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남자 짝사랑
건물 외벽에 자전거를 기대고 자물쇠를 걸었다. 고개를 들고 이층을 올려다보았다. 창으로 그의 갈색 구두가 보였다. 매장 유리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진한 커피 향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매장에 들어서자 검은색 폴로셔츠에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점원이 순서대로 커피 주문을 받았다. 천장까지 닿은 왼쪽 벽장에는 초콜릿, 쿠키, 시즈오카 텀블러와 머그잔이 진열되어 있고, 초코 케이크와 머핀이 투명한 쇼케이스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커피콩 자루 위에 커피콩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메뉴판 옆, 작은 칠판에 '오늘의 커피는 자메이카산 커피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의 커피로 주세요.
다른 커피를 맛보고 싶지만 오늘도 오늘의 커피를 주문한다. 갓 내린 커피 향과 함께 흰 머그잔에 찰방거리는 아메리카노를 조심스럽게 들고 붉은 갈색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왼쪽 창가에서 그는 노트북에 타이핑하다 골똘히 생각하다 내가 온 걸 보고 인사했다.
-키타노?(왔어?)
그는 미국에서 온 유학생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유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시미즈 수족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학교가 새로 온 유학생들을 위해 작은 소풍을 마련했다. 그는 버스 맨 뒷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미국의 워싱턴도 아니고 뉴욕도 아닌 알지 못하는 도시 출신이었다. 어쨌건 그는 중학생 때 보았던 캐나다 원어민 선생님을 제외한 최초의 외국인이었다. 그는 금발의 곱슬머리와 하얀 피부, 푹 들어간 푸른 눈, 잘 뻗은 코와 날카로운 턱 선, 널찍한 어깨를 가졌다. 또 그는 잘 웃었다. 그가 잘 생겼는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는 내가 그때까지 보아온 사람과 달랐다. 몸을 돌리고 그를 관찰했다. 그는 아딕뎌와 대화하며 웃고 있었다.
-‘나니?(뭐?)
그의 잘 말려 올라간 긴 금발 속눈썹이 빠르게 움직였고 그는 부끄러워 어색하게 웃었다.
-저스틴은 애가 참됐어.
광주에서 온 친구의 말이다.
-히스 그 자식은 우리를 아조 무시해. 인사도 안 하고 그냥 싸악 무시하고 가부리제. 그냥 우리 저스틴은 배배 웃으면서 싹싹하게 인사하는 것 좀 봐. 얼마나 귀여워.
가끔 학교에서 우연히 그를 봤다. 그는 일본인, 미국인, 인도인, 방글라데시아 유학생들과 인사를 나눴다.
-겡키나노? (건강해?)
일상에서도 아메리칸 식 인사로 친구들의 건강과 안부를 물었다. 그런 질문에 그냥 좋아, 하고 간단히 대답하고 지나갈 사람은 별로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최소 5분 정도 대화를 하면 식사를 하고 와도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수업 따라가기가 어려워. 일본어 왜 이렇게 어렵니?
-그래? 힘내. 근데 그거 알아? 우리 금요일 밤에 국제회관에서 파티 있어. 놀러 와.
어제 만났건 오늘 만났건 그 옆에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도 파티에 초대했다.
유학생들은 주말마다 음식 파티를 했다. 각자가 자신 있는 자기 나라 음식을 해오는 게 참가 조건. 국제회관이라고 불리는 외국인 기숙사에는 한국인은 물론 국제 유학생이 거의 다 모인 아파트 형식의 기숙사였다. 모두 각자 방이 있었고, 그곳 일층에는 탁구도 하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강당 같은 곳이 있었다. 그곳에 유학생들은 모였다.
파티는 국제회관의 큰 언니인 자가다가 열었다. 자가나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일본어 선생을 하다 일본에 어학연수를 왔다. 제일 나이 많은 언니로서 한국 유학생들은 동생처럼 챙겼고, 저스틴처럼 외국인들과 교류하기를 좋아했다.
-헤스가, 국제회관에서 파티 있는 거 알아? 너네 할 수 있는 거 해와. 연지도 진짱도 다 같이 놀러 와.
우리는 부침개 잡채 같은 자극적이지 않는 한국 요리를 했다. 인도친구는 난, 저스틴은 팬케이크를, 자가나는 몽골식 우유 밥을, 방글라데시 아디는 노란 재스민 라이스에 카레까지 한 상 차려 놓고 나면 회관 전체가 음식 냄새로 진동했다
그날 저스틴을 처음으로 소개받았다.
-여기는 한국에서 온 헤스가이고, 여기는 미국에서 온 착한 저스틴이야.
자가나는 소개를 하고 파티 준비를 하려고 사라졌다.
-전공이 뭐야? 일본어는 잘 해?
처음 만나면 으레 하는 질문과 대답을 했다. 그는 어떤 질문을 해도 약간 입을 벌리고 웃었다. 훗날 가족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렸을 때 턱을 다쳐서 수술을 했고 그 이후로는 입을 잘 못 다문다고 했다. 자기 동생이 부모님의 좋은 점만 물려 받고 자기는 나쁜 것만 물려받았다고.
우리는 자가나를 도와서 테이블과 의자 놓았다. 파티를 준비하면서, 먹으면서, 파티가 끝날 때까지 그는 한시도 파트너가 없은 적이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이와 대화했다. 영어를 하는 친구들과는 아주 자신 있게, 일본어로 하는 아이들에게는 약간 부끄러운 듯 단어를 생각해내고 문장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하면서 또 어색하면 배시시 웃으면서.
-키타노?(왔어?) 여기 앉아.
테이블에서 자기 물건을 치우고 자리를 가리켰다. 기본 동사에 노를 붙어서 의문형을 완성하는 어법을 좋아했던 그는 노,에서 억양을 올리며 웃었다.
-응, 숙제하고 있었어?
그는 큰 스프링 노트에 한자를 두 줄에 하나를 채워가며 삐뚤빼뚤하게 썼다. 언제는 열심히 적는 것 같더니 언제는 두꺼운 영어 전공 책을 읽다가 언제는 소설도 읽었다.
나는 집중하고 일본어 공부를 했다. 사라졌다 돌아온 그는 오른쪽 테이블에 종이에 싸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초콜릿 쿠키를 놓았다.
-얼마야?
-됐어. 그냥 먹어.
그는 손바닥만 한 쿠키를 두 번 만에 꿀꺽했다. 그리고 다시 받아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히스와 달랐다. 히스는 목덜미에 파란 문신을 하고 얼굴에 피어싱을 하고 청바지를 축 늘어지게 입었다. 건들거리거나 어기적 걸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유학생과 함께 다니며 영어를 배우려는 일본 여자애들을 낚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실제로 그랬는지 아닌지 확인한 사람은 없다. 그저 멀리서 인사하지 않고 지나갈 뿐 그가 우리와 말을 섞은 적이 없으므로.
저스틴은 아시아인에게 살가웠다. 아니 거의 아시아인에게만 둘러싸여 있었다. 한국인 유학생들과 중국인 몽골인까지 합쳐서 그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전공을 하는지 꼬치 꼬치 캐묻는 질문에 식은땀을 빼면서 대답해야 했다. 가끔 너무 사적인 질문을 받으면 그는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사적인 질문을 구분할 공통의 문화가 없었으므로.
그는 미국에서 왔지만 히스나 다른 까진 애들처럼 영어 잘하는 일본 여자애들이랑 놀지 않고, 굳이 발음 꼬이는 일본어 발음으로 한국,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의 아시아인들과 잘 어울렸다. 예의 바르고 사람들을 챙기는 저스틴은 잘 자란 청년이었다. 정치외교학과를 다니고 있었고, 나중에 중동의 어느 나라에 외교관으로 가고 싶다는 꿈을 말했다.
열심히 책을 읽던 그에게 물었다.
-너 연애할 마음 없어?
그는 약간 당황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잘하고 싶고, 연애하면 그 사람에게도 잘 해주고 싶은데 나는 바보라서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할 자신이 없어.
-아니, 그게 왜 안돼?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들은 나는 그의 반응에 당황했다.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나 말고도 국제회관에 사는 중국 여자애랑 밥을 먹으러 가고 같이 공부도 했다. 영어도 잘 했고 일본어도 곧잘 잘 했던 그녀는 저스틴과 있을 때 내가 그런 것처럼 그를 궁금해하거나 신기해하지 않고 편하게 대했다.
-고거 여시여. 저스틴이 아주 홀랑 빠지겠구먼. 만인의 연인인 우리 저스틴을 독차지하려는 거야.
광주 친구의 말에 몸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늦봄, 저녁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순푸 공원을 지나고 있었다. 공원은 한적했다. 시끌벅적하던 하나미가 끝났고 축제도 지났다. 가끔 마른 벚꽃잎이 날렸다. 이름만큼 조용한 이 도시는 도쿄보다 생활 템포도 한 걸음 느려서인지 사람들은 그에 걸맞게 천천히 걸었다. 오늘 저녁에는 자가나를 만나러 갈 것이다. 자전거 핸들을 잡은 그의 어깨는 넓었다. 뒤에서도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상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