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깃국과 김치를 사랑하는 박여사
박여사는 시래깃국을 좋아했다. 가을부터 겨울이면 거진 매일 시래깃국을 끓였다. 찰떡도 한두 끼, 질릴 대로 질린 우리 형제는 엄마에게 불평했다.
“엄마, 우리 이제 다른 국 좀 먹으면 안 돼?”
엄마는 그럴 때면 광대뼈는 한참 올라가고 쌍꺼풀이 푹 꺼진 가지런하고 단단한 앞니와 은빛 어금니를 드러내면서 익살스럽게 웃었다. 양심에 찔려서 속으로 되짚어 보는 그런 표정이었다.
“야는,,,, 내가 그렇게 시간이 한가한 사람인 줄 아나?
엄마는 한가하지 않았다. 농사일, 종교 모임, 동네 일로 바빴다. 몸도 마음도 바빴던 박여사는 그냥 머릿속에서 생각나고 또 있는 재료로 끓이다 보니 늘 시래깃국을 끓이게 된 셈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 맛이 절대로 질리지 않았으니깐, 어쩔 때는 멸치 국물을 내기 귀찮아서 멸치를 그냥 다 넣고 끓였고, 어쩔 때는 들깨 가루를 넣었고, 어쩔 때는 고춧가루를 미리 풀어서 끓였다. 멸치가 걸리적거린다, 들깨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고춧가루가 텁텁하다고 아버지가 잔소리를 하면, 아버지 등 뒤에서 손으로 쥐어박는 모습을 하고 웃었으며, 쉿하며 손사래를 치며 아버지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다. 어찌 됐건 엄마는 한번 시래깃국을 끓여 놓고 짜고 짠 국물을 먹을 때까지, 쉬어서 버릴 때까지 그걸 데우고 또 데웠다.
“이 봐라, 이제는 아무도 안 먹어서 소 줘야 하잖아.” 푹 쉰 시래깃국에 냄새를 맡은 오빠가 불평했다.
“너는 잔소리 그만해라.”
수능 전에 라디오에서는 수능생들의 뇌에 영양이 고루 갈 수 있고 소화가 쉬운 뭐 이를테면 고등 어니 콩밥이니 좋다는 음식을 학부모님들이 준비하면 좋다고 조언했지만, 라디오를 들을 겨를이 없는 엄마는 그날도 시래깃국을 보온통에 넣어줬다.
전등을 끄면 무수한 별들만 보이는 그런 시골에 살면 어디든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엄마가 가끔 군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어린 내게 복잡하기 이를 테가 짝이 없는 그곳을 엄마 꽁무니를 꼭 잡고 따라다녔다. 엄마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시골에서 비싸게 파는 대야도 사고, 물건 구경도 하고, 우리 형제 옷도 샀다. 가격을 물어보고 놀라서 혀를 날름거리며 지나치기도 했고, 필요한 물건은 흥정을 하면서 사는 엄마를 지켜보면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시장 구석 굽이굽이를 골목을 헤치면 그 허름한 시장 식당이 나왔다. 은색 큰 솥에 김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걸 지나 알루미늄 문을 통해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좁고, 파리똥 묻은 달력, 요리 잡동사니가 아무렇거나 널브러져 있는 식당이 엄마에게는 맛집이다. 그 집 자랑은 시래깃국, 그 집 시래깃국은 엄마가 끓여주는 것과 달랐다. 하얀 국물에 무 시래기가 아니라 배추 얼갈이가 섞인, 약간은 보드라우면서 거친 식감이 좋았다. 말가면서도 진한 국물 맛. 그건 뭐랄까. 후추, 그래 그건 후추 맛이었다. 그것도 오뚝이의 후추 맛. 국물에서 까만 점이 드문드문 보인 걸 보면, 분명했다.
처음에는 왜 엄마가 이런 맛을 좋아할까, 의아해했지만, 그 집은 시래깃국만 아니라 비빔밥이 함께 내왔고, 비빈 밥은 시래깃국과 찰떡궁합이었다. 시래깃국 국물을 한 숟갈 뜬 다음 김과 콩나물, 파 다짐 양념장이 담긴 양재기 대접에 추진 밥을 부어 비볐다. 엄마는 늘 일 인분만 시켰고 내가 다 먹은 다음 무채와 검은콩 자반, 또 김치를 싹싹 긁어먹었다.
"시래깃국은 맛있는데 김치는 우리 집께 더 맛있네.” 식당 주인이 밖으로 나가자 엄마는 속삭였다.
박여사는 김치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식당에 가서도 고기도 꼬막도 잡채도 있지만, 밥과 김치만 먹었다.
“아니, 그렇게 밥이랑 김치만 먹을 거면 집에서 먹지. 이렇게 비싼 데 왜 와? 어?”오빠가 놀리면서 말했다.
“너거 엄마가 그렇다.” 아빠가 한마디 거들었다. 고되게 일하고 가리지 않고 황소처럼 먹는 아버지에게도 엄마의 입맛은 미궁이었다.
“김치는 우리 집께 더 맛있네"라고 엄마는 구시렁거리면서 밥과 김치만 먹었다.
“엄마, 다음에 내가 우리 집 김치 싸올까?”
오빠의 말에 엄마는 눈을 흘기며 살짝 앞니를 드러내고,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우스운 듯 멋쩍게 웃었다.
다른 음식은 몰라도 김치에 대해서만큼은 엄마의 감각이 좋았다. 엄마 김치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줄기는 짜지 않고 시원하고 아삭아삭했다. 달짝지근한 배추 맛이 줄기에 듬뿍 담겨서 했다. 익기 시작하면 상큼한 맛이 신선해서 밥이 금방 사라졌다.
우리 집 김치가 뭐 대단할까? 급식소 김치도 이만하면 됐지. 하고 의아했다. 한 번은 친구 집에서 지린내가 나면서도 이파리와 줄기가 투명하게 되어서 식감이라는 게 전혀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팍 삭은 김치를 먹은 후, 엄마 김치 매력을 알았다.
가끔씩 무슨 바람이 불어 김치를 담글 때면 딸을 불렀다.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코를 훌쩍거리면서 엄마가 말했다.
"저기 거기 뒤에 거기 가서 그거 좀 가져와. "
뒤는 뒷방을 말하니 방향을 찾아서 가지만 거기에 그거는 뭔지 잘 모르겠다.
“거기가 어디라고? 그거는 또 뭐꼬?”
“아,,, 짜식이 그것도 못 알아들어?”
“엄마라면 알아듣겠어? 그러니깐 뭘?
“선반에 있는 김치 통 좀 가져오라고.”
“헹궈서 여기 좀 놔 봐.”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새우를 안 아껴, 새우를 많이 넣고, 거기에 멸치 액젓을 섞어. 그리고 이봐 나처럼 이렇게 양념을 적게 넣어야지.” 이것이 김치에 까탈스러운 엄마 김치 비결이었다.
“다른 할마씨들은 양념을 너무 많이 넣어. 많이 넣지 말라고 해도 계속 넣어. 나는 그게 텁텁해서 싫단 말이야.”
“엄마는 그러면, 김장을 혼자 해. 도와줘도 뭐라 그래.“오빠가 한마디 했다.
엄마는 불평하는 자신을 들켰는지.. “이 자식은 짬도 모르면서” 하면서 눈을 흘겼다.
엄마와 단둘이 앉아서 저녁을 먹는다. 큰 양재기 대접에 김치 반포기에서 꽉 찼다. 배추 고갱이로 식칼로 반으로 잘라 두 손으로 마저 찢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배추와 빨간 고추 양념이 먹음직스럽다.
“엄마!”
“김치는 찢어 먹는 맛이야.”
그러면서 엄마는 오른손에 젓가락을 쥐고 입에는 고춧가루를 묻히고, 먹던 것을 먹으면서 진지하게 큰 이파리를 들어 올려 손톱으로 쭉 하고 찢었다.
“커!”
그러면 엄마는 한 번 더 찢고,
“이파리 싫어.”
이파리는 오물거리던 엄마 입에 들어가 뎅강 잘리고, 허연 줄기가 내 밥숟가락에 올려졌다.
한 숟가락 먹고 또 밥을 푼 다음에 숟가락을 다시 엄마에게 내밀었다.
군말 없이 엄마는 밥 한 그릇을 다 먹을 때까지 김치 줄거리를 내 밥숟가락에 올렸다
“엄마 우리 청각 좀 안 넣으면 안 돼? 맛없어.”
“얘는 짬도 모르면서.”
박여사는 자기 신조를 굳히지 않고 자기 식대로 평생 김치를 담갔고, 좋아하는 시래깃국을 질릴 때까지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