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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과 산후 육아 우울증

by 원더혜숙



2015년, 둘째를 낳고 인생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



‘혼자라면 독어도 자유롭게 배우고, 쇼핑도 하고 여행도 할 텐데… … 독어도 운전도 못하고, 친구도 자신감도 없어. 독일생활도 육아도 처음이야. 모유수유때문에 새벽에 몇 번이나 일어나야 하고, 수면부족으로 낮에는 정신없이 기저귀를 갈지. 첫째도 아직 아기. 엄마로서만 살아야 하는걸까? 나는 누구인가.’



첫째는 한국에서 낳아 산후 조리를 끝내고 독일로 왔다. 우울증을 이겨 내기도 전에, 둘째를 낳았다. 나는 독일에서 독일어도 제대로 못하는 이방인. 남편 외에 다른 도움없이 연년생 아이들을 낳아 키웠다. 심지어 남편은 출장이 잦았다. 이것이 내 삶의 조건이었고, 바로 이것이 심신(心身)을 지치게 했다. 산후 육아 우울증, 그것을 겪었다.




출산 육아로 엄마들은 보통 우울증을 겪는다. 육아하면서 엄마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자신을 희생하고 아기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충족시켜 줘야한다. 임신 출산 육아까지 연결된 이 모든 숙명의 고리에서 자유로울 엄마는 아무도 없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회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놔두면 늘 무의식 기저에 남아 변화를 막는 덫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힘들지만, 어떤 이는 가볍게 극복하고 어떤 이는 그 수렁에 오랜 기간 머문다. 같은 경험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경과가 달라지는 걸까.




때로는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다고 한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몸이 회복되고, 아이가 자랄 때까지 점점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내 경우, 첫째가 자라고 돌이 될 때까지, 별로 나아지는 게 제로. 몸은 더 무겁고, 의욕도 제로. 자연스럽게 침몰하는 것 같았다.



심하지 않는 이런 우울증(때로는 심각해서 전문의와 상담해야 할 수도 있다)의 경우 여러 활동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요가, 그림, 글쓰기, 독서, 사교, 여행, 회사 복귀 등등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많다. 취미나 좋아하는 상황과 선호에 따라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다. 다만 육아로 피곤하고 마음은 우울한데, 이런 활동을 시도해 볼 의욕이 날까?



시작하자!!

시작을 해야 한다.

어떤 작은 것이라도.



나는 이 모든 걸 거의 시도했다. 어느 한 행위가 만병 통치약으로 절대적 효력이 있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또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육아도 쉬워지고 그런 활동들의 효과도 천천히 발휘했다. 그럼에도 산후 우울증을 겪고 여러 번 정체기를 겪으면서 가장 많이 한 행위이자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할 활동은 러닝이다.



둘째를 낳고, 아이 4개월 때부터 조깅을 시작했다. 30분부터 천천히 해서, 한 시간, 지금은 하프까지 달린다. 사실, 바로 직장 복귀하는 엄마들도 있는데, 조깅 가는 게 무슨 대수라고 할지도 모른다. 시작과 시도가 자신을 구한다. 작은 시작과 도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감이 생긴다. 작은 것이라도 성취하면 그것으로 다른 것을 도전할 힘도 얻는다.



갓 태어난 둘째를 아기띠로 품고, 아기 형아를 앞세우고 축축한 독일 겨울 산을 걸으면서 되살아났다. 가능한한 자주, 되도록이면 많이 밖으로 숲에 가서 걸었다. 4개월이 되던 날, 다시 조깅화를 꺼냈다.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신은 조깅화는 30분도 제 역할을 못하고 주저앉았다. 30분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까지 3달이 족히 걸렸다. 도로 옆 포장된 자전거 길을 달리면서 몸과 마음이 좋아졌다. 도시 마라톤 대회에 10킬로미터 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러닝에 활력이 붙었고, 그 시간만큼 몸이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라틴댄스, 복싱 에어로빅 등을 통해 몸에 탄력을 더했다.



임신 10개월, 출산 후 산후 조리 100일 기간동안 거의 1년 동안 몸은 늘어져 있다. 임신과 출산은 일반적으로 휴식과 안정을 권하고 그 권유를 받아들이고 이행하면 몸무게도 늘어나고 몸은 이런 이완에 익숙해지고 결국엔 습관이 된다. 아이는 걷기 시작하고, 몸은 붓기가 빠지고 조금 힘이 돌아 뭔가 할 의욕이 날 때쯤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몸이 게으름과 꼭 들러붙은 거다.



오랫동안 늘어진 몸은 습관화되어 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게을러지며 우울해진다. 몸을 움직여야 마음도 움직인다. 몸을 움직이는 어떤 활동이라도 이런 시기를 벗어나는데 유용하다. 되도록이면 빨리, 자신의 신체 조건에 따라 간단한 스트레칭, 걷기, 복부 운동, 요가, 필라테스 등의 가벼운 움직임으로 몸을 움직여주자. 이런 활동은 조깅보다 강도가 덜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생활의 활력을 준다. 그간의 습관을 버리기에 도움이 되며 산후회복과 우울증에도 도움이 된다.


러닝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했기 때문에,러닝만을 우울증 극복의 처방전이라고 꼽을 수 없다. 글쓰기, 여행 혹은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기분 전환한 모든 것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줬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몸을 움직이고, 짧은 기간이라도 한 가지 행위에 몰입하려고 애썼던 그 시간이 힘든 육아를 견디게 해줬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더 좋고, 그런 활동을 시작하자. 해 보자. 무기력과 우울증을 견뎌내고 게다가 그전보다 더 활력 있게 살 지도 모르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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