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생겨서

by 원더혜숙

2014년 겨울, 지원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골 도시를 걸었다. 덜컥거리는 유모차, 굽 낮은 스니커즈 위로 발목 양말과 레깅스 사이에 시린 바람이 들어왔다.


“사람이 왜 이렇게 적은 거야?”

“독일에는 일요일에 상점이 문을 안 열어.”



남자는 자기도 일요일 휴업이 의아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서독 베를린에서 거주하다 10살 때 브라질에 이민 가서 줄곧 자랐던 남자, 그는 독일에는 직업 인턴쉽으로 6개월 살았던 경험이 전부. 그리고 이번 아내와 독일로 전직하고 그에게도 독일 생활은 처음이라 외국인인 지원처럼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 많다.



그런 것 치고 너무 조용했다. 울퉁불퉁한 구시가 포장석에 저렴한 중국제 플라스틱 바퀴가 부딪치면 요란하게 방해 없이 빈 도시의 건물벽을 울렸다. 상아색 구시청 벽에 금색 시계 눈금과 시침이 안개를 사그라지지 않은 겨울 안개를 뚫고 비쳤다. 시간은 또각또각 흐르고, 그라벤 보행자 거리 위로 둥근 성벽과 붉은 지붕이 도시를 굽어보았다.



일요일이라도 사람들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지원은 국제 도시 북적거리고 왁자지껄한 상하이에서 살다가 왔다. 상대적으로 고요한 시골 도시에 질려서 시내 구경을 하겠다는 마음이 쏙 꺼졌고 영원히 데워지지 않을 것 같은 아파트에 들어갔다. 폭신한 보름달 빵 같은 보라색 소파와 흰 벽을 가득 채운 옅은 갈색 티브이 벽장, 그리고 헤링본 바닥은 안락한 내 집이라기보다 세든 집의 어색함을 줬다.



한번 변기 물을 내리면 아파트 일 층을 온통 물소리로 샤워하고 울렸다. 거실은 더블 침대 다섯 개를 놓을 만큼 컸고, 천장은 하얬다. 지원은 모유가 적다고 하는 지적하는 가족도 없어 가벼웠지만, 신선한 채소를 챙겨 냉장고에 넣어주는 가족이 없어 아쉬웠다. 아기는 자주 울었고 자주 깼다. 젖이 모자라는 것도 모르는 엄마 지원은 그런 아이를 재우기 위해 거실 앞 정원에 닿은 베란다에서 유모차를 앞 뒤로 밀었다. 밤이면 아이를 재우고, 아이가 울면 누워서 젖을 먹이고 다시 깨면 출산 후 아픈 엉치뼈를 곧추세우며 젖을 먹였다. 하루 종일 아이와 슈퍼를 갔다가 돌아오거나 산책을 나가는 일 밖에 하지 않으며 살았다.



지원은 소통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소통하지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만의 취미와 아이들 케어로 시간을 원하는 곳에만 쓰고 싶기 때문이지만, 그때는 빵집에 가서도 할로, 이거 저것밖에 하지 못했고 알아듣지도 못했다.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친구도 없었을 때였다.



지원은 육아에서 온 억울과 감정을 털어놓을 수 없고 교류할 수 없는 불능에서 오는 자존감 하락의 수렁에 빠졌다. 고립되어 있었다 소통도 없었고, 누군가 곁에 있는 사람 아니고서 가족에게 기대거나 그런 일을 한 일이 별로 없었다.



겨울날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 임신한 몸으로 이제는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하고 실습을 다섯 번 한 후였다. 차를 몰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차, 케냐 친구가 생일을 맞았다고 했다. 생일은 생각날 때 챙겨야 한다고 생전 만들어보지도 않은 귤잼을 만들어서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기를 뒷좌석 카시트에 태우고, 서리와 얼음으로 범벅된 언덕 도로를 연기를 내고 서행했다. 긴장으로 땀이 나고 식어 추위로 덜덜 떨었다. 제발 뒤에 다른 차가 붙지 않기를. 겨우 친구 집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미리 나와있었고 아직은 어색하기만 했던 그녀에게 선물을 줬다. 까만 얼굴에 바짝 마른 입술, 추위에 떠는 친구에게 말했다.



“나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나 지금 덜덜 떨고 있지?”

“나도 운전 배운 지 얼마 안 됐어.”



친구의 말에 지원은 힘이 났다. 덜덜 떠는 손으로 핸들을 다시 잡고 곤히 자고 있는 아이가 깨지 않기를 바라며 미끄러운 언덕길을 한 번씩 너무 세계 잡아 앞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섰다가 엉금엉금 언덕을 내려서 겨우 집 앞에 주차를 하고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길을 운전한 그날, 지원은 대단한 걸 해낸 것처럼 행복했다.



도시에서 열린 국제음식 페스티벌, 누구도 만나고도 대화하고 싶지도 않았다. 고국의 음식과 너무 다른 햄버거, 소시지, 피자, 스페츨러 등의 음식들 가운데, 지원은 그나마 채소와 익숙한 향신료를 버무린 태국 음식을 골랐다.



저녁을 먹기엔 이른 네 시, 긴 주황색 행사용 테이블에 지원과 남자만 앉았다. 남자는 왁자지껄하고 번화한 분위기를 기분이 좋았다. 한편, 지원은 들뜬 남자의 기분조차 비뚤어지고 보고 그가 꺼내는 화제마다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대화가 잘 풀리지 않았다. 지원은 무거운 돌을 어깨에 짊어진 듯 어깨를 숙이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행인을 구경하기도 빈 테이블을 보기도 했다.



백인 남자와 임신한 흑인 여성이 앉아도 되냐고 묻고 앉았다. 지원은 고개를 돌린 공간이 사라진 것 같아 못마땅했다. 그런 지원의 기분을 알길 없는 남자는 백인 남자와 대화를 시작했다. 영어로 몇 마디 하다가 같은 회사(그 도시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직장 동료가 되는 작은 도시) 사람이었다. 와이프라고 소개한 여성, 그녀가 흑인이라서 아니라, 밥을 다 먹고, 아무런 식욕이 없는, 아니 아파서 식욕이 없을 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제대로 쳐다보지도 말도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우간다 친구들 틈에서 노란 콩처럼 끼여서 놀았던 일, 또 옆 방 친구, 공항에서 만났던 수많은 흑인들까지, 그들과 이어진 인연의 끈이 있다고 느꼈던 지원은 원한다면 더 살갑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남자들의 대화가 금방 끝나길,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 시선을 두고 싶은 대로 두기만 바랐다.



그해 겨울, 우연히 남자는 길에서 치과에 가던 그 흑인 여자와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지원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지원과 캐시는 아이들과도 만나고 집에도 방문하고 초대하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친구, 네가 너무 보고 싶다.”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내 언니가 요즘 내가 사람들한테 소홀하다고 하던데, 혹시 너도 추궁하려고 전화한 거야?”

지원은 왜 친구가 그렇게 과민하게 보이는지 의아했다.

“아니, 진짜 네가 보고 싶어서 연락한 거야. 다른 의심은 말아줘.”



지원은 한 사람이 자신의 진짜 친구가 되기까지 7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와의 인연도 벌써 8년째, 그녀의 케냐 결혼식에도 가고, 언젠가 지원의 고국 한국을 보고 싶다고 하는 그녀는 국적과 인종, 언어를 뛰어넘는 친구다. 절벽에서 손을 내밀어줄 친구, 황량한 사막에서 목마를 때 물 병 하나 건네주는 그런 친구가 지원에게는 있다. 그녀의 우정으로 지원은 타국에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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