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내가 아무래도 어렸을 백인들 주인공인 에로 영화를 많이 봐서 백인 남자를 좋아하게 됐나 봐!”
“아, 그래? 처음 듣는 이야기다.”
지원의 고백이 자기의 욕망을 자극했다는 듯 바네사는 히죽 웃었다.
“문득 내가 왜 백인인 남편을 좋아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너한테 처음 이야기하는 거야. 너라면 이런 것에 대수롭지 않고 웃어넘길 줄 알았지.”
지원은 웃는 친구를 곁눈질하며 계속 걸었다.
모든 부모는 자식들이 부모의 좋은 것만 물려받기 원한다. 유전, 지능적으로, 가능하다면 정신적, 정서적으로까지 좋은 것만 물려주려 한다. 백인 남성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건지 무의식이 메커니즘으로 작용으로 흰 피부와 큰 눈을 가진 다음 세대를 원했던 건지, 지원은 일본 유학을 가서 친절한 백인 미국 친구에게 반했다가 10년 후 독일 국적의 백인 남성과 가정을 꾸렸다.
지원은 일본 유학 당시(2004년) 백인과 일본인 여성의 혼혈아들을 눈여겨봤다. 눈은 파랗고, 다리가 길쭉한 서구형 신체를 가지지만 아시아인의 처진 눈꼬리, 햇빛에도 강한 피부를 닮아 전체적으로 귀여운 이미지인 혼혈아를 보며 자신이 낳을 아이들을 상상했다.
“혼혈아 치고는 백인 같네.” <자전소설 쓰는 법> 알렉산더 지
저자는 한국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남아이다. 섬세한 남자로서 작가로서 그의 성 정체성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담아낸 책에서 그는 그의 성장과정에서 마주한 백인들의 치우친 시선과 말을 폭로했다.
지원은 이 글을 읽을 전까지, 엄마의 유전자 개량적 의도 혹은 인종이 다른 반려자의 결합이 가져올 반향이자 부작용을 자신의 아이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 없다. 오히려 혼혈아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무지개색 같은 환상이 가득했다.
지원은 일본과 중국, 브라질, 독일까지 여러 국가를 경험하면서 운 좋게도 편견으로 인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다. 설사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차별을 유발하는 주체의 내적 동기와 몰이해에서 생긴 산물이라 생각하여 무시했을 것이다.
지원은 첫째 아이는 전혀 백인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양인 엄마를 판박이 했고, 아기였을 때는 더욱 그랬다. 작은 코에 갈색 눈, 너부대 대한 얼굴형까지 꼭 닮았다. 독일 할머니들은 아기를 좋아한다던데 첫째가 아기였을 때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도 예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지금, 그들 눈에 자신의 아기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당시 지원은 혼혈아가 예쁜데, 우리 아이는 아빠의 모습을 거의 안 닮았을까 실망하던 차였다. 아이는 언어 발달이 느렸다. 세 살까지 말을 하지 않았고 어린이집에서 잘 어울리는 친구가 없었다. 지원에게도 터놓고 인사하는 친한 엄마는 없었다.
한 번, 지원은 아이의 언어 발달이 지연에 대해 원어민 영어 선생님께 하소연하다가, 그냥 왈칵 눈물이 터졌다. 외국 생활의 부담감, 육아 스트레스 그리고 아이에 대한 실망감이 똘똘 뭉쳐서 당시 지원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혼혈아 중에서도 백인의 유전자를 많이 가진 아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지원의 아이들이 있다. 그 비율에 따라 사람들은 백인 vs 동양인으로 나누는데, 그걸 구분할 리 없는 독일인 아이들, 터키, 시리아, 동유럽 이민 배경의 아이들은 그녀의 아이들을 ‘단순한’ 아시아인으로 본다. 지원은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중국인’ 혹은 놀이터에서 ‘아시아인’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눈에 띄는’ 모습을 여러 번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둘째가 속상하고 거슬린다는 듯이 말했다.
“루이스가 나보고 자꾸 시네징 봉봉 카라멜 봉봉이라 해.”
(독일에서는 가위 바위 보를, 중국인 카라멜 봉봉이라고 한다. 단순한 놀이일 수도 있고, 그 놀이가 동양인을 폄하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은 아시아가 몇 개의 다른 나라로 나눠져 있는 것을 몰라. 얼마나 다른 나라가 많은데, 그중에서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 아니 참 엄마는 한국에서 왔고,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고 선진국이야. 그 아이는 그걸 모르지. 어쩌면 그걸 설명해도 그 아이가 안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으면 그걸 설명할 필요도 없어. 그걸 모두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없지. 그리고 너는 아이가 놀리는 게 싫다고 했는데, 그걸 계속하는 그 아이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재미로 놀리는 걸까? 자기가 심심해서 그러는걸. 너네가 반응할 필요는 없지. 말이 안 통하는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무용한 건 없어. 무시하자. 어떤 말을 하더라도 반응하지 말고 네가 놀고 싶은 아이랑 네가 원하는 일을 하는 거야.”
“그리고 솔직히 엄마나 너네가 다른 독일 아이들과 다르게 생긴 건 인정하자 너네 스스로를 봐, 어때? 검은 머리에, 아시아 인의 피가 섞여 있잖아. 엄마는 딱 보기에도 아시아인이야. 너네가 걔네들과 다른 건 너무 당연한 거고. 그런데 그렇게 놀리는 애들도 사실, 잘 따져보면 독일애들이랑 달라. 자기는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해서 안도감 느끼는데, 우리는 원래 다 다르게 생겼어. 그리고 그게 정상이야.”
아이들은 자기 출신과 출생 배경을 어른처럼 설명할 만큼 어른스럽지도 정체성이 확고하지도 않다. 그런 놀림 때문에 속상한 아이를 지원은 충분히 이해한다.
혼혈이라는 큰 그림에서 우리는 독일인 엄마와 아빠 사이의 아이들과, 한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생김새와 피부색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어떤 커플이든 그들 커플 사이에 문화와 언어(사투리와 표준어, 혹은 감사를 표현하고 비판을 표현하는 하나하나까지 우리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 각자의 가정환경에서 다른 형식을 배웠다)를 극복하고 유엔처럼 가정의 평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터키인과 독일인 결혼하거나, 백인과 흑인의 결합, 혹은 독일인과 독일인도 그들만의 혼혈이다. 그런데 색깔과 눈코입 생김새가 각기 다른 동양 엄마와 백인 아빠가 만났을 경우 외양적으로 도드라진다. 이런 결합은 독일에서도 아직 소수이다. 따라서 오해와 편견이 무리가 아니며 어쩌면 자연스럽다.
아이 학교에는 지원의 아이들보다 피부가 짙은 아이들이 많다. 아시아인들도 더러 있고, 그런 점에서 독일(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생각보다 외국인, 혼혈인에 대한 차별을 크게 경험하지 않았다. 독일인 비율이 많았던 유치원에서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지도로 자신의 출신을 보여주고, 학부모님과 콜라보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교육 시도가 이뤄진다. 그러나 그중에 몇몇은 그런 차이를 차별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오해하는 어린이는 있게 마련.
언제든 경험할 수 있는 편견에서 발생한 냉대와 불친절, 혹은 욕설과 폭력은 한국에서도 다문화와 혼혈에 대한 차별도 있고, 독일에서도 있고, 미국에서도 있다. 아이들에게 닥칠 불행을 지원의 마음 같아서는 앞서 나가 미리 낫으로 다 베어버리고 싶지만, 지원은 고통은 총량이 있다고 믿는다. 고통을 예견하는 일들을 다 걷어내다 작은 고통이 중첩된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주차를 하면서 화를 냈던, 즉시 응대하지 않는 점원들은 지원이 아시아인이어서 혹은 외국인이서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지원은 아시아인이라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은 점에서 당당하게 반응한다. 스스로 아시아인이 아니라 국제인, 그들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의식이 그녀에게 있다.
그 사람이 자신을 사람으로 대하느냐, 아니면 그들과 떨어진 어떤 다른 인간으로 대하느냐는 본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해도 그의 마음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니 화를 내도, 잘 보이려고 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호흡을 깊게 한 다음 지나쳐 가면 된다. 똥, 그래 그것은 똥과 비슷하다. 똥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한다고. 어떤 사람이 똥을 시주하면 스님은 받지 않으면 될 뿐이라고 법륜 스님이 말했다.
사람들이 편견을 가질 수는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분 못할 수 있다.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자신들과 다른 어떤 차등한 사람으로 취급하면, 화낼 필요 없이 피하는 게 옳다. 그가 어떤 식으로든 해치려고 하면 정당하게 방어를 해야 하겠지만, 그냥 피하는 걸 고르라고. 미친 사람에게 대항하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
<일리아스>에서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대장장이 헤파이토스에게 부탁해 아들 아킬레우스를 위해 신의 갑옷과 창을 만들어 줬다. 화려하고 튼튼하기로 신의 무기에 비견되는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방패, 창. 그것이 있으면 지원의 아이들이 어떤 험한 세상, 그들을 헤치려는 거친 곳에서도 자신을 보호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