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야해서

by 원더혜숙



그날 지원은 내향성 발톱 때문에 오전에 수술을 하고 붕대를 감은 발을 의자에 올리고 소파에서 쉬고 있었다. 어린이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둘째 아이가 그네에서 떨어져서 팔목이 부러진 것 같다고 지금 당장 와 달라고.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욱신거리는 발을 절뚝거리며 유치원에 갔다. 사고 전말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이는 창백했고 통증을 참고 있었다. 차로 5분이면 닿는 응급실로 향했다. 접수하고, 대기실에서 앉아있길 두 시간, 엄지발가락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했다. 마취에서 감각이 돌아왔고 어쩌면 붓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이는 기다림에 지쳐 지원의 어깨에 기대 졸았다. 엑스레이를 찍기를 계속 기다리는데, 어떤 남자 병원 직원이 휠체어에 탄 까까머리를 한 노인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할아버지가 뭔가를 말했는데, 직원이 잘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물었다.

지원은 그 할아버지의 발음을 듣고 그가 외국인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지원은 정신이 혼미한데 머릿속으로 문장을 생각하고 문법이 맞는지 점검하며 독어로 말해야 한다면? 남편과 사별하고 늙어서 요양원이라도 있는데 친절하나 사악한 직원이 사기를 치려고 한다면? 자식들은 출가하고 먼 도시에 산다. 병이 났고, 운전을 하거나 병원에 가기엔 거동이 불편하다. 그런데 믿고 도움을 청할 이웃이 없다면…?



지원의 옆 집 할아버지는 아흔두 살, 할아버지를 8년 전에 만났을 때 할머니도 정정했고, 할아버지는 햇살 좋을 때마다 정원에 나와 지나가가는 이웃들과 지원과도 대화했다. 할머니가 간암으로 두 달 만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4년 내내 혼자 사신다.



폴란드에서 급히 쫓겨나다시피 독일 튀빙겐으로 오셨고, 어쩌다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하시는 할아버지는 자신이 이민 배경을 가진 외국인임을 스스럼없게 말했다. 그 당시 상황, 적응하는 시간들을 이야기하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이 외국인임이 별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지나야 하지 아니고 배길쏜가.”


푹 꺼진 광대뼈를 올리며 할아버지가 웃었다.

“요즘은 기저귀 때문에 여행은 못 가지만, 그래도 괜찮아.”



지원은 조깅을 하면 길 건너 골목길 정원을 꼭 뛰어서 지난다. 가끔 그 집 할머니는 정원 한가운데 흰색 플라스틱 정원 의자를 두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인사를 해도 반응이 없다. 할머니는 무슬림 두건을 썼다. 집은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정원에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시금치, 사과 가지 토마토가 어지럽게 자란다. 할머니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 텃밭일을 하는 것인쯤 알지만 할머니가 슈퍼에 가거나 누군가와 대화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다. 난로 환기통 파이프 주위에 떨어진 외벽이 어느 날 고쳐진 걸 보면, 자식이 있기는 한가 본데. 그녀는 한눈에 보기에도 외국인이다.


지원은 자신이 그렇게 할머니처럼 외롭게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원은 언젠가 아이의 기침 때문에 응급실에 와서 진료를 받을 때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걸 생각한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봐, 그래서 어떤 피해라도 당할까 봐 긴장했지만 세 시간 기다린 후 초록색 깁스가 아이의 팔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하필, 그날 남편이 출장을 간 것인지, 왜 수술한 그날 아이는 팔을 다쳤는지 생각하기 전, 지원은 팔 뼈가 산산이 부서지지 않아서 다행이고, 아이가 고통을 느껴 울기보다는 조용히 졸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느님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고 했던가. 지원은 자신이 부족하지만 소통할 능력이 있었고, 침착하게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전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 냈겠지만, 그만큼은 견딜 수 있었기에 그런 상황이 생긴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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