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더혜숙 Aug 02. 2021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

우리가 너무 달랐지만 닮았다는

일본에서 지냈던 기숙사 타타미 방은 넓었다. 이층 건물 뒷 정원이 보이는 창이 하나, 옆 집이 보이는 창이 하나, 동북쪽 끝 방은 커서 추웠다. 전기 장판도 있고, 두툼한 곰돌이 무늬 담요도 있었지만 작은 몸뚱어리를 조여오는 건물 끝 추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도둑들은 배수관을 타고 올라온다고 했다. 밤중에 간혹 쇠붙이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움츠러들었고, 깊은 벽장에서는 투명한 일본 습기 귀신이 올라올 것 같았다. 



1년 단기 독립을 하러 떠나온 타국이었다. 수업이 없고 배부르면 그 서늘한 타타미 방에서도 졸음은 몰려왔다. 잠을 이기며 일기를 썼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졸려고 비싼 돈 들여가며 이곳에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럴 때면 선배 방을 찾았다. 



어떤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절대로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멀리서만 바라본 적 있는가. 선배는 도도해서 다가가기 어려웠다. 같은 학부였다가 전공을 결정하고는 학과에 나오지 않지만, 우리 과 복학한 선배와 사귀는 사이여서 사물함을 뒤적이면 눈치를 보고 과실 문을 열고 들어와 빼꼼 고개를 내밀고 남자친구를 찾았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브이자 턱 선에 눈빛이 게이샤처럼 날카롭게 올라갔지만 속눈썹이 길어 매력적이었던 선배는 피부가 희고 매끈해서 빨간 립스틱이 완벽하게 어울렸다. 글래머여서 어떤 옷도 맵시 있게 잘 어울렸다.


나는 산골에서 갓 올라온 촌뜨기, 패션 감각도 떨어지고 그렇다고 자신감은 있었나. 학과에서도 다른 시골 출신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런 잘난 체하는 도시 출신 동기나 선배들의 무시하는 눈초리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내가 외국이라면 오지에도 갈 것 같은 투기로 교환학생에 지원해서 붙었다. 엄마에게 거짓말하고 한 학기 분량 학자금을 내서 사고 싶은 옷도 사고,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까지 생활비를 할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마음껏 돈을 쓰게 된 내가 고른 옷차림은 고작 리바이스 501 청바지와 맨투맨 티셔츠, 그때 한국어를 배운 중년 미혼 남성과 옷차림이 비슷해서 서로 민망했었다.  



내가 가지지 않았지만 가지고 싶었던 여성스러움과 세련됨을 가졌던 그녀는 대구 사투리의 반전 매력에 솔직함까지 워너비의 대상이었다. 그런 선배랑 같은 학교에 유학을 가게 된 건 행운이었다. 심지어 같은 기숙사에 살고 방 문을 열면 선배 방문이 바로 보였다. 일본인과의 모임, 외국인 축제, 주말 여행, 자전거로 등교 등 공유한 것들 것 많았다. 



일본 물가가 비싼 걸 들은 사돈부인이 먹을 것을 싸줬다. 약지, 김치에 김치 양념, 멸치, 깻잎 쌀까지 한 상자를 빵빵하게 채웠다. 출국일, 바리 바리 싼 음식 보따리와 여행가방 하나를 수하물로 부치고 탑승 수속을 마쳤다. 그간 사돈 친적집에서 더부살이하느라 힘들었지만 엄마보다 더 신경 쓰고 돌봐주신 친척과 헤어지려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친하지도 않은 후배의 그런 모습을 보고 선배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뭔 먹을 걸 그렇게 많이 싸 오나, 비웃었던 선배는 둘째 날부터 내 음식을 함께 먹는 처지가 되었다. 사 먹어도 됐지만, “먹을 거 올때까지 내꺼 먹어요.” 옷과 책 빼고 먹을 걸 전혀 가져오지 않는 선배는 그 친절에 고마워했다. 


한솥밥 먹은 친구는 늦게 일어났고 밥을 하면 설거지를 안 하고 가는 일이 많았다. 선배는 그런 친구를 못 마땅해했고, 나는 선배 편에 서서 우리 관계는 서먹해졌다. 언쟁 후에 남은 우리 둘만의 연대는 콧대 높아 보이던 선배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수업을 챙겨줬던 선배는 생각보다 순수했고 사람 냄새 났다. 



그러나 우리 사이를 끼어든 사람들이 많았다. 부드러운 말투에 예쁘고 게다가 유순한 성격을 가진 광주 출신 친구가 선배랑 친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어떤 모임을 가면 둘은 늘 자매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고, 둘 다 예쁘다는 칭찬에 둘은 친자매처럼 착 달라붙었다. 옷 잘 입는 것도 비슷했고, 감정 기복이 있었던 선배에게 친구는 유순하게 잘 맞춰주었다. 둘은 동시에 일본인 친구들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나중에 알바도 같은 식당에서 했다. 그 둘 사이에는 나와 선배 사이의 격차가 없었다. 자석처럼 찰싹 들러붙어 절대로 끼어 들 수 없는 친밀함이 존재했다. 그래서 더욱 그 사이에 끼어들고 싶었을까, 아니면 지독한 외로움이 어떤 사람에게 매달리게 하는 집착을 만들어냈을까.



그날도 선배 방에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가는 날이었다. 책상 앞에 있는 미라클 향수를 집어 들어손목에 뿌리고 귓가에 문질렀다. 

-야는, 뭐 아침부터 향수를 뿌리고 난리고.



사랑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엄마가 채워주지 않는 사랑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다. 선배 옆에 있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다. 가까이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어서 선배 방에서 매일 갔다. 북쪽 끝 방에서 오돌오돌 떨었던 몸처럼 마음이 추웠고,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날이 추워지고 혼자라는 사실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느껴질수록 선배 주황색 이불을 더욱 파고들었다. 불청객을 쫓아내려는 선배를 무시하고 겨울 내내 거기 있었다. 선배가 남자친구랑 통화할 때도, 성호 선배랑 바람 필 때도, 야스오랑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설레할 때도. 



스튜디어스 1차를 붙고 2차 면접 결과를 앞두고 선배와 밥을 먹었다. 우리 인연이 거기서 끝날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그 후로 선배를 본 적이 없다. 싸이월드나 문자, 메일까지 아는 방법을 다 동원해서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중국을 갔다 오고 결혼 소식을 전하려 광주 친구에게 선배 연락처를 받아 통화를 했지만 그녀의 떨떠름한 목소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대변했다. 



한때 선배랑 그 광주 친구와 카톡 그룹 채팅을 함께 있었다. 평소처럼 수다를 떨었지만 선배가 내 어떤 말에 분노했다. 

-너는 늘 그런식으로 반응하고, 혼자 오바해. 

그게 뭘까? 그게 뭔가. 어떤 포인트에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이해 못했다.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영원히 선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해서. 우리는 정말 다른 존재라는 것이 슬퍼서.

선배는 내 행동이 걸리적거린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만 말하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듣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내 생각과 방식으로 선배를 판단하고 위로하고 조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연락을 일부러 받지 않았겠지. 선배는 그게 싫었겠지. 내 결혼식에도 오고 싶지 않을만큼.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지난 기억 때문에 나를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그게 뭔지, 선배가 말한 적 없으니 추측만 할 뿐이다. 



생긴 것이나 성장한 배경은 달랐지만 우리는 딱 한 가지 공톰점이 그것이었다. 생각나는 걸 다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느낀 것은 꿍하고 속에 담아 놓는 사실. 이 사람이 좋지만 성가시거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해도 내색하지 않고 그게 뭔지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엔 상대에게 그걸 알리지 않은 채 그 앞에서 사라졌다. 

나도 한 친구의 비위를 맞춰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연락을 다 무시하고 일방적인 절교를 했던 적이 있다.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들었고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하는 게 미숙하다고 할까. 결국엔 그 친구와 일방적으로 절교했다.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그 친구는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몹시 궁금했을 것이다. 황당했을 것이고, 슬펐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사람과의 만남과 함께한 추억이 좋아서 그 사람을 놓아주지 못할 때가 있다. 진심으로 좋아해서 놓을 수가 없다. 그 사람이 내게 왜 그랬던건가 이유를 찾아보지만 이유를 잘 모를 때, 그런 반대 상황으로 상대방을 상처주고 돌아선 후에,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후회되는 그런 관계, 그런 인연 다시 안 만났으면 좋겠지만, 알 수 없다. 내 인생과 내가 만날 사람들을 예견할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해외 동포 여러분이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