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아이들이 한국어에 흥미를 가지길 바라지만 독일어를 쓰는 환경에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읽는 환경을 유지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지원은 기회가 닿으면 집중적으로 배우는 날이 오길 바라며,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한국어로 말하기, 한국 책 읽어 주기 정도만 한다. 그 때문인지 아이들은 한국에서 두 달 체류하고 귀국할 때쯤 겨우 한국어 몇 마디를 자신 있게 뱉는 수준이며, 일상 복귀 후에는 자신이 독일어를 할 때처럼 주춤하고 지원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대다수이다.
어느 날 지원이 한국어 책을 읽어주는 중 ‘한숨’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딱 맞은 독일어를 몰랐던 지원은 한숨을 직접 쉬어서 알려줬다. 아이들은 알쏭달쏭, 숨 쉬다와 한숨을 헷갈려했다. 하품하다는 아는 단어이고, 그리고 한숨은? 지원은 애써 기억해 알려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이야기 전개에 빠져 지원의 궁금증에 무반응. (그렇게 궁금한 단어는 그다음 날에도 잘 기억나는 법, 찾아서 알려줬다. seuzten이다.)
지원은 답답했다. 처음 외국어를 배울 때 어휘와 문장 구조에 한계가 있어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운.
-얘들아 너네가 크면 엄마랑 대화가 안 될 수도 있어.
지원은 갑자기 사방으로 어둠이 휩싸인 것 같았다.
-엄마는 이렇게 구체적인 단어를 독일어로 모를 때가 있고, 너희는 한국어를 잘 모르니깐, 엄마가 말하고 싶은 걸 너네한테 잘 못 전달할 수도 있어. 그때는 어떡하지?
첫째는 지원의 말을 못 알아들었거나 무시하는 건지 그냥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고 했다. 지원은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태평했다.
지원은 모국어라도 모르는 단어를 지적 호기심을 채우듯 배울 때 재미있고, 하나를 알았다는 것만으로 뿌듯해질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아들아, 그건 무슨 뜻이야?
아이들은 지원의 질문에 익숙하고, 설명에도 익숙하다. 지원은 자신이 무관심하고 모르는 게임이나 레고 혹은 모르는 단어 뜻, 학교에서 놀았던 놀이에 대해서 자주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지원에게 자기들의 세상을 자기만의 언어로 설명했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고, 자연스러운 거야. 모르는 걸 묻고 들어서 배우는 과정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일들이야.
비단 언어만이겠는가. 모든 방면에서 어른들이 어린이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내국인이라고 해서 약속 날짜 시간을 착각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외국인보다 많은 것을 알지도 못한다. 서로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들의 세계에 반 발짝 들여놓았을 때 우리는 관계에서 작은 기쁨을 느낀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고 지원보다 독일어를 더 잘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원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모르겠고, (계수나무 위에 타잔의 팬티가 걸려있네, 지나가던 슈퍼맨이 냄새 맡고 쓰러졌대요. 원래 노래를 변형해서 부르는 그런 노래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외우는 시도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들이 노는 게임도 잘 모른다. 아이들의 세계는 낯선 것들 투성이어서, 지원이 어릴 때 배웠던 한국 동요와 한국 놀이가 그들이 경험하고 배우는 것과 너무 달라서 거리감이 생긴 것만 같았다.
지원은 그럴 때마다 물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엄마는 잘 모르겠는데, 설명 좀 해 봐.
첫째는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고 자연스럽게 설명했다.
-엄마, 그러니깐 이건 첫 번째로…(독일인처럼 혹은 남편처럼 1부터 100까지 길게 설명하려고 폼 잡는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는 꼭 잊지 않는다.
-엄마, 알겠지?
아이의 성취감이 100으로 오른 상태다.
지원이 아이들의 말을 잘 이해했을 때는 자기 어렸을 때 놀았던 비슷한 놀이를 설명하거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다. 돈가스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실뜨기, 감자에 싹이 났다 가위 바위 보, 등등 기억하고 있는 놀이를 추억 주머니에게 꺼내 주면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좋아했다. 지원이 모르면 아이들이 설명해주고, 아이들이 모르면 지원이 알려주면 그들의 유대가 끈끈해졌다.
지원은 대화 중에 모르는 단어를 문맥에서 찾거나 바로 사전에서 찾지 못해서 답답한 순간이 많다. 달리 생각하면 종종 그런 단어는 그냥 넘겨도 무방하다. 어느 날 다시 기회가 닿으면 익힐 것이고 아니면 그만인 것들. 지원은 모르는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으면, 언어 공부는 놀이처럼 재밌어졌다.
세 가지 언어를 쓰는 지원의 집에는 가끔 자기들이 알고 있는 단어로 조합한 엉뚱한 말 때문에 키득키득 웃는 일이 있다.
나는 알록달록한 색을 좋아해요. 내 옷장에는 알록달록한 옷 들밖에 없어요. 내게 그렇게 알록달록한 옷밖에 없는 이유는 내 남편이 화가이기 때문이죠.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말러 말러 이스트"
마지막 가사에서 화가는 독일어로는 말러(Maler)이다. 그런데 빨리 발음하다 보면 말랑말랑처럼 들리고, 가족들은 말러 대신에 말랑말랑으로 바꿔서 부르며 낄낄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