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세게 여행 하는 걸 좋아한다. 아마도 여행에서 본전을 뽑겠다는 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해서 , 같은 비용으로 되도록이면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는 경제관념이 여행과 결합해서 생긴 것이리라. 아이가 없을 때는 별문제 없이 그런 관념을 잘 실천했지만, 아이가 생기고부터는 어려웠다. 하나씩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겼다. 본전 생각도, 기존의 빡센 여행도.
1. 관광명소
첫째는 두 돌, 둘째 임신 8개월 때 로마 바티칸에 갔다. 가이드를 끼고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갔다. 아이는 좁고 조용한 그 공간을 싫어했고 칭얼거렸다. 한번 들어가면 중간에 나올 수 없는 구조, 일방통행이었다.
천지 창조가 있는 곳, 조용히 하세요. 쉿 쉿!!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그런 통제된 구역을 어떻게 반응하지는 지켜보았다. 1분 간격으로 “Slient!!”를 외치는 보안관의 외침. 움츠러드는 사람들. 울타리에 처진 그 좁은 공간에서 고개를 쳐들고 어떻게 작품을 감상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아이는 가끔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막는 남편, 남편의 불편한 표정을 읽은 나의 배는 딱딱해졌다.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계단도 있었고,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멈춰서 마음처럼 빨리 나아가지 못했다. 그 좁은 계단을 칭얼거리는 두 돌짜리 첫째를 안고 유모차를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왔다.
성당을 다 나오고 나니 광장이 펼쳐졌다. 비가 갑자기 대리석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비옷을 급히 사서 입은 사람들, 교황을 기다리는 혹은 다른 구역으로 들어가려는 청소년 단체 여행객들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추웠다. 아이는 밖 공기를 맡으니 그래도 좋았나 보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비를 맞고 나오면서 어쩔 수 없이 우산을 사기로 했다. 우산은 10유로. 바가지를 썼다. 비를 맞는 것보다 나으니깐 가격 바가지 우산을 쓰고 차에 겨우 들어갔다. 신발도 어깨도 무릎도 다 젖었다.
내 욕심 때문에 갔던 바티칸. 그곳은 아이와 함께 갈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어떤 좋은 도시를 가도 한 명소만 그리고 다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볼 수 있는 곳만 본다.
관광명소에는 사람들이 많다. 이탈리아 마카도,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 혹은 유명한 곳들은 늘 관광객으로 붐비기 마련이다. 코로나 시국에서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은 꺼리게 되지만 그게 아니라도 아이와 관광지와 이렇게 붐비는 곳에 가지 않는 이유는 많다.
그런 곳에서 밥을 먹는다고 하자. 배는 고픈데 식당에 자리가 없다. 혹은 식당을 잘못 고르면 배는 고픈데,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보고 먹어야 한다. 빵이나 밥을 흘리면 청소도 해야 한다.
또 입장권을 산다고 해도 사람이 많으면 줄을 오래 서야 한다. 아이들은 그런 기다림에 익숙지 않다. 버스나 전차 이용 시 사람이 붐비는 곳은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2. 맛집
소문난 맛집도 포기했다. 일단 외지에서 맛집을 찾는 것은 지도가 있어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든다. 아이는 유모차에 타고 있다. 지금은 시 중심지다. 덜컹거리는 유모차를 끌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맛집을 찾는데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의 배고픔이 동반한 짜증에 우리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특히, 겨울에는 아이들이 배가 고프면 지치면 바로 따뜻한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들어가야 한다.
설상 먼 길을 가서 맛집을 찾았다. 막상 먹어보니 입맛에 맞지 않는 곳이라면 또 어떡한단 말인가. 그리고 대부분의 맛집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작은 실내 놀이터가 아니라도 아이들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조금 떠들어도 소음이 울려 퍼지는 높은 천장, 옆 손님에게 방해되지 않는 넓은 복도가 없다면 난감하다.
또 맛집은 어른들의 입맛을 충족시켜줄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피자와 스파게티 정도다. 그런 메뉴라면 보통 어느 레스토랑도 맛이 괜찮다. 그래서 우리는 배고플 시점과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들 중에서 고른다. 어느 식당이라도 메뉴만 잘 고른다면 한 끼 식사로는 그냥저냥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니 여행은 그 후로 좀 더 재밌어진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사실 레스토랑보다는 슈퍼에서 빵을 사서 호텔에서 먹는 게 가장 편했다. 소리 질러도 돌아다녀도 누구 눈치를 안 봐도 됐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집중하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맥도날드,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점은 자유로운 분위기에 놀이터도 갖추고 있어서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늘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3. 장거리 여행과 버라이어티 한 일정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오랫동안 참지를 못해서 자주 화장실을 가야 한다. 기저귀는 밖에서도 갈 수 있지만, 큰일은 아무 데서나 할 수도 없어서 꼭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자주 목이 말랐으며 선크림을 발라야 했으며 조용한 곳에서 쉬기도 해야 한다. 먼 곳을 가기 어렵다.
장시간 차를 타지도 못한다. 차에서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싫어한다(대부분의 어린아이들). 잠시라도 바람을 쐬고 휴게소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장거리 여행은 시간이 많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단거리로 가더라도 하루에 일정 하나면 충분하다. 수영장 가기, 도시 한 곳 방문하기, 친구 집 가기, 놀이공원 하기다. 관광명소에 가더라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놀이터, 그 주변 어디에 공공 화장실이 있는지 정도다. 아이들은 많이 걷지 못하기 때문에 유모차, 혹은 손수레 같은 게 없다면 아무리 유혹을 해도 아이들을 걷게 하기는 무리다. 그래서 도시 구경도 짧은 구간만 걷는다.
춥거나 너무 더워도 여행을 하기 어렵다. 몸이 불편하고 아프거나 피곤하면 아이들은 예민하게 굴었다. 그러니 그런 것을 다 고려한다면 일정은 융통성 있게 줄이는 게 낫다.
4. 원하는 활동
미술관, 험한 등산, 박물관, 유적지, 교회, 차를 타고 멀리 가는 곳에 가고 싶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거나, 유적지에서 설명을 자세히 읽고 공부하며 사진 찍기, 세 시간 이상 걷는 등산 같은 활동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실내에서 아이들의 집중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조용히 시켜야 해서 스트레스다. 또 한 시간만이라도 산책하자면 생각보다 정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가는 여행지는 보통 야외, 해변 공원, 호수, 산 놀이공원, 도시 위주다. 보통은 모래사장에서 놀기, 아이스크림 먹기, 놀이터에서 논다. 아이들은 멋진 경치도, 오래된 성당의 아름다움보다는 흥미롭지 않다. 놀이터에서 발견한 작은 돌멩이를 더 좋아하고 금방 사귄 친구들을 때문에 흥분한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과 절충해서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 케어에 에너지가 딸려서 아니면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절충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다만, 포기해서 좀 더 여행이 편해졌다는 건 사실이다.
아이와 함께 여행하면서 포기하고 얻은 것들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행하다 보니 그들의 웃음을 그때마다 볼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의 속도와 눈으로 세상(놀이터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신을 희생하고 그들을 챙겨줄 수 있다는 부모로서의 뿌듯함을 느끼는 것.
내가 원하는 여행이 아니면 어떤가, 가족 구성원 아이들이 즐겁고 재밌으면 우리도 좋다. 대신에, 혼자 일 년에 한 번씩은 빡센 여행을 갈 여유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