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독서를 생각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게 끼친 영향 중 하나는 몇 개월 동안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지난 몇 년간 도서관을 찾는 게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으니 공부도 해야하니 진지하게 고민해 고른 선택지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이유를 찾자면 내 자신이 집에서는 뭘 해도 능률이 오르지 못하는 습관이 배긴 인간인지라 그랬다. 그곳이 어디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이때 도서관만큼 조용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장소도 없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책 때문에 지금 도서관은 문을 닫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올해는 이런 식이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애정 장소 하나가 사라졌다.
도서관을 이용 못해서 더 아쉬운 점은 덩달아 나의 독서 이력도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몇년 사이 과거만큼 종이책을 사서 읽어야 하나 싶어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렸다. 공부해야 해서 줄을 쳐야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책을 사지 않았다. 그런데 주간에 한시적으로 예약 대출만 하니 방문 시간이 맞지 않으면 빌리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당일 오전 예약, 당일 오후 대출 이런 식이다. 책을 빌려 가라는 소리인지 아니면 빌리지 말라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핑계로 도서관이 이용객 방문을 일부러 막지 않나라는 음모론이 생각날 정도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그리고 흔한 신변 잡기가 없어도 내가 심심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책읽기의 즐거움(?)에 있었다. 어릴적 버릇 여든간다고 딱 그 모양세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독서 취미가 달갑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이게 취미인가라고 진진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래서 너무 정적인 취미가 아닌가 싶어서 활동적인 취미를 애써 찾아 다녔다. 동호회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발품을 팔며 싸돌아 다녔는데 그것도 한 때였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애써 사람들 맞추느니 혼자 있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니 말이다. 그리고 독서가 자연스럽게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취미로 돌아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한 권의 책만을 읽는 스타일이 아니다. 적게는 2권에서 많게는 3~4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다. 이 책 저 책 돌려가며 읽는다. 진지한 책, 가벼운 책, 시시껄렁한 책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과거에는 이런 독서 습관이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게 아닌가 싶어 고쳐보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 몇 시간 흐르면 지루해지니 말이다. 그 뒤부터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책을 돌려가며 읽는 습관을 고수했다. 행간에서 자유로운 유희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각자의 독서 방식이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보면 나란 인간은 이 자유를 끔찍이도 아끼는 사람이다. 누가 뭐래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어서다. 그런 태도는 나이가 갈수록 심해진 거 같다. 원래 인간이란 게 나이들면 주변 시선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 이유가 경험에 근거한 건지 아니면 뻔뻔한 건지 모르지만. 그런데 이 ‘자유’가 말은 그럴듯하게 들려도 실천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왜냐하면 자유에는 항상 대가가 따라오게 마련이어서 그렇다.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다지만 다 정도의 문제이다. 누가 잘 나간다는 소리가 들리면 내심 신경쓰이는 게 현실이다. 그러면서 묘한 경쟁심에 나를 다그친다.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공부를 위해서 그리고 일을 위해서, 그리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읽는다. 그리고 나란 인간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새삼 감사하다.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콕 박혀 있어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독서가 선사하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참으로 책 읽기 좋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