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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Mar 04. 2020

돌아서면 보이는 것들

영화 <결혼이야기>(2019)


 

결혼을 해본 적 없으니 누군가 결혼생활을 얘기하면 나는 시큰둥하기 일수다. 게다가 그런 종류의 얘기는 사생활이니 굳이 관심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흘려듣는다. 다만 자신의 배우자에 얽힌 얘기가 하나같이(?) 칭찬보다는 불만이라는 데 종종 놀라곤 한다. 다들 결혼생활에 불만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그럴 때마다 혼자 사는 일도 힘들지만 같이 사는 일도 힘들구나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영화 <결혼 이야기>(2019)는 이혼에 맞닿은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찰리(아담 드라이버)의 사연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기서 관객은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결혼 이야기’가 아닌 ‘이혼 이야기’로 결혼을 얘기한다니, 뭐가 이상하지 않은가. 잘 살고 있는 커플 이야기는 애당초 결혼의 진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듯이 말이다. 이 대목에서 이 영화가 결혼이라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드러난다. 어떤 일은 거리를 띠울 때 그 진상이 잘 드러나는 법이니까. 



성공한 극연출가 찰리와 그의 곁에서 나름의 연극배우로 자리매김한 니콜, 그리고 귀여운 아들까지. 이 부부는 겉으로 보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니콜의 독백에서 찰리는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은 남편이다. 20대 열정에 이끌려 자신의 경력까지 포기하며 로스엔젤레스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니콜은 남편의 극단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가로서 극단 대표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장점 많은 그이지만 그녀의 독백의 후반부는 배우자에 대한 날선 평가로 가득 차 있다. 이혼을 원하는 그녀이기에 그런 반응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찰리의 독백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독백에서 니콜을 향한 평가는 긍정에서 부정으로 진행된다. 영화 초반 화면 넘어로 들려오는 보이스오버에서 주인공 둘 사이의 차이가 확연히 부각된다. 누구 탓이라고도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다르고 그 결과 이혼을 결심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조용히 진행되리라 기대되던 이별은 한바탕 홍역을 치뤄야 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 양육권 소송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일은 예정된 수순이다. 그런데 그 소송 과정이 오히려 그들 사이 감정을 더욱 상하게 한다. 이혼을 잘 하기 위해서 찾아간 변호사들은 변론 과정 중에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찾아 공격한다. 그 결과 당사자들은 상대에게 더욱 날선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런 과정 덕분에 니콜과 찰리는 상대에게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초반 독백에 불과했던 상대를 향한 대화가 서서이 진정한 대화로 모양새를 갖춰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화란 소통에 방점을 찍지만 언제나 대화가 그렇던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갈등은 증폭되고 대화는 파국으로 치닿기 일수이다. 반드시 니콜과 찰리와 같은 부부사이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그런 경험은 어렵지 않게 찾아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런 지난한 갈등 끝에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성공적인 이혼 소송 끝에 니콜은 축배를 든다. 변호사의 조력에 힘입어 만족스럽게 양육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혼 소송 끝에 찾아온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게 문제이다. 아이 접견시간까지 하나하나 따진 결과는 상대의 패배이지만 그 결과는 상대의 상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혼 소송을 한 지 1년이 흘러 니콜과 찰리는 할로윈을 다시 맞는다. 할로윈 복장을 입고 떠들썩하게 아이들이 뛰는 가운데 과거의 부부는 조우한다. 찰리는 뉴욕에서 연극연출가로 경력을 접고 로스엔젤레스의 대학에 자리를 잡기로 결심한다. 그 선택이 아이를 더 잘 보기 위해 내린 선택이리라. 니콜은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연출가로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게다가 그녀 곁에는 새로운 남자친구까지 생겼다. 그러나 접견시간 하나하나 따지던 과거의 그녀는 없다. 니콜은 너그럽게 아이가 아빠와 시간을 같이 보내도록 허락한다. 




시간이 흐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인다. 그 이유는 사물, 사건 등과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니콜과 찰리의 이야기가 왜 이혼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인지 영화 끝에서야 수긍이 갔다. 결혼은 끝나봐야 그 시간의 진실을 드러내니까.결혼 과정 중에 결혼을 뭐라고 얘기할 수 없을 듯하다. 그래서 아이를 차에 태우고 거리를 빠져나가는 찰리의 차가 그렇게 외롭게 보이지 않았다. 찰리는 찰리대로 여유를 찾았을 테니까. 그리고 삶의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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