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이 달라서

by 원더혜숙


마흔, 삶을 돌아본다. 무한히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자신, 지금까지의 궤적을 거슬러 오른다. 이 글은 내가 타국에 살 고부터의 이야기다. 평범하지만 산골소녀로선 특이했던 반 평생 이방인의 삶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써 내려가기로 한다.



2014년 일본 시즈오카, <겨울연가>를 대표로 한국 드라마 붐이 일었고 중년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시즈오카 대학 경제학과에 한국인 정교수가 있었고 한국인 유학생들과 교류를 맺고 싶어 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이 많았던 시기다. 일본 슈퍼에서 김과 김치를 쉽게 구매할 수 있었고, 아침 식사에 장아찌 대신 김치를 곁들이는 일본인도 더러 있었다.



지원은 교환학생으로 시즈오카에 유학을 갔다. 일본어 한마디도 못하던 시기는 지나고 모르는 단어 없이도 대강 소통이 되던 때, 한국인 전용 기숙사에서 다른 한국 유학생이 설거지를 했고, 지원은 세 명의 경제학과 일본인 친구들과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너네, 그 가수 기억나?”

“아, 000 노래 불렀고, 얼마 전 누구와 결혼했던 그 남자 가수?”

”어 기억나.”



두 명의 여학생이 고개를 끄덕이고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기억나는 듯 동시대 개그맨의 성대모사를 하고 셋은 동시에 와하하 웃었다. 그게 누구냐고 물었지만 급류처럼 흐르는 대화에 지원의 질문은 휩쓸렸다.



지원은 떫은 감을 씹는 듯했다. 첫 유학, 첫 외국어를 그녀는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했고, 물리적인 산을 대할 때는 물리적인 한 걸음이 수순에 맞았고, 산 정상에는 마땅하게도 현지인 수준의 외국어 실력이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일본인과 소통을 매끄럽게 하고 그 언어 쓰는 노동환경에서 살아남더라도 공유하는 문화가 없으면 공감대도 파생되지 않는다는 외국어 공부의 한계를 지원은 느꼈다. 언어 너머 문화라는 큰 빙하가 은닉해 있다는 걸 느끼고 처음으로 외국어를 그런 식으로 마스터하겠다는 허망한 꿈을 버렸다.



어린 지원은 녹색 대문 앞에 쭈그려서 가족들을 기다렸다. 오빠에게만 친절한 할머니라도 나타나면 좋겠다고, 눈물을 닦으며 낮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손가락으로 땅에 원을 그리고 해님을 그리고 다시 지우다 가끔은 가을 푸른 하늘을 나는 잠자리를 본다.



“그때, 지원은 몇십 년이 흐른 후 이국땅에서 살 줄 알았을까.”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과제는 그때그때 다르다. 당시 지원은 가족이 곁에 없는 두려움과 저물어 가는 하루의 끝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혼자 있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숲 속을 뛰고 자유로이 생각에 젖는데 그때는 그런 건 상상도 못 했다.


“풀잎 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송이도 넣었고요
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모자 씌워주고파."



방학 때 서울에서 시골에 내려온 소녀는 소나기를 맡고 감기에 걸려 죽는다. 그 아이를 기다리는 시골 소년. 냇가에 징검다리가 있고, 그 위를 소년과 함께 건너고, 들판에서 세차게 내리던 소나기를 오두막에서 피하던… 그 이야기 속에서 지원은 자신이 얼굴이 까매 콧물을 흘리는 눈망울이 까만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지원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긴장하고 발표했던 윤리 시간이 떠올랐다. 튜톤 잡지를 구독해 읽었던 반 친구가 짝이 되었다. 볼드체로 동서양 사상이 다닥다닥 쓰여 있었고, 그것을 읽고 이해해서 재량껏 발표해야 했다. 분배한 분량에 따라 “그러니깐,,”부터 시작하려는데 눈앞이 하얬다. 머뭇거리고 말문이 막힌 지원을 묵묵히 기다리던 윤리 교사는 그녀를 두고 지원의 짝에게 발표를 권했다. 지원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않고 45분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 기억이 몇 년 후 대학 강의실에서 동아리 회원들 앞 발표 자리에서 그녀를 덮었다.



몇 년이 지났고, 지원을 바라보는 청중은 그보다 적었다. 지원에게 흥미로운 주제였고 준비가 어느 정도 됐다. 교탁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각각의 문화재를 거론하기 전에…,” 돌연 강의실에 킥킥 거리는 웃음이 터졌다. 지원은 말을 이었다. “먼저, 역사를 대략 짚고 넘어갈게요.” 앞에서 웃음을 참는 동기, 그 옆에 싱긋 웃는 선배들, 지원은 그들의 반응에 당황했다. 한 선배가 지원에게 물었다.



“지원 양, 어디 출신인가요?”

“함양,,, 인데요.”

“어디 함양?”



대구 토박이들이 서부 경남의 시골 도시를 알리 없었다. 지원은 대구에 비교적 가까운 거창은 알까 싶어서 말했지만, 대개는 아리송 송한 표정을 지었고 지리적 감각을 발휘하는 몇몇 복학생들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표는 계속되었지만, 지원의 발표 의지는 이미 증발했다. 뒤풀이에서 그들은 그녀를 산골 소녀라고 불렀다.



지원은 그런, 특정 집단에서 동떨어진 기분이 싫었다. 그들에게 주목받는 일은 더욱 싫었다. 그녀는 소속감을 절실히 원했지만,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타자(他者)는 지원을 주목하고 그들의 유대감을 결속했다. 그 앞에서 긴장하고 의기소침하는 일이 습관이 된 것 같지만, 이국에서 사는 지원은 아직도 그것과 싸우는 중이다.



지원은 아이들 유치원 회의에 참석했다. 참석 학부모가 겨우 열 남짓, 간단한 자기소개까지 해야 하는 상황. 혼자 갔고 데면데면한 독일 엄마들 사이에 중국인 엄마가 눈에 띄었다. 얼굴은 익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말을 해 본 적 없는 그녀가 지원에게는 비슷한 얼굴색이라는 이유로 위안을 받았다.



지원은 어느 정도 독일어에 자신이 있었고, 자기소개를 무난히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의는 전혀 무관한 일로 보였고, 어떤 의견을 내거나 적극적인 참여는 불가능해 보였다. 지원은 그게 실제로 자신의 모습인지 아니면 발언하다가 독일어 실수할까 봐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하지 않는지를 잠시 생각했다.



일본 유학을 간지 6개월, 지원은 교환학생으로 유학 중이었고 전공 필수 수업을 들어야 졸업이 용이했다. 필수 전공 수업 중에 불교 철학은 특히 어려웠다. 만트라의 불교 예술을 일본어 설명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시간, 지원은 자기 차례가 오기 전 수없이 할 말을 생각하고 알맞은 어휘를 골랐다. 말머리를 타고 오르는데 수많은 청중이 동시에 듣고 있다는 의식을 하자마자 생각이 온통 뒤죽박죽 되었다. 지원은 그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발언 후 겨드랑이가 완전히 축축해졌다는 것만 생생할 뿐.



지원은 그때를 생각하며 조용히 두 발을 모으고, 만일에 있을 발언 기회를 대비해 머릿속에서 대사를 생각하고 문법을 점검했다. 일동의 분위기를 살핀다. 선생님의 발표가 계속 이어지고 다른 학부모가 활발하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이 이어지자 뛰던 심장이 안정을 찾았다.



네 번째 유치원 축제, 다시 찾은 가시 방석 같은 공간에서 지원은 많은 청중들 사이에 숨어 아이들을 지켜본다. 완벽하게 익명이 되어 다른 학부모들이 지원이 춤을 추는지 아님 뭔가를 먹고 있는지 혹은 평소 교류가 있지만 무리 속에서 지원이 아니라 다른 독일인 가족에 친근한 독일 엄마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구석으로만 맴돈다. 불편한 한 시간이 지나고 지원은 귀가해 스타킹을 벗어던지고 브라를 던지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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