더 재밌어졌다. 혼자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운동하기 전의 망설임, 운동 중에 관찰한 것, 러닝 중의 고통, 날씨 등을 기록한다. 기록하고부터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고, 주변 환경에 흥미가 생겼다. 그동안의 조깅 에세이를 보며 어떻게 조깅에 대한 느낌이 변했는지 알 수 있다. 조깅 습관이 형성되기 전에 했던 망설임과 언덕을 오를 때 고통이 그때가 지금보다 절절했다. 조금이라도 발전한 모습을 확인했다.
오랫동안 조깅을 습관으로 하는 이유는 많다.
1. 조깅을 하고 나면 피곤해도 활력이 생긴다. 특히 야외에서 조깅을 하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러닝 머신에서 달리는 것과는 달리 변화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다. 하다못해 고양이 한 마리라도 보게 될 것이고, 새소리를 들으면 지나가는 차도 구경할 수 있다. 코로나로 집에만 있으면 놓치는 다른 세계를 본다. 고요해 보이는 인간 세계와 달리, 자연 움직임은 쉼이 없다. 쉼 없는 자연에서 인간도 자강불식을 다시 일깨운다.
2. 조깅을 하면 뿌듯하다. 달리면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글이 안 써지거나 몸이 찌뿌둥할 때는 어김없이 달리러 간다. 달리면서 그런 고민들이 걸음걸음에 실려 증발한다. 땀과 함께 고민이 씻겨 내린다. 시원한 공기가 폐에 들어오듯이 머릿속에 좋은 이미지와 좋은 아이디어가 가득 찬다.
3. 조깅을 하면 몸이 피곤하다. 끝까지 참고 달린 보상은 그날 밤의 숙면이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금방 잠든다. 몸이 아픈가, 그것은 당신이 너무 운동을 안 해서 근육이 놀라서 그런 것이다. 고관절이 아픈가. 며칠 쉬고 다시 나가 보라. 서서히 고통은 잠잠해지고, 달리면 달릴수록 힘이 붙는다.
4. 조깅 후에는 일의 능률이 오른다. 머리가 복잡했다면 조깅 후에 모든 에너지가 몸의 회복에 집중되므로 정신은 소홀해진다. 문제였던 것도 문제가 아니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일을 시작하면 노곤함과 함께 전환점을 맞게 된다.
5. 조깅을 하면 밥맛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조깅을 하는 동안 수분이 부족해서, 조깅을 끝내면 목이 마르지, 배는 고프지 않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호흡을 위해 늑골은 조여지고, 그것 때문인지 배가 고프지 않다. (실제로 늑골을 조여서 식욕을 줄이는 요가 자세도 있다.) 어떤 날은 밥맛이 좋아서 많이 먹게 된다.
6. 조깅을 하면 다이어트가 된다. 정기적으로 조깅하면 정상 체중을 유지를 하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다. 평소보다 많이 먹어도 정기적으로 뛰어 주니 칼로리는 소모되고, 다리와 복부에 근육이 붙는다. 하지만 아까 말했든 식욕이 더 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조깅을 하더라도 식이요법에 변화 없이 다이어트나 복부지방 줄이기는 성공할 수 없다.
7. 조깅을 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조깅화를 신고 뛰는 것은 자신감의 싸움이다. 그 싸움을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 십 년 동안 해 보라. 당신은 그 싸움에서 계속 이겼고, 조깅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그 자신감은 다른 일에 도전하고 끝까지 해내는 기본 조건이다.
8. 조깅을 하면 기분이 좋다. 80퍼센트는 소화관 안 장 크롬 친화 세포에 존재한다는 호르몬 세로토닌은 기분 조절, 식욕, 수면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트립토판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다. 또 엔도르핀도 분비되는데, 운동할 때 5배 이상 증대된다. 운동에서 고통을 참은 후에 얻는 그 희열, 그때 엔도르핀이 강하게 분비된다.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 시간 꼬박 채우고 돌아오는 길, 멈춰 섰을 때의 그 기분, 그것을 기억해서 다시 조깅화를 신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