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남자를 만나고 결혼한 지 13년, 마치 처음 만나서 몇 마디 중국어로 대화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연애 초기에는 말 몇 마디로 마음이 통한 것과는 달리, 지금은 몇 마디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만 다를 뿐. 그들은 옛날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남자는 물건을 잘 못 찾는다. 핸드폰, 열쇠, 모자는 격일로 찾고, 세금 정산할 때는 월급 명세서와 영수증을 한참 지나고 찾으니 기억의 실마리를 눈 감고 더듬듯 헤맨다.
첫째,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아서, 둘째, 아이들이 엉망으로 해서, 셋째 지원이 정리해서 자리가 바뀌어서 못 찾을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어디에 놔뒀지 잘 기억을 못 하고, 찾을 때도 사물이 그의 시야를 가리면 그 뒤에 있는 물건을 보지 못하니, 물건 찾기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운 것.
게다가 남자의 입장에서 아내 지원은 무척 비협조적이다. 아내는 자기 물건을 정리해서 숨겨 놓고, 어디 있는지 물으면 잘 알려주지 않고 놀리는 사람. 또 그에게는 잘못 들어서, 혹은 못 찾아서 한 번 더 물어보면 화를 내는 사람의 이미지가 박혔다.
물론, 그전에 남편이 뭘 찾으면 배알이 꼬여서, 아니면 정말 이해가 안 돼 지원은 남자를 상습적으로 놀린 기억은 마음 저변에 숨긴다.
“진한 청바지 어딨어?”
“뭐 말하는 거야?”
“당신이 사준 바지 있잖아.”
“보고도 안 보여?”
“안 보이니깐 묻지.”
“여기 있잖아. 서랍 안에 자 봐봐.”
남자는 지원이 잘 보이는데도 안 도와주고, 돌려 말하거나 그것을 찾기 위해 애타는 사람을 고문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짜증 나고 억울하고 지원이 얄밉다.
지원은 점식 식사를 다 차렸고 둘째의 시선을 받으며 말하기에 열중이었다. 둘째를 설득하기 위한 근거들을 열렬히 늘어놓았는데 아직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가득했고 흥분한 상태.
남자가 물었다.
“소금 어딨어?”
눈앞에 보이는 소금,
“There”
지원의 위치에서 보면 there이었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앞의 압력 밭 솥 뒤에 놓여 있었다. 지원은 턱으로 방향을 가리키고 말을 이어가던 중, 부엌에서 남편이 이곳저곳 뒤지는 낌새를 느꼈다. 둘째와 대화 중,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어디?”
“there!!”
지원은 남자의 방해가 귀찮아서 짜증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기분이 나빴던 것도 그를 비난하는 의도보다는 순수하게 빠른 진행을 원해서였다.
“아니, there이 아니고, here네. 한참 찾았잖아.”
기분이 언짢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지원은 둘째와의 대화는 중단했다.
남자와 아이들이 스포츠 모임에 갔다 오는 사이에 장 보고, 정리하고 빨래 개고, 밥해서 점심을 다 차렸는데, 앉자마자 소금을 찾다가 화를 내는 꼴에 지원은 황당하고 억울했다.
“내 위치에서는 그건 here이 아니고 There이야. 방향도 보여줬는데, 못 보더니.”
“당신은 나를 고문하듯이 잘 안 가르쳐 주더라. 내가 부엌에서 얼마나 오래 찾았는 줄 알아? 다시 물어보면 화낼까 봐 물어보지도 못하고. 당신 어투가 이미 화가 나 있었어.”
남자의 표정이 지원보다 더 억울해했다.
“나를 오해 좀 하지 마. 나는 화난 게 아니라 그저 둘째랑 말하는데 신나서 빠르게 대답했을 뿐이라고. 나는 죄가 없어. 당신을 비난하려는 마음도 더더욱 없고. 누구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알려준 건데 짜증 나는 어투라고 오해하면 내가 더 억울하지.”
아이들은 그 와중에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끼어들었지만, 지원과 남자는 불빛이 환한 링 위에 둘이 권투 글로브를 끼고 있고 대결하는 것 같았다. 둘은 그래도 예전처럼 흥분하고 소리 지르지는 않는다.
지원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오해받는 게 싫어서 말을 더 이었다.
“There, here 헷갈릴 수도 있지. there하고 here 때문에 그래 당신이 못 봤다고 쳐. 그런데 내 어조를 탓하는 건 너무 억울해”
남자는 녹음해 뒀던 말을 재생했다.
“내가 또 잘못했나?”
누구 잘못을 가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억울하다고 말하는데.. 그런 오해에 지원은 침묵했다
.
“지금 이 상황에서만 포커스를 맞추자. 어쩌면 언제, 내가 물건 찾을 때 당신한테 짜증도 내고 비협조적이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 문제 있어서는 도와주려고 했는데, 소통에서 오해가 생겼어. 이유가 뭐지?”
“당신은 물건을 잘 못 찾아. 어디 놔뒀지 기억도 못 하고, 찾을 때도 눈앞에 있는 것도 못 보지. 내가 도와줘서 많이 찾았어. 그런데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깐 당신 스스로도 너무 짜증 나는 거야. 이제는 그런 빈번한 상황을 인정하고 좀 편안히 대처하면 안 될까. ”
“당신도 내가 물건 찾을 때 기분 나빠지잖아.”
“그래, 당신이 못 찾아서 초조해하는 모습이 보이니깐.”
“우리 서로 영향을 받는 거네.”
그리고, 부부의 대화는 내리 30분 이어졌다.
남자는 이 다툼이 there과 here의 잘못 이해, 지원이 급하게 말하려 했던 데서 나온 불쾌한 어투, 그리고 과거에 지원이 그를 대한 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결론 내렸다. 마지막에 그는 고맙다고 했다.
지원은 설거지를 하면서 상황을 복기한다. 지원은 굳이 사과할 필요도, 고마워할 일도 아니라고 넘기지만 남자는 지원의 말투, 표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먼저 사과하고 고마워했다.
친밀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작은 언어 실수에도 오해를 만들기 십상이다. 지원은 다른 부부와의 교류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말할 때 좌중에서 남자의 얼굴을 찾는다. 이미 말해서이기도 하고 부족한 언어 표현에서도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는 믿음과 지지를 무의식에서. 단독 링 위에서 지원과 남자는 겨뤄야 할 격투의 대상이었지만 타인과의 사교에서는 남자는 지원의 뒤에서 함께 싸우는 든든한 전우가 되었다. 지원과 남자는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하고 서로를 보충하는 그런 존재라는 걸 기억한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얼굴을 묻는 아이들처럼 자신을 보호하고 대변해주는 존재.
누가 틀리고 옳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누가 반성하고 고치고 문제를 떠나서, 지원은 서로가 참 다르다고 인정하기로 한다. 그 다름이 서로를 채워주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걸 이제야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