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친구 얼굴은 참으로 피곤해 보였다. 평일이었지만 점심시간을 빌려 한끼 먹자고 만났는데 약속을 잡은 게 미안할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혹시라도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낯빛이 너무 안 좋았다. 당시 그 친구는 어느 대기업의 재무파트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바쁜 시즌이라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한다고 자신의 근황을 얘기해줬다. 그러면서 자신은 마지못해 직장에서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짧은 만남 이후 어느날 그 친구가 이민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친구의 이민 결정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당혹스러웠다. 일단 그 친구 아버지가 서울 모처에 건물을 가질 정도로 집이 살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였다. 유산도 상속받을 터인데 뭐하러 힘들게 이민을 가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내 주변에 이민을 간다라고 선언을 하고 가족을 데리고 떠난 사람은 그가 처음이어서다.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내 주변에 해외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지인들의 부류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공부를 하러 떠났다가 정착한 경우, 두 번째 부류는 일을 하러 떠났다가 안착한 경우가 다였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한 부류가 더 생긴 셈이다. 이민이라는 선택으로 이 땅을 떠난 경우가.
이민을 떠나기 전 왜 이민을 가냐는 나의 질문에 그 친구의 답변은 별 게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가 다였다. 그 답변에 덧붙여 자신 나름의 이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얘기했다. 과거처럼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가는 이민은 아니래나 뭐래나. 시간이 흘러도 그 친구의 이민의 변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그 말 한 마디가 말이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평탄하게 잘 흘러가리라 기대하던 삶에서 그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인생의 방향타를 틀고 싶다는 소원이 이민이라는 행동으로 드러났을 것 같다. 그 친구의 부모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민을 기어코 가겠다고 나섰으니까.
이민을 떠난 그는 어떻게 살까. 솔직히 잘 모른다. 그 흔한 페이스북과 같은 SNS도 귀찮아하는 나에게 그의 소식을 들을 연결 고리는 없다. 다만 풍문으로 시드니 어딘가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참으로 칼질을 못 하더라는 뉴스까지 덤으로. 대학 시절 그 흔한 알바 하나도 안 하고 곱게 자란 인간이 주방일을 할 것을 생각하면 나는 괜히 웃음이 난다. 그리고 그 친구가 여기 보다는 행복하리라는 기대에 안도감이 든다. 적어도 자신의 욕망대로 떠났으니까 후회는 없을 거다. 게다가 곁에는 아내와 아이들까지 있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터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