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아서

by 원더혜숙



독일에 ‘가족의 집’이라고 불리는 정부 기관이 있다. 출산 도우미 헤바메와 어린이 요리 수업, 출산 준비 코스 등의 수업을 해 주는 한국의 문화 센터 같은 곳인데, 헤바메의 추천으로 지원은 Pekipp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아기들이 발가벗고 천으로 촉각 훈련을 하기도 하고, 공이나 나무토막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엄마들의 교류의 장소가 되는 그런 수업이다. 친구 없이 교류 없이 고립된 시간을 가까스로 보내고 있던 지원은 친구를 사귈 수 있지 않을까, 큰 기대를 하고 수업에 갔다. 첫 번째 시간에서 둥그렇게 앉아서 자기소개를 했고, 지원은 오랜만에 긴장했다.



“저는 한국에서 왔고요. 독일어는 아직 잘 못해요.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걸 말하면서 지원은 내장까지 다 떨렸다. 떨림이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한 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소개 이후로 일동의 분위기로 봐서 지나치게 긴장했다는 걸 알았다.



다섯 명의 엄마들은 이 동양 여자가 왜 갑자기 감정적으로 흔들리는지 몰랐다. 자기를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적어도 아시안 여성을 적어도 자주 보아왔던,



지원은 여태까지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인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는 바깥을 보기보다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기였다. 내 안의 우울함, 육아, 독일 생활 적응, 그것만으로 정력이 소진해서, 누군가를 자신에게 들이기 어려웠던) 사람인지 몰라도 스스럼없이 대했다.



지원은 그녀의 독일어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들으면서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미간이 굳어졌다. 그녀의 다정함을 환영하면서도 ‘그냥 나를 내버려 두세요. 그냥 이런 우울한 기분, 비참한 자신과 혼자 있게 두세요.’라는 오라(Aura)를 보내고 있었으니, 몇 마디 물어보던 그 엄마도 차츰 수업이 진행되면서 멀어져 가고, 교실을 나갈 때의 안녕, 이라는 소리만 허공에 울렸다.



수업이 끝나고 친절한 선생님이 다른 엄마와 대화하느라 지원을 챙겨주지 못할 때, 지원은 인사를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당당히 인사를 하고 나가는 엄마 뒤에서 인사를 할 때도 그렇지 않고 그런 기운조차 나지 않을 때는 그냥 조용히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추듯이 나갔다. 그런 날은 바깥 풍경이 더 낯설었고, 당당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워서 음식을 해댔다.



원하는 식품, 콩나물이나 버섯 종류가 많든가, 쌈장이나 된장을 파는 게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그전에 먹던 음식들을 만들었다. 부대찌개, 김치도 담그고, 두부도 직접 해 먹고, 잼도 만들고,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 그래도 채워지지 않은 하루. 허무함이 채워지지 않았다.



지원은 일본과 중국 유학 때를 생각했다. 인종 때문에 혹은 지원의 태도 때문에 그들을 한번 물러나게 할 일은 없었다. 항상 고민을 나눌 동질한 검은 머리 한국 친구가 옆에 있었다. 거기에서 언어 수업을 듣고, 그들과 동등한 입장, 언어를 못하기 때문이라는 외국인 사이에는 똘레랑스가 작용했다.



몽골, 카자흐스탄, 미국, 중국, 인도에서 온 친구들이 피곤한 얼굴을 올려 인사하기도 전에 손을 높이 올리고, 인사했다.” 너 건강해?” 둥글고 와인색의 가녀린 머리카락에 가죽 재킷을 입은 지원의 또래보다 여섯 살이 많았던 몽골 언니가 웃었다. 웃으면 눈이 초승달로 변하고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그 옆에 좀 더 하얀 카자흐스탄 친구가, 강한 어조로 묻는다. “지원은 어제 공부한다고 잠을 못 잔 거 같은데? 어 그렇지?”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인도 친구 싯탈이 듣고 웃는다. “어제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숙제하는데 오래 걸렸어.” 어미가 헷갈리지만 그녀는 자신의 어색한 어미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런 생각이 잇몸을 드러내며 찡긋했다.


그 옆의 한국 친구는 주말에 뭘 했는지, 이야기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지원은 그들과의 교류가 단순했다고 기억한다. 지원은 그런 자잘한 이야기가 그들을 가깝게 했던 요소들이었고, 순수한 교감을 느꼈다.

“금요일 국제회관에서 파티할 건데 올 거야? 아딧 아딕뎌, 조쉬, 혜린, 카트린 하고 다 올 거야. 너네는 한국 음식 하나씩 해 오면 되겠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그냥 음식 같이 먹고, 놀 거야.”

그녀의 상징 같은 광대뼈가 높이 올라온 하회탈이 웃었다.

“지영아, 우리 뭐 해가지?”

“부침개 하고 김치찌개, 잡채 이렇게 해갈까?”



지원은 국제 회관 앞에 들어서며 놀랐다. 지원의 기숙사보다 더 허름한, 일자 회색 건물에 방들이 하나씩 붙어있었다. 국제 회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검기도 회색도 노란빛도 있고 다양했다. 회관 회랑을 따라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커다란 홀이 나왔다. 한쪽 구석에는 탁구대가 있었고, 구석에는 티브이도 있었다. 그 앞에 아디가 큰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고, 벽에 걸린 21인치 티브이에서 흐릿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노래방에서 나오던 그런 조명이 한 번씩 그림자를 만들다가, 사라졌다.



스피커를 설치하다가 일어나는 그의 긴 앞머리가 양쪽으로 컬이 생기며 갈라졌다.

회색 얼굴에 입술이 예쁜, 그러나 느끼한 그가 손을 내밀고 눈을 반짝거렸다.


“지영과, 지원이야? 한국에서 왔어.”

몽골 언니가 우리를 그에게 소개했다.

지영의 손을 잡으며 그는 거기에 침을 축축이 흘리며 뽀뽀를 할 것 같았다.

“만나서 반가워, 나는 방글라데시아에서 왔어.”

“여기 안 살고 학교 앞 연구생 아파트에서 살아. 여기 친구 보러 오길래, 파티하자고 초대했어”

몽골 언니가 큰 테이블에 대충 닦고, 의자들을 나열하고 음식들을 차리자 한 명씩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도착했다.



홀은 국제 음식들이 복잡하게 섞여 코를 찌르는 강한 향을 풍겼다. 종이 접시와 컵을 들고 젓가락을 들어먹기 시작하는 중에서 들어오는 독일 학생, 미국 학생, 또 멕시코 친구들이 들어왔다. 그냥 지나가다 음악 소리와 음식 냄새에 홀려 들어온 친구를 놓치지 않고 몽골 언니가 붙잡았다. ”밥 먹었니? 들어와서 같이 먹자. “ 대답을 듣지도 않고 금세 접시와 젓가락을 찾으러 홀을 돌아다녔다. 얼떨결에 붙잡힌 학생도, ”어디서 왔어? 전공이 뭐야. 일본어 못해?” 영어로 오가고, 뷔페를 먹는 것처럼 자기 접시에 음식을 한가득 넣고 먹으려는데 옆에서 하는 말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다, 질문에 대답하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든지 아닌지, 상관하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빼곡히 선다면 백 명도 들어가는 홀에 스무 명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음식 향과 체취를 뿌리면서 공간을 후끈 달궜다. 그리고 아디가 음악 소리를 크게 틀었다. 그때부터 색색이 미러볼이 더 크게 보이고, 소등하고 자연스레 댄스 타임이 되었다. 신나는 음악이 나왔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블루스에 누구든 서로를 껴안려고 했다. 아디는 예쁜 지영이에게 다가갔다. 손을 내밀며 춤을 추자고.



뒤에 지원과 경미가 수군거렸다. “쟤 기혼 남이라는데, 저래도 되는 거야?”

지영은 지원에게 도와 달라는 애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아디의 손에 끌려 그의 품에 반 안겼다.



지원은 건장한 러시아 학생에게 안겼다. 그의 볼에 있는 사마귀 하나를 보다가, 그의 튼튼한 팔을 굽어보다가 말했다.


“팔 근육 한 번만 만져봐도 돼?” 잘 생기고 근육질인 그 남자는 심플한 티를 입어도 근육이 불거져서 건강함을 안 숨겨졌다. 볼에도 근육이 생긴 것처럼 웃을 때마다 볼 살이 튀어나와 귀여웠다. 지원은 그의 팔뚝이 얼마나 딴딴한지 손으로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그가 이끄는 대로 블루스를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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