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모델, 우상, 존경하는 인물 등으로 점철되는 그런 인물을 누구나 한 명은 가지고 있다. 정체성을 형성하는 청소년 시기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때 그런 인물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지금은 연예인, 스포츠 선수의 롤 모델로도 인기지만 당시(2007년 후) 여자들에게는 한비야가 인기였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03&aid=0004251858
10여 년 전 <중국견문록>을 읽고, 한비야는 망설임을 이기고 떠나겠다고 결심하면 실제로 떠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답게 사는 사람으로 봤다. 서른 중반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하고, 중국 유학을 가고, 난민들을 위해서 봉사했다. 그녀는 여자라도 혼자 세계 여행을 할 수 있고, 세계는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며, 우리를 향해 열려 있다고 세상의 밝은 부분을 보여줬다. 한비야의 밝은 기운과 세계에 대한 열린 마음을 닮겠다고 결심했다. 나이 탓하지 않고 떠나는 적극성을 배우고 싶었다.
지금 나는 그녀가 한참 여행을 하던 나이, 그녀처럼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동안 그녀에게서 배우려고 했던 가치와 마음가짐이 내게 스며들었다. <중국 견문록>을 보고, 일본과 중국 유학을 갔고, 외국어도 열심히 공부했다. 세상이 넓어졌고 여행도 자주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 남자와 결혼했다. 한국이 아니라도 좋아하고 마음이 편한 곳에서 머물면 거기가 고향이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그녀를 따른 삶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것은 그 인물의 하나부터 발끝까지 따라 하기보다는 그의 한 부분을 배우고 그것을 자신에게 내재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주어진 삶이 다르고, 현재 작은 선택 하나로 미래가 달라진다. 내 안의 어떤 것이 움직여야만 내게 영향을 미치고, 그 일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달라진다. 롤 모델들의 삶 중에서 닮고 싶은 부분을, 또 끌리는 점을 자신에게 적용해서 나 자신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바깥의 의미 있는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어떤 필터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소화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안의 내재적인 본성과 지금까지의 삶의 기본에도 영향을 받는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전공, 가정 환경, 교육, 사는 곳이 모두 다르다. 그 사람이 나보다 한 발자국 앞서 나가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있을 거고, 그만큼 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리라. 우리 모두는 고유의 본성을 지닌다. 비교를 때려치워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거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빛을 내리라고 믿는 것이다. 롤 모델의 삶에서 자극을 받아 노력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인생을 보고 배운다. 그것이 의미 있는 자신의 일부분으로 바뀌길 바라면서.
한비야가 신간을 냈다. 2017년 늦은 결혼을 하고 3개월은 한국에서 3개월은 네덜란드에서 6개월은 각자 생활을 하는 이 일반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에세이를 남편과 공동 집필했다. 산을 오를 때처럼 인생도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야 한다고 했고, 자기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던 참 그녀 다운 책이다.
댓글을 보면 ‘홍보 기사 내지 말아야, 낯짝이 두껍다. 사기꾼아.라는 다양한 악플이 달렸다.
10년 전에 있었던 한비야 거짓말 논란을 이제야 확인했다. 우상은 깨어지라고 존재하는 것인가. 대학생 때부터 늘 마음속의 우상이었던 그녀의 이미지가 깨어졌다.
거짓말이 많다. 그중에 몇 가지를 추려 보자.
1. 책에서 본명을 한비야로 밝혔지만, 실제는 한 인순이라고 한다. 세례명 Pia를 따서 비야로 개명했다고 했는데, 책의 내용과 다르니 거짓말한 셈이다.
2.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테레 한 반정부 지도자와의 사랑은 거짓이다. 현지인이 남자가 외국인 여성을 꼬시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을 그녀가 믿었다고 주장한다.
3. <중국견문록> 당시 한비야가 거주한 호텔 앞에 군고구마를 팔던 소녀를 언급했는데, 유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4. 볼리비아 루네나비께에서 한인 부부를 만난 일화를 소개했는데, 김밥을 받았다고 하나 일화 속의 한인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5. 한비야는 5개국어를 구사한다. 여행한 멕시코 지명이 책에서 정확하지 않다. 가지 않았거나 스페인어(발음과 표기법이 거의 같아 읽기 쉬운 언어)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 그녀의 외국어 구사 능력을 의심해야 한다.
6. 남미의 3분의 1을 히치하이킹했다. 남미의 경우 트럭 기사의 이름과 주소를 받는 게 예의인데, 그렇게 해서 이름을 받았다면 절대로 표기법이 틀릴 수 없다는 게 가정. 그리고 책에서 나온 트럭 기사 이름이 스페인어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거나 발음이 이상하다고 지적한다.
7. 한비야는 40kg이 되는 배낭을 메고 여행했다고 한다. 2일에 1번 잘 정도로 바쁘다. 그러면서 1년에 책 100권을 읽는다.는 말이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여행 스타일의 문제점
1. 온두라스와 캄보디아에서 국경 밀입국을 했다. 불법이고, 당국의 처벌을 받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 게다가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는 심각한 행동이다.
2. 탈레반 군사작전이 진행되는 위험지구에 들어가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죽을 뻔한 에피소드를 책에 적었다.
3. 멕시코에서 겪은 마약 체험담을 여행기에 소개했다.
4. 히치하이킹과 현지인 숙박을 자주 했다. 히치하이킹은 여성이 혼자 하기에 위험하며, 현지인 숙박은 민폐도 되며 여행객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었다.
5. 만나는 현지인과 외국인 여행자들과의 로맨스를 썼다. 매번 이런 로맨스를 겪는 것은 짧게 한곳에 머무는 배낭여행자들에게 불가능하다고 함.
6. 현지인 마사지사를 숙소로 불러 대담한 농담을 한 것을 여행기에 일화로 소개했다.
이 증거들로 보면 한비야는 거짓말을 했고, 잘못된 여행 스타일을 책에 소개했다. 게다가 그녀의 책은 청소년 권장도서다. 그녀를 보고 배낭여행이나 해외 생활을 꿈꾸었던 모든 젊은이를 오도했다. 몇 가지는 납득이 정말 안 된다.
7번에서 40kg을 매고 여행하고, 어떨 때는 20km씩 걸었다고 한다. 9kg을 가지고 하루에 20km 이상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 길, 쉬었더라면 더 갈 수 있었겠지만, 마지막 삼 일은 택배 서비스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배낭을 메고 다니려면 자기 몸무게의 10퍼센트 정도가 적당하다. 여성 몸무게를 55kg이라고 보면, 5.5kg밖에 안 된다. 40리터 가방, 무게 20kg 정도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다녔으면 수긍이 간다.
여행객은 당연히 여행국가의 법을 지켜야 한다. 예를 들면 밀입국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범법행위다. 군사작전지역에서 사진도 찍어서도 안 된다. 마약류를 해외에서 하고 그걸 여행기로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현지인 마사지를 불러 한 도가 지나친 농담은 사석에서나 할 수 있지, 책에 재밌는 에피소드 거리로 언급하기에 민망하다.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대단한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책을 사 준다. 시대를 잘 탔고, 그 시기에 혼자 여행 다니는 여자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녀처럼 과감하게 다니고, 그걸 글로 쓴 사람은 드물었다. 미지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에 그녀는 충분했다. 이제 정보가 많은 세상, 어떤 에피소드도 증명해 줄 사람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면 비난의 몽둥이를 맞게 된다. 잘못 기억한 것이라고, 혹은 잘못했다고 왜 인정하지 않은가. 인기와 명성이 그것 때문에 사라질까 두려웠던 것인가.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책을 사고 강연에서 찾아가서 그녀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비판 몇 가지도 납득이 안 된다.
반정부주의자 남자와 로맨스, 혹은 외국인 여행객과의 로맨스는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확인할 수 없는 개인의 로맨스 스토리에 독자가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현지 사기꾼이 여성 외국인을 나쁜 의도로 끌어들일 상황이었는데 그걸 로맨스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될 것이 있는가? 여행에서 로맨스를 꿈꾸는 여대생들을 부추기고, 배낭여행에 대한 환상을 갖게 했을까? 클럽은 남자들이 나쁜 의도로 죽을 치고 있으니 가지 말라고 해도, 거기 가는 여성은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한비야는 현지인 숙박과 히치하이킹을 자주 했다. 그런 여행 태도가 누군가와는 안 맞을 수 있지만, 해외여행이 지금만큼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히치하이킹과 현지인 숙박이 더 자유로웠지 않았을까. 여행을 하면 뜻하지 않는 현지인의 혹은 같은 여행객의 호의를 받아봤고 주위에서도 많이 보았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책을 읽었지만 감히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서 현지인 집에 묵을 생각은 안 했다. 민폐 끼치는 게 싫고,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생각하면 부담스럽다. 정해진 숙박업소에 묵는 게 마음 편했다. 친구와 경주로 무전여행을 떠났을 때, 불국사 밑 마을에서 어떤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 묵었다. 저녁으로 고구마와 감자를 얻어먹었고 새벽에 일찍 나오면서 봉투에 편지와 만 원을 넣고 나왔다. 어떤 식으로든 보답해야 한다는 게 다수의 사고다.
중국 신장에서 기차를 같이 탄 어떤 젊은 남자가 어디서 왔냐고, 친절하게 묻고 숙소까지 태워준다고 했다. 게다가 숙소 어디에 묵는지, 보고 우리가 잘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돌아갔다. 처음에는 의심했다. 오지라면 겁을 먹거나 친절이 아니라 사기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비야는 과감하고 그에 따라 운이 따라줬지만, 책에서 보면 여러 번 큰일을 겪을 뻔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고 그녀를 따라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보통 상식으로는 여행 위험지역은 가지 않으며, 현지인이 초대해도 좀처럼 응하지 않는다. 한비야 때문이 아니라 다른 신념이 있어서, 혹은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안 한다. 따라가서 봉변을 당했다고 해도 그들이 선택한 것을 작가를 탓할 수 없다. 자신이 한 선택이다.
에세이라도 혹은 기행문이라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도 어느 정도의 각색은 들어간다. 지나고 보면 사회 용인이 되던 행동이 지나치게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공인이고 책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더라도 책을 읽고 판단하고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독자다. 롤 모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받아들일 수도 없고, 다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근거해 판단하고 걸러, 우리 나름의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다만 그걸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있다. 특히 한비야의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녀가 잘못된 부분은 인정해 주면 좋겠다. (작가의 도덕성과 기이한 행동을 의심하려면 의심되어야 하는 작가들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이 없었던 게 되지는 않지만) 한때의 존경하는 인물이었던 그녀의 정직성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