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알아들어서

by 원더혜숙

지원은 잘 구워진 고기에서 나는 흰 연기가 환풍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을 보다가 손님의 손짓에 벌떡 일어나 손님 테이블에 다가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옆의 손님의 대화 소리, 주방에서 식기 세척기 기계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손님의 목소리가 소라 안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모호했다.



”네 뭐 달라고요?”

“먼저 딸기 샤워와 맥주를 주세요. 그리고 소주를 하나 새로 따서 주고요.”

지원은 하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자신이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주방에서 사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주문 뭐 들어왔어?”

“딸기 샤워 맥주, 소주라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똑바로 주문받아야지. 내가 다시 가서 물어봐야겠어. “갈색 앞치마를 탈탈 털고 입을 박새처럼 다물고 사모는 손님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게이샤처럼 다소곳하게 또 자신 있게 주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맥주 두 잔, 그리고 사워 두 잔씩 다 마신 다음에 소주를 주문하신다네. 그리고 마늘 간장 하나도 추가.”



사모는 지원에게 눈길 한번 주고, 주방에 내려가 새초롬한 눈빛으로 사장의 얼굴에 짧게 시선을 던졌다. 사장이 이 상황을 다 지켜보았으니, 그녀가 짐작하던 대로 아니냐고, 사모는 다시 입술을 샐룩거렸다.

한자어 위주로 수 십 개 일본어 병음을 암기하고 반복하고, 일본어 수업에서 문법과 듣기를 훈련하고, 전공 수업을 듣고 발표하고, 일본인에게 한국어 과외를 하고 국제 회관에서 매일 밤 외국 친구들과 수다를 하며 향상한 그 몇 개월이 시간이 그 순간에 재처럼 타버렸다. 시끄러운 야키니쿠 전문점에서 손님들의 다양한 억양과 술 취한 발음의 일본어를 알아듣는 일이 지원에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지원의 어깨는 굽어지고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지원은 처음 일본어를 배웠을 때를 회상한다. 출석과 결석이라는 단어가 한국어 욕설로 들리고 받침이 없는 날랜 일본어 발음이 좋았다. 일본 만화를 좋아하거나 일본 연예인 팬이 아니라 발음과 한자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일본어 공부는 예쁘고 상냥한 일본어 선생님의 호감에 재미를 더했다. 지원은 한문 공부에 한 번에 빨려 들어갔 듯 하나씩 착착 입에 붙는 일본어 발음과 비음에 푹 빠졌다.



대학생 가이드에서 어학연수를 대학생활 동안 해 봐야 할 목록 중에 하나를 보고 무작정 교환학생에 신청한다. 성적이 안 좋아도 지원 미달이라는 행운을 거머쥐고,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었던 것도 기적 같았지만, 함께 가는 다른 학생들이 몇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었는 것에 비해 지원은 겨우 콘니찌와를 할 수 있을 정도. 그래도 지원은 방문을 나설 때마다 낯선 언어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미묘하고 기분 좋은 전율을 느꼈다.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유학 초기, 일본인 친구들과 외국인 친구들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즐겁게 식사할 때였다. 간단한 것은 눈치로 알아차릴 수 있어서 잘 넘겼지만, 한 친구가 길게 이야기했고, 아마 그건 그렇게 어려운 말은 아니었을 거라고 추측하건만 모두들 웃었지만 지원은 웃을 수 없었다. 지원은 그 무리에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소외의 원인은 언어. 일본어를 잘하면 그 무리에 껴서 동시에 웃을 수 있고, 튜터의 말을 못 알아들어 시선을 피하거나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배배 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는 애처로운 도움의 눈빛을 거둬도 될 것 같았다.



지원은 매일 아침 아홉 시에 도서관에 가서 점심 한 시간 휴식을 하고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에 나왔다. 딱 삼 개월이 지나고, 말이 트였고, 그 여세를 몰아 전공 수업을 듣고, 동아리에도 가입하고 또 한국어 과외도 아르바이트를 구했던 참.



같은 야키니쿠집에서 일하던 광주 출신 친구는 일본어 발음에서 ‘쯔’ 발음이 잘 안 되는 한국인 많다고 했다. 쯔와 츠가 다른데 하면서 그걸 잘해야 한국인의 억양의 옥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듯이. 지원은 자신의 발음이 맞는지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건 잘못되었고, 지원은 아무리 들어도 그걸 구분이 안됐다.



처음 배울 때의 아름다운 비음과 날렵한 발음, 일본 초밥집에서 들려오는 이랏샤세..의 거칠지만 생활 자체인 일본어에 지원의 가슴이 뛰었다. 그런 느낌도 점점 희석됐다. 배우면 배울수록 문법구조에 맞는 말, 일본어 다운 일본어, 그리고 존경어와 반말, 남자가 쓰는 말과 여자가 쓰는 말에 구애되고 그것을 구분하고 따라 하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애태우는 일이 많았다.





독일에서 거주한 지 8년 차, 지원은 일상 대화는 무리 없이 했고 알아듣는다. 그러나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한 전문분야 정치, 사회, 의학, 문화 등에 대해서는 넘을 수 없는 베를린 장벽. 그렇다고 그런 화제를 일상적으로 듣거나 훈련해야 해야 한다는 결심은 안 들었다. 그런 기회에 노출되고 다양한 상황과 언어에 접촉하면 할수록 독일어가 늘겠지만, 밥벌이에 지장 없고 아직 직업을 구할 생각이 없는 지원은 가끔 그런 일에서 당황한다.



지원은 남편 회사에 가족 페스티벌에 갔다. 그날은 날이 좋았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도 괜찮은 그런, 건물 그늘에 들어가면 목덜미에 찬기운이 서늘해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추운 여름이었다. 지원의 가족들과 휴가도 가고 계절마다 작은 소풍도 가고 서로 집에 초대하고 주말 가족 시간을 공유하던 아이 유치원 친구 가족도 왔다.



오랜만에 만난 것치고 아이들은 머뭇거리듯 경계하다가 금세 별 거 아닌 광경에 웃고 뛰고 소리 지르며 즐거워했다. 지원은 그 집 엄마를 오랜만에 만난 게 너무 반가워서, 멀리서 뛰어가 어깨를 차고 할로 하고 경쾌하게 인사했다. 그 집 엄마는 아이와 물건을 고르고 있었는지, 쓱 지원의 얼굴과 원피스를 쳐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아들과 물건에게로 돌렸다. 지원의 올라간 입꼬리가 자연스레 내려왔다. 지원은 그녀의 차가운 기분에 공략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상한 것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불쾌하고 긴장하면 독일어는 더 나오지 않고 더 잘 안 들렸다. 그들은 동독 출신으로, 지원에게는 어쩌면 항상 어려운 독일어. 묵음도 많고, 흘리는 말도 많으며 들어보지 못한 단어도 많았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알아듣는지 묻는 배려를 하거나, 지원이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친절도 없다. 그런 비협조적이고 불친절한 태도에 지원은 그 친구에게서 널찍이, 아이들 곁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춤을 추고, 풍선 아트의 기발한 아이디어 게 감탄하며 맥주를 마셨다.



보통,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와 남자끼리 대화를 한다. 지원은 음료를 사러 간 여자를 따라가지 않고 남자 둘의 대화를 듣는다. 고개는 빳빳이 들고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경청하지만 주식 이야기나 독일 정세 이야기처럼 그들은 공장과 회사 상황을 자세히 했고 그들 사이에 끼어들 틈은 없었다. 지원은 진지한 두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고개를 내렸다.



그날 공장 견학에서 남편의 동료, 상사, 그리고 공정 설명까지 모르는 단어 투성이에 그들의 빠른 말 속도,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5분 상간으로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원은 남편의 뒤에서 아이들의 곁에서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남편보다 먼저 안녕히 계세요를 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탄탈로스는 타르타로스에 갇혔다. 목까지 물이 차 있고 손을 뻗으면 닿을 높이에 사과가 달려 있다. 그러나 물을 마시려면 물이 줄어들고 사과를 따려면 닿지 않는다. 그는 영원한 배고픔과 목마름에 고통받는다. 갈증을 해결하면 다음에는 다음 것을 그다음의 다른 것을 원하는 우리 욕구에 비유된다.


갓 외국어를 배울 때 지원은 하나를 배우고 즐거웠다. 지금은 하나를 몰라서 초조하다. 그때의 기쁨을 잃었다. 지원은 깊은 언어의 세계에 들어서자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단순한 의미 파악뿐만 아니라 어감과 그 언어다운 표현을 생각한다. 전에는 저자세를 취하고, 일단 말이 통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태도도 평가하며 시선도 느끼며, 특히 다 알아듣지만 못 알아듣는 그 부분에 주목한다.


keyword
이전 05화오해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