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위해서

by 원더혜숙


지원의 엄마는 언제나 급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거기 뒤에 거시가 있는 거 가지고와.”


“엄마, 거시기가 뭐야?”

지원은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물었다.


“저장 창고에 가서 선반 위에 있는 소쿠리를 가지고 올래?

라고 엄마가 말할 수 있다면 알아듣기 쉽지 않을까 하고.


명절 전 부침개를 부치고 이제 거의 마무리되는 상황, 채반 하나에는 이미 튀김과 부침개로 수북이 쌓였고 다음으로 부침개를 놓을 채반이 필요했다. 그러니 ‘거시기’는 다른 채반이고, 뒤를 가리키니 그런 도구들을 올려놓는 창고일 테고, 또 그렇게 둥글고 납작한 것은 아래보다는 위나 벽에다 걸어 두는 게 용이하다. 지원은 지나다니다 그것을 본 기억이 있으므로 재빨리 달려가 그걸 가져온다.



지원은 학교를 다니고 엄마의 언어생활이 작은 걸 알았다. 지원의 엄마는 자기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말로 신속히 표현하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생활이 더 중요해서 그걸 인지할 여유도 없었고, 굳이 그러지 하지 않아도 가족은 언어를 너머 소통할 수 있었다.


지원은 이따금, 엄마도 좀 더 구체적으로 정확한 언어로 말하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면 좋을까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고, 지원은 엄마의 ‘거시기’를 벗어나 사물에는 구체적 명사를, 감정에는 섬세한 형용사로 아이들의 언어 세계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현실은 지원의 생각과 딴판이다.


지원의 말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기분이 나쁘고 즉각적으로 알아들어 반응을 보이고 싶을 때, 그게 안 돼서 답답한 아이는 짜증 나는 어조로 “나, 한국말 몰라.”했다.


지원도 그 심정을 잘 이해한다.


“엄마도 네가 말하는 거 잘 못 알아들어. 특히 뭔가 다른 생각을 하잖아. 그러면 웅웅 거리는 소리로만 들려.”


......


“그러니깐, verheddern이 뭐야? Verhaften”은 또 뭐고? 독일어는 왜 이렇게 어려워? 다 ver로 시작하고..”

지원은 아이 둘이 하는 대화를 듣다가, 여러 번 반복되는 그 단어의 뜻이 궁금했다.


“엄마 verherdern은 잘 봐, 실 두 개가 있는데 이 두 개가 겹치면서 엉망인 상태를 말하는 거야.”

“이해했어?”


솔직히 말해, 지원은 대강 이해했다. 만약 누군가에게 그걸 똑같이 설명할 기회가 있다면 ‘겹치면서’, ‘엉망’이라는 어휘들로 아이와 똑같이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아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낸다.


“아, 그게 꼬인 걸 말하는구나? Twisted.”


아이와 지원은 어디에서 무얼 하다 그런 말이 나왔는지 방향을 잃었다. 지원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 노력해야 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론일 뿐, 매번 침착하게 반응할 수도, 모르는 아이를 매번 마음 넓게 수용하기도 어려웠다. 어제보다 소통이 수월해졌다는 점이 그나마 희망일 뿐.


지원은 하프 마라톤을 앞두고 흥분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하프 마라톤 하면 응원하러 와줘.”

“엄마, 응원 뭐?”


‘엄마, 응원이 무슨 뜻이야?’라고 정확한 한국어로 질문하지 못하지만 지원은 먼저 그걸 지적하기 전 아이의 의도를 캐치해야 했다.



자신에게는 뚜렷한 심상이 아이에게는 모호하고, 말의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 덩어리를 주지 않을 때, 혹은 그 단어의 무게가 무거워져서 그걸 이해하지 않고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을 때 해야 하는 그런 질문이었다.


“Unterstützung 이야, 엄마 Auf geht's 힘내라 힘. 응원해주면 엄마가 지쳐도 힘내고 끝까지 달릴 수 있을 것 같아.”(정확하게 auffeuern이란 단어지만 지원의 언어 세계엔 오직 ‘지지하다’만 존재한다.)



상대방이 알아듣기를 바라는 수준으로 맞춰서 말할 수 있는 게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쉬운 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와 문장 구조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아이들의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지원에게는 없다. 엄마가 채워줄 수 없는 언어 구사 능력이 학교에서 책에서 많은 경험에서 굳건하게 다져지길 기대한다.


지원은 아이와의 소통에서 불편한 점을 생각한다. 아이들은 지원의 말을 완벽히, 재빨리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의 언어는 상대적으로 독일인 부모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어휘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삼중 언어에서 자란 아이들의 장점을 생각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 감각을 익힐 것이다.




언어란 ‘소통을 위한 도구’이다. 단지 도구이므로, 그것이 상호 이해와 소통을 막는 일은 없어야 하며 그 기능만 잘 작동하면 된다. 상대방의 의도와 감정과 기분을 언어를 매개로 훈련한다. 어휘와 문법 구조가 소통에 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그 결과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언어 너머의 것이라는 것을. 그 언어로 이어진 문화의 그네를 타고 노는 것은 더욱 언어와 문화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만의 언어문화를 만들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 무엇보다 그것이 중요하다.











keyword
이전 06화못 알아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