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더혜숙 Nov 12. 2021

크리스마스의 '좋은 기억'


2003년 크리스마스 전야, 대구 백화점 정문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 말고도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화점 1층 매장에서 문을 열 때마다 훈훈한 열기가 밀려왔고, 어떤 여자의 코트에 랑콤 미라클 향수가 묻어 거리에 흘러 들어갔다. 그녀는 뛰어온 듯 코끝이 빨간 남자의 어깨를 치고 말했다. “오빠야, 왜케 늦게 왔노?” 대답보다 남자의 등장에 기쁜 듯 둘은 팔짱을 꼭 끼고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대백 앞 동성로 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연달은 가게들의 흰 전등과 빛 경쟁을 하듯 높이 솟아 있었다.




© Daria-Yakovleva, 출처 Pixabay



나는 친구들의 팔짱을 꼭 끼고 피자헛으로 향했다. 버거킹을 지날 때 기름향이 코를 스쳤고, 액세서리 노점 위에 전등이 깜빡거리고, 매대 어묵과 떡볶이가 김을 모락모락 내다가 백열 전기등에 부딪쳤다. 매운 국물 냄새가 화끈했다. 어느 옷 가게에서 터보의 캐럴이 들렸다. “하늘을 봐, 하얗게 눈이 내려와.” 한 블록 뒤에서는 캐럴 고전 중에 고전, 머라이캐리의 캐럴도 흘렀다. “All I wanna for Christmas is, with you.” 당신은 없어도, 샐러드바에서 단호박 샐러드와 강낭콩 샐러드에 사우전드 아일랜드 소스를 듬뿍 뿌렸다. 치즈 풍미 가득한 피자로 배를 양껏 채우고,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까지 한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




배도 불렀겠다, 쇼핑을 할 차례. 동성로는 불빛으로 대낮처럼 밝았고 모두들 인파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와 쇼핑백을 들고 그들 목적지로 향했다. 중앙로 지하철 입구 오른쪽 화장품 가게에서는 레몬향이 났고, 건너편 한일 극장 앞에서 오징어 버터구이가 자글자글 구워졌다. 그 향기를 물리치고 캘리포니아의 햇살 닮은 오렌지가 연상되는 브랜드 옷 가게에 들어가 나는 와인색 후드를 입어 보고 친구는 썰매 끄는 스웨터를 샀다.




올해도 셋 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연인이 생기지 않았다. 마음이 외로워서 오르르했던 것인지, 추워서 떨었던 건지. 목덜미를 후려치는 추위는 털목도리로 감싸고, 허전한 옆구리는 친구들의 체온으로 채웠다. 내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겠지.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설렜고, 그 희망은 따뜻한 당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2013년 그 해 12월에는 눈이 자주 내렸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날도 황석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눈이 하늘하늘한 창가를 채였다.




아이는 금방 젖을 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그 좁은 방에 세 식구가 자리 잡은 지 딱 일주일, 아이 배냇저고리와 목욕 수건이 내 옷장 한편에가지런히 개켜 있었고, 간이 수납장에는 가제 수건과 물티슈, 기저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산모 이부자리를 살짝 밀치고 그 옆에 남편은 반상을 펴고 초콜릿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하나도 안 나.




나는 남편이 준비한 소박한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마주하고 힘없이 웃었다. 남편도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었다.


경쾌한 크리스마스 캐럴을 배경으로 외롭지만 기댈 사람이 없어서 허전했던 그 시절의 애탐, 정신적 허기를 음식과 옷의 포만감으로 채웠던 그 시절이 언뜻 내 마음속에 진짜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남아 박혔었나.




아이는 두 시간마다 깨어 울었다. 모유 수유는 산모가 해도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도 자주 깼고 잠을 못 자 피곤했다. 앉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렸고, 피곤한 얼굴로 수유를 하는 아내를 안타까워하고, 새언니와의 갈등에 힘이 되어 주고 싶던 남편의 마음을 왜 모를까마는, 그때는 크리스마스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너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해 크리스마스는 조용히 지리밟고 싶었다.




산부인과를 나오고 나서 모유 수유 때문에 하룻밤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무통분만의 후유증으로 엉치뼈가 아파서 제대로 앉을 수 없었지만, 매일 밤 두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아기에서 젖을 물려야 했고, 수유 간격을 늘리기 위해 노트에 시간을 기록해야 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도 젖을 늘리기 위해 유축기로 좀 더 뺐다. 수면 시간은 더 줄어들었고, 그래서 그런지 젖은 더 안 나왔다.




조리원의 수유 간호사에게 젖 물리는 법을 배웠고 몇 가지 팁을 얻었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되거나 그녀의 노하우가 내 경우에 맞지 않았다. 물리면 물릴수록 많이 나온다. 아이가 젖을 빨 힘이 생기면 더 많이 나온다.




육체적 허약함과 수면 부족이 겹치면서 정신은 사막처럼 말라갔다. 한낮 사막을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처럼 모유 수유를 둘러싼 새언니와의 갈등도 뜨거웠다.




새언니는 홍합과 소고기, 닭고기나 멸치로 국물을 내 매번 다른 식으로 미역국을 끓여줬고 신선한 샐러드와 드레싱도 냉장고에 준비해 줬다. 기본 반찬에 소고기장조림까지 산모를 살뜰하게 챙겼다.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산후조리하는 힘든 산모를 위해 올케언니는 아기 목욕과 기저귀도 대신 맡을 때가 많았다. 아이 몸무게를 재고, 아기 소변과 변을 보고 올케언니는 걱정했다. 애가 제대로 먹지를 못한다고, 그래서 자주 깨서 우는 거라고, 아기는 큰데 네 젖 통이 작거나 치밀 조직이어서 젖이 모자란다고. 비수를 꽂았다. 올케언니는 모유 수유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게 그런 충고를 하다니 합당치 않았으며, 내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다는 엄마를 방해하는 그녀가 미웠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피가 나도 약을 바르고 젖을 물렸다. 모유 수유에 성공했지만 드문드문 연락한 친구에게 톡을 보내 조언을 구했다. 젖량을 늘릴 수 있는 팁을 맘 카페에서 검색하고 실천했다. 물과 두유를 엄청 많이 마셨다. 미역국도 빼먹지 않고 잘 먹었다.



유축기로 틈틈이 짜냈지만 내 젖은 내 마음만큼 나오지 않았다. 산모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오지 않는 젖을 짜내려고 하고, 금방 비었고, 뭔가 모자란 듯 우는 아이를 보는 건 더욱 힘들었다.



나는 애타게 모유 수유를 성공하고 싶었다. 자연적인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었고, 내 몸이 아파도 잠을 못 자서 신경이 예민해져도 아이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모성이 거기에서 싹텄다. 그것만이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첫 선물이며, 그렇게 해야만 최고의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배운 대로 엄마의 희생을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엄마 되기는 어려웠고 서툴렀다.




그 집착을 좀 버렸으면 어쩌면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그것보다 엄마인 스스로를 잘 챙길 때 아이들도 자기 스스로를 잘 챙긴다고 깨달은 지금이라면 그 같은 선택, 모유 수유 성공에 구태여 매달리지는 않았으리라. 그때는 자신을 희생하지 않아도 편하게, 서로에게 좋은 타협점을 잡을 줄 모르는 맹충이였다.






시골집, 작은방에서 새벽에 눈이 내리는 걸 자주 구경했다. 밤과 낮의 감각을 잊어버렸던 그 시절에 거기 있었고, 흐린 멍청했던 휴학의 막바지, 복학 신청을 놓치고 어떻게 할까 조마조마한 그날도 거기 있었다. 외지 생활에서 영혼의 피를 철철 흘리며 고향 집에서 쉴 때면 거기는 내 안식 동굴이었다. 이제 그 동굴에서 아기를 기르고 있다.



그해도 크리스마스는 오고 있었고, 그 방에는 크리스마스트리도 캐럴도 없었다.



그런데, 20대 싱글 때 그토록 바라던 사랑하는 사람과 그 결실의 아기는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 아기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로서 첫걸음을 서툴게 내디뎠고, 힘들었던 내가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만 빠져 있었다. 아니, 자세히 돌아보니 검은 초콜릿 케이크 위에 화이트 초콜릿으로 쓰인 ‘메리 크리스마스’는 빛나고 있었다.



웃어주는 남편과 두 시간만이라도 고요히 자 주는 아기가 과거에 그토록 설레고, 희망하던 당신이라는 것이 이제야 선명해진다.



-나중에 돌아보면 좋은 기억( a good Memory)이 될 거야.



라는 남편의 말이 마음에 울렸다.



그때 힘들어서 좋은 기억은 아니었어도, 힘든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행복했노라.


잡히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실재, 사랑을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도다.”






작가의 이전글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실천하고, 절제하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