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분노의 근원 찾기
※저는 독일에서 만 6세 7세 남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수영 수업이 있는 날, TV 시청 후 준비를 했다. 아이는 태권도에 비해 수영을 좋아했다. 기분좋게 2층에 가서 스스로 수영복을 입었다. 이제 바지를 입어야 하는데 아침에 입었던 청바지가 너무 헐렁하여 입기 싫다는 것이다. 작업복 바지를 입으면 어떻겠냐는 물음에, 그건 수영장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입기를 거부했다. 다른 바지는 그날 빨아서 아직 마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입을 수 있는 바지는 두 개고,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입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지만 둘 다 입기 싫어했다. 속수무책 어쩔 방도가 없어 답답해서 우는 것 같았다.
-아침에 입었던 바지가 갑자기 왜 싫어졌을까?
-이 바지, 아침에 입었던 게 아니야.
-벗어 놓은 다른 바지가 없고, 그 바지가 안 빳빳하고 흐물흐물 무릎도 구개 진 걸 보니 오늘 아침에 입은 게 맞는 것 같은데?
-이거 절대로 아니야.
아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마 생각에는 바지가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네 마음이 문제여서 바지가 싫어진 거야. 왜 그런지 이야기해 봐.
-모든 게 싫어.
-그럼 하나만 이야기해 보자.
아이는 묵묵부답이었다.
-네가 왜 짜증이 나고, 그 바지가 싫은 지 한번 생각해 보자. 엄마가 한번 맞춰 볼게.
-피곤해? 배가 고파? 아니면 학교에서 기분 나쁜 일 있었어? 아니면 엄마가 너한테 화를 냈니?
아니면 어디 아픈 거야?
-아이는 고개를 저어 모두 부정했다. 그럼 '모두'는 아니네. 그렇지?
둘째는 옆에서 “그냥 아무거나 입어.” “나는 그런 거 상관 안 하는데…”고 자기 딴에 형을 위로하고 도와주려고 했다.
원래 같았으면, 바지 하나 때문에 수영 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출발 못해서, 조바심이 나서 아이를 보챘을 거다. 그러면 아이는 더 울었을 거고, 더 버텼을 거다. 그러나 이제 아이의 화나 울음, 나를 해치기 하는 말에 나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감정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함께 탐구하려고 한다.
-울지 말자. 울면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어. 우리 모두 함께 이걸 해결해 보자고.
-우리 시간 많아. 삼십 분 동안은 너랑 이야기할 시간이 있어.
아이는 계속 울었다. 억울해서 우는 것 같았다. 옆에 앉아서 아이에게 아이의 입장에서 말했다.
-바지 때문에 수영장을 안 갈 거야? 바지 때문에 좋아하는 수영장을 안 가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바지 이까짓 게 뭐라고.
-수영이 얼마나 재미있어. 강사가 닭(무거운 플라스틱 모양)을 던지면 잠수해서 줍던데 너는 키가 커서 고개를 살짝만 숙여도 금방 찾더라. 엄마가 다 봤어. 네가 수영 좋아하는 거 엄마가 다 알아.
아이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둘째랑 이야기하는 것 같더니, 바지 생각을 하고 울음을 다시 터트렸다.
-그래도 정 안 되겠으면, 아빠가 일찍 와서 너랑 같이 있을 수 있는지 물어볼게. 아니면 너도 엄마랑 같이 차에서 동생이 수영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래도 괜찮아?
-아빠가 안 올 것 같으니, 엄마랑 같이 차에서 기다리자. 어느 것을 하더라도 상관없어.
아이는 그제서야 작업복 바지를 입고 따라나섰다.
차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왜 짜증이 났는지 언제든 오늘이 아니라도 생각나면 엄마한테 말해줘.
-몰라.
-아, 모르는구나. 그래 모를 수도 있지. 그래, 알았어.
'몰라'라는 답은 내가 바란 대답은 아니지만, 아이는 정말 자기감정을 아직 잘 모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질문을 자주 하다 보면 아이가 빨리 자기감정의 이유를 찾을 거라고 믿는다. 그 감정의 원인을 찾으면 해결책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걸 아이는 곧 깨달을 것이다.
나는 서른여덟 살이 되어서야 내 분노와 짜증의 원인을 찾고 거기서 해방되었지만 아이들은 벌써 시작했다. 우리가 감정에 대한 집착과 그에 따른 에너지 낭비에서 벗어난다면 다른 일에 더 잘 집중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감정 소모 없이 관심 있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든지,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으로부터 쉽게 분리하여 마음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오로지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아이는 수영을 잘 하고 기분 좋게 나왔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어떤 아이가 출구 방향을 잘 못 가리켰고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어디 가냐고? 비꼬는 어투로 물었다고 했다. 저번 주에 수건이 없어 어물쩡거리고 있던 아이를 밀치며 얼른 나가라고 했던 그 수영 강사였다. 아이는 그게 기분 나빴다고 했다.
-엄마가 얘기했지? 세상에는 화가 난 사람들이 많아. 그런데 그게 너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자기 마음에 화가 있어서, 너를 그렇게 함부로 대했지만, 그건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깐 신경 쓰지 말고, 너는 네 할 일만 하면 돼.
-엄마 말이 맞아.
아이는 갑자기 경쾌해졌다.
아이는 이미 마음의 평화로 가는 첫걸음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