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윤석열
지난 한달간을 뜨겁게 달궜던 조국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드디어(!) 임용됐다. 발표가 이뤄지는 그 날까지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청문회를 마치고 결정이 바로 날 줄 알았는데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돼서야 비로소 발표가 났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연설비서관이 임용과 낙마 결정에 대비해 2가지 버전의 대국민담화문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만큼 깊이 숙고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소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춰 마음 속으로는 예전에 결단이 이뤄졌던 거 아닐까 싶다.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참여정부에 재직한 누군가 고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해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교해 언급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직설적이고 저돌적으로 보이지만, 참모를 비롯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용해 결정을 내렸다고 전한다. 이에 반해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지만, 결국에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갔다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외강내유형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은 외유내강형인 셈이다(이런 점에서 상대방 입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더 까다로운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대국민 담화문에 등장한 이유 외에도 대통령의 의지가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에 강하게 작용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 특히 사법개혁은 기대를 갖게 한다. 참여정부의 경험을 바탕삼아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판단이야말로 '올바른' 정치적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란 누군가의 욕망을 대표하는 실천 아니던가. 그래서 혹시라도 지지자를 실망시킨다면 어떤 정치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후원자 그들의 욕망을 정확히 읽어내는 일이야말로 정치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라고 생각한다.
이때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열연한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2019)이다. 브렉시트 결정을 위한 선거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 컴버배치는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캠프의 선거 전략가 도미닉 커밍스를 연기한다. 유독 각인된 장면은 선거 캠페인 문구를 정하기 위해서 고민하던 중 선거 메시지 수신자가 누가 되어야하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주인공은 칠판에 벤다이어그램을 그리며 브렉시트 찬성자, 반대자, 부동층으로 세 영역으로 칸을 구분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말한다. 찬성자는 어차피 우리편이니까 메시지 대상자가 아니고, 반대자는 무엇을 해봤자 반대하니까 메시지 대상자가 아니다. 따라서 브렉시트 선거 캠페인의 주요 타깃은 부동층이 되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타깃층을 공략하겠다는 포석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용을 보면서 유독 이 영화가 떠올랐던 이유는, 대통령의 선택이 정해진 수순을 밟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동층이야 떨어져 나가겠지만 찬성층의 여론을 바탕으로 지지를 받아야 했었다(여론조사에서도 부동층의 이탈이 관찰된다). 만약에 반대편의 여론에 밀려 그들이 원하는 선택을 했다면, 그 결단은 단순히 법무부 장관 내정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지층의 분열을 가져오고, 다음으로 정권이 천명한 사법개혁에 심각한 우려를 불러와, 결국 국정운영의 동력을 일정 부분 상실했을 듯하다. 그런 점에서 모두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지지층이라도 만족시키는 게 낫다. 게다가 몇몇 여론조사에서 법무부장관 임용과 관련해 찬반이 오차 범위이기는 하지만 비등하게 나오지 않았던가. 이것을 종합해보면 나는 대통령의 판단이 옳았다고 본다.
지난 한 달의 소란을 보면서 찬성과 반대, 지지와 비토 등 전선이 분명해진 듯하다. 그 현상을 한 달 사이 쏟아진 언론의 보도량에서도 엿본다. 대선과 같은 정치적 사건 즈음의 관심사만큼 폭발적이었다. 단순히 내년이 총선이라는 사실로는 해명이 안 된다. 이 소란을 크게 만들어준 주요 주연은 야당과 언론이지만 마지막 조연은 검찰이었다고 생각한다. 청문회를 앞두고 벌어진 검찰의 수사와 기소는 그만큼 갑작스러웠다.
자신들의 수장이 될지도 모르는 내정자의 주변 수사를 청문회 즈음 시작해 심지어 임용 발표가 나기 전 피의자 심문도 하지 않고 기소를 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왔다고 본다. 검찰의 개입이 순수하지 않고 심지어 ‘정치’를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줬던 거 아닐까 싶다. 검찰총장을 비난하는 댓글과 해시태그에서 사람들의 분노를 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지지받던 인물이, 조직의 수장에 오르더니 벌인 행위가 기득권을 수성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순식간에 지지에서 반대로 돌아선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뜬금없는 검찰 수사야말로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개혁에 역행하는 폭력이다. 정당하게 행사되리라 기대했던 그 권력이 어떤 민심을 배반해 버렸기 때문이다. 법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주권자의 생각, 이른바 ‘시대정신’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과 같은 권력기구는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는 커녕 방향을 바꾸기 위해 저항하고 있다. 표창장 위조 여부를 밝히겠다고 대규모 인원을 투입하고 공소시효 하루 앞두고 기소를 결정하는 일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집요하게 누군가를 낙마시키고 심지어 임명권자, 정확히는 주권자의 의지에 역행하는 행동에 불과하다.
검찰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법무부장관이 내정됐다. 임용 하루만에 법무부장관의 행적이 자세히 보도되는데, 그 속에는 어떤 인사 소식이 포함돼 있다. 자리에 사람을 앉히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의 자리를 임명하는 일이야말로 개혁의 시작이다. 다른 한편 그것은 기존 누군가의 자리를 박탈하는 일도 의미한다. 권력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어떤 자리의 사람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정당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누군가 그 자리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면,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자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벌써부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어색한 동거가 어떻게 유지될지 심지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나는 그 승패가 누가 얼마나 정당한 폭력을 행사하느냐에 따라 기울어질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