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드 아스트라>(2019)
주인공의 독백으로 영화 <애드 아스트라>(2019)는 시작한다. 허나, 자신을 소개하는 음성 속에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그 속에서 전혀 미동이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외부와 차단된 우주복처럼 스크린에는 침묵과 같은 시간이 지속된다. 그런데 이 시간을 깨는 사건이 발생한다. 우주의 전류급증현상으로 사고가 발생해 로이는 추락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냉정한 상황판단으로 목숨을 건진다. 영화가 소개하는 주인공은 한 마디로 유능한 군인으로 어떤 위기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그의 직업에 비춰 보더라도 지나치게 냉정하다. 이 때문에 관객은 주인공에게 섣불리 다가서지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숨이 막힌다. 로이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이유 모를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 그래서 나는 섣불리 이 영화를 추천하지 못하겠다. 주인공의 변화를 끈덕지게 따라갈 의사가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모를까.
주인공의 무표정한 얼굴만큼이나 우주도 운동이 없다. 우주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영화를 기대한다면 잊어라. 이 영화에서 공간을 채우는 하나의 점, 우주선이 이동해도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지된 듯한 우주나 감정이 없어 보이는 주인공은 묘하게 비슷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근 미래라는 영화의 배경은 인류가 우주로 진출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주여행이 가능하고 가까운 행성, 달을 비롯해 화성에 기지를 개척할 정도지만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달은 국가간 갈등으로 분쟁이 벌어지는 세계로 묘사된다. 심지어 달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에서 나는 주인공의 무표정이 먼저 떠오를 정도였다. 급박한 사건에서 감정의 미동이 발생하고 흥미진진한 사건이 발생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심장 박동수 80을 넘지 않았다는 로이의 전설처럼 그는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고 미션을 완수할 뿐이다. 그래서 도대체 이 인물에게 언제 변화가 찾아올지 나는 궁금했다.
화성의 지하기지에 도착해서 비로소 변화가 감지된다. 어린 시절 가족을 떠난 아버지(토미 리 존스)를 향해 메시지를 처음 보낼 때도, 그리고 정기적인 심리검사에서도 로이는 평온을 유지했다. 하지만 응답이 없자 달라진다. 변화의 시작은 주인공이 평정을 깨는 순간 벌어진다.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원망섞인 감정을 쏟아내 버리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내면을 드러내지 않던 로이가 울음을 터트리자 상황은 급변해 버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응답이 드디어 도착한다. 이 순간 영화는 활력을 얻는다. 이제 주인공의 무표정만큼이나 너무 뻔한 사건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임무에서 배제되지만 주인공은 충동적으로 지시를 거부한다. 이제 로이에게 중요한 과제는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이끄는 대로 우주선에 탑승한다.
주인공의 변화는 달에서 화성으로 장면에서도 느껴진다. 과거에 어떤 고독이라도 감내했을 법하지만, 이제 그 공백의 시간을 힘들어 한다.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냉정했던 그에게 변화가 확연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전까지 이야기를 끌고 갔던 사건은 형식적인 운동에 불과했다. 로이에게 변화가 왔던 순간부터 실질적인 운동이 생겨났다. 무표정한 얼굴에 표정이 생기고,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는 안도가 됐다. 이 영화를 끈덕지게 따라온 보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상영시간은 2시간 남짓이지만 그 이상의 러닝타임을 지닌 영화보다도 힘들다. 주인공의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수면의 유혹에 빠져들지 모른다.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이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은 사족과 같다. 아버지의 실체, 영웅으로서 아버지와 반영웅으로서 아버지의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미 로이의 변화에서 감지됐다. 그리고 지구를 향환 귀환에서 그의 독백에서 확인된다. 아버지는 평생 존재하지 않은 것을 찾아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면, 자신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을 찾겠다는 다짐말이다. 바에서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주인공. 그리고 창문 밖으로 웃으며 등장하는 아내. 로이는 웃으며 그녀를 맞는다. 지구로 귀환 이후 로이는 자신을 얽매고 있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심장맥박수로 측정돼 감정을 철저하게 조정하던 억압에서 탈출해 버린다. 이제서야 편하게 주인공은 웃고 소중한 사람과 같이 살아갈 준비가 된 듯 보인다. 당신이 사랑해야 할 존재는 저 멀리 별 사이에 있지 않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은 당신 눈 앞에 서 있는 누군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