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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Nov 27. 2021

나도 미뤄

미루는 해치워 버리는 법


점심을 먹고 아이는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댄다.


숙제가 많은 날, 그날따라 아이는 유독 동생에게 소리 지르고, 짜증을 내며 울었다.



-나 못 하겠어.


-어제도 이렇게 많았는데 다 했어. 당연히 할 수 있지. 많아 보이는데 그렇지도 않아. 봐봐,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했는지. 이것 봐 두 개나 풀었잖아. 다음 문제는 이거야.



아이는 빼곡히 적힌 산수 문제를 보고 경악했다.


-할 수 있어. 많다고 생각하기 전에 이것을 한번 풀어보자.



나도 아이처럼 과제가 많을 때, 하기 싫은 감정에 지배되어 뻐팅기며 다음 단계로 진전하지 못하는 패닉 상태에 빠진다.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엉망이지만 며칠째 미룰 때, 은행 업무를 몇 달째 방치하기 등등.


-하기 싫어.


-시작도 못 하겠어.



이 상황이 너무 싫어서 바꾸고 싶다는 진짜 마음의 목소리가 깊은 곳에서 들려온다. 그러나 움직이기 싫다는 또 다른 내가 더 큰 목소리를 내면서 상황을 질질 끈다.


우리는 왜 일을 미루고 하기 싫어서 버티는 걸까?

어떨 때는 정말 그 일이 내게 중요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그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는 일, 우선이 아닌 일, 또 내 에너지가 끌리지 않는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은 자꾸 떠오르고, 신경 쓰이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왜 자꾸 미룰까?




대부분 그 일이 정신적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해서다.


그러나 당신은 그 에너지와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인색하다.

정신적 파업 상태이다.



1) 아이는 과제가 많다고 느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과제는 전날보다 약간 많음에도 그 사실이 정신적 부담을 극대화했다. 객관적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적 상태가 이걸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면, 멈추고 피하고 싶어진다. 피곤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어떤 다른 이유 때문에 작은 외적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싫은 상태에 이른다.


정신적으로 회복되고 충만한 때를 찾아서 미뤘던 일을 해치우는 게 가능하다. 또 실제로는 과제가 적고, 과거의 성공 사례를 상기시켜 위로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단위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면 상황을 진전시킬 수 있다.



2) 집안일은 해도 줄지 않고 성과가 잘 안 보이며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일이 줄지 않는다는 말은 다시 말해, 내 앞의 쌓인 일거리가 정신적 부담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한꺼번에 처리해서 큰 효과를 보고 싶다. 그러려면 평소보다 더 많은 의지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들고, 심적 부담 때문에 일을 미루게 된다.



3)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을 크게 기쁘게 하고 큰 감동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감동을 주려면 조사를 하고 고민하는 등 귀찮은 일을 해야 했다. 한 달 동안 그것을 미뤘다. 익숙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처음 하는 일이라 보기에도 수고는 시간, 어떨 때는 경비까지 드는 일은 꾸물거리기 쉽다.



4) 시집 리뷰와 소설 리뷰를 오랫동안 미뤘다. 전부 분량이 많아서 부담스러웠다. 단시간에 끝내고 싶지만, 분량 때문에 부담스러워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5)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잘 쓰겠다는 것, 완벽하게 하고 싶은데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아서 시작조차 못할 때가 있었다. 좋은 글 말고 엉망인 글, 짧은 글, 단순한 글 전부 좋다. 그냥 쓰자. 쓰고 나서 썼다는 성취감을 만끽하자.



6) 한친구는 독일어 공부를 계속 미루게 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저녁에 항상 내일은 두 시간 동안 독일어 공부해야지 결심하는데 안 해서 늘 후회해.


친구는 대단한 성과를 내거나, 지금까지 미뤄둔 공부를 한꺼번에 하려는 마음이 강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되레 마음의 짐이 무거워진다.



자신이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 즉 스터디 그룹에 참여하거나 매일 할 분량을 정해두면 매일 밤의 결심들이 실행으로 이어진다. 어차피 해야 할 것이라면 매일 조금씩 하는 게 하루 한 번 두 시간하고 오랜 간격을 쉬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루틴을 만드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루틴에 따르면 언제 할까,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할까 하는 실행 전의 고민을 없애서 그에 따르는 심적 부담을 낮출 수 있고 실천력이 높아진다.



7) 치과 스케일링, 건강 검진 같은 경우 정기적으로 하면 좋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흐른다. 문득 건강이 염려되어 예약을 하려니 차일피일한다. 병원 진료는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기피하게 된다.



병원 방문을 했을 때 미리 예약해 두고, 일정에 표시하고 타이머가 울리도록 해 두면 가기 싫어도 예약 취소하는 게 싫어서 가게 된다. 여름휴가도 학기 일정표가 나오면 미리 호텔을 예약해 두고, 무료 취소 가능한 날짜까지 타이머로 설정해두면 손실이 적고, 어디로 갈 것인지 휴가 전에 갈팡질팔하고 호텔이 없을까 노심초사를 방지한다.



1) 에서 5)까지는 부담을 낮추는 심리적 요법을 쓸 수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소 단위를 그날의 목표로 설정한다. 예를 들면, 집안일은 설거지만 끝낸다. 운동은 10분만 걷자. 독서 서평 작성은 한 문단만 읽고 생각을 적는다. 이것은 아토믹 해빗에서 2분 법칙을 본뜬 것인데, 실제 효과가 기가 막히다. 최소 단위 실행은 시작할 때의 정신적 부담을 낮춘다. 에이, 일기 한 줄은 눈 감고 성 쌓기지,라고 상황을 쉽게 보게 한다. 시작한 후로는 항상 원래 목표보다 많이 하거나 계속 할 수 있다. 다음번은 시작이 쉽다. 의욕이 나지 않을 때는 이 방법으로 시작하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아래는 내가 미루는 일을 해치울 수 있었던 노하우들이다.


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음에 걸리는 그 일을 가장 해치운다. (혹은 올빼미 체질이라면 생각났을 때 당장 해치운다.)


의욕이 가장 큰 아침 시간을 이용한다. 혈기 왕성하고 휴식이 잘 된 때, 기분이 좋고, 몸 상태가 좋을 때를 고르면 힘든 과제를 쉽게 해결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최상의 상태를 이용해 미루는 일을 해결하자.


간혹 더 이상은 미뤄서는 안되겠다고, 오늘은 무조건 처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날, 의욕이 나는 날이 있지 않은가. 정신이 회복되고 의지가 충만한 날, 그런 날을 알아차리고 해결하자.



2. 타이머를 설정한다. 한 번에 집중해서 그 일을 끝낼 때만큼 개운한 기분이 들 때도 없다. 인터넷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한눈팔지 않고 딱 그 과제에만 집중해서 갈무리 짓는다. 집중 또 집중! 한 달 동안 고민한 것들이 단 20분에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



3. 그날 하루를 미룬 일을 처리하는 데 투자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을 하루 목표로 하고 완수하면 마음의 큰 짐을 덜었으니깐 대단한 날이라고 자신을 칭찬한다.



4. 실수를 허용하자. 잘 못해도 괜찮다고 위로하자. 어쨌거나 그 일을 시도하는 데 의미를 두자. 리스크가 되는 요소는 그냥 무시하자. 주위 사람의 조언은 무시하자.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백배 낫다.


5. 명상에서는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자주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해결책도 함께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실천을 예행연습하고 명상 후 바로 그 일을 실천한다. 글쓰기도 똑같은 효과를 발휘할 때가 많다. 해결하고 싶은 일을 문제점, 가장 쉽고 편한 방안을 글로 정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의지가 충전되어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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