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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Oct 13. 2018

내가 당신을 오해하듯이

어쨌든 가을은 독특하다. ‘가을이구나’ 느끼면 생각나는 한 마디가 있다. 짧게 지나는 계절이 어떻게 매력을 떨치는지 돌아볼 겨를 없던 스물여섯 가을, 함께 퇴근하던 선배가 신호등 앞에 서서 말했다.


둥둥아, 눈 감고 잠깐 공기 냄새를 맡아봐.


어리둥절한 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해 찬바람 내려오는 시간에 신호등 앞에 서서 눈을 감았다.


이 계절 이 시간 즈음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의 냄새야. 일 년 중에 얼마 안 되니까 잘 기억해.


좋아하는 계절을 위해 시간을 멈춘 것은 처음이었다. 계절의 매력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적당한 때에 나눌  아는 마음이 부러웠다. 이후로 그 말은 가을의 한가운데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다. 그 문장에는 가을이 배어있다.



가을 공기는 또 다른 역할을 한다. 알람 없는 휴일에는 공기의 온도가 알람이다. 밤새 방을 가득 채운 싸늘한 공기에 잠을 깬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냉장고에서 꺼낸 것은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든 마카롱이다. 힘 조절 실패로 필링이 과한 못난이 마카롱이 되었다. 하지만 코멕 매카시의 로드나오는 “그래도 사과였다.”처럼, 그래도 마카롱이었다. 냉장고에서 하루 재웠더니 꼬끄가 쫀득해서 맛이 더 좋아졌다. 마카롱을 먹으면서 아무 생각 안 하고 싶었는데 지난 며칠 동안 들었던 말들이 스르륵 머릿속을 지나간다. 몇 마디는 툭툭. 가슴에 떨어진다.


그림자에는 편견이 없거든요.


업체 미팅  만난 과장님의 말이 앞으로 가지 않고 멈춘다. 항상 뒤따르는 검은 형체가 그토록 믿음직한 대상인 줄 생각도 못해봤다. 새 직장에 다니면서 나는 최대한 천천히 편견을 입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편견에 쉽게 흔들리는지, 그게 어떻게 독이 될지 알고 있는 바, 가급적 예민한 정보를 피했다. 너무 깊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진실은 구분할 수 없는 형태로 삽시간에 나를 장악했다.



모든 말의 진의와 선악을 판단하기에 나는 너무 게으르다. 판단력이 충분히 여물지 못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나누고 선악을 판단한다. 마음이 편하고 쉽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하다. 나 편하자고 누군가를 곡해하거나 더 나쁜 판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나 역시 오해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마카롱 하나를 먹는 시간 동안 생각이 참 멀리도 간다. 하나 더 꺼내 먹는다.


 점점 무서워진다. 지금 입술에 오른 말을 마침내 발화해도 괜찮을지 망설인다. 적절한 문장인지, 오해를 불러올 표현이 없는지 바쁘게 판단한다. 입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독의 운명을 타고나는 말들이 불안해서 느리게 꺼내 놓는다. 나의 언어지도를 읽는 법을 모르는 타인들뿐인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보로만 소통하는 사이에서도 해석의 오류는 나를 겁쟁이로 만든다.



2017년 기준, 지구 상에는 7097개의 언어가 있다. 그중 920개의 언어는 소멸 중이다. 이미 220개의 언어가 사라졌고 매년 10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말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 사라지는 언어. 실체 없이 존재했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아 서글프다. 홍콩 토착인들이 사용하던 파투아(Patua)어는 말하는 이가 50여 명의 노인들뿐이다. 그들이 죽으면 또 하나의 언어가 죽는다.


의미를 기억하고 읽어주지 않으면 존재는 사라진다. 존재를 지켜줄 만큼 서로의 언어를 잘 읽어주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함의와 행간을 읽고 내 뒤에 따르는 저기 낮은 곳의 편견 없는 그림자를 읽어줄 수 있는 친구들. 지금은 내 방식대로 말을 해도 최대한 오해 없이 해석해줄 사람들과 멀어진 탓에 말하기가 겁난다.  



해석이 두려 참는 말이 많다 보니 뜻밖에도 말하지 않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마음속 깊은 항아리에 잘 다듬은 이야기를 넣어두고 가끔 들여다보며 혼자 웃는 만족감이랄까. 항아리 속에 담은 것이 모두 좋은 말 일리 없다. 그래서 기쁨이 더 크다. ‘내가 이 말을 기어코 밖으로 꺼내 보이지 않고 잘도 참아내었구나. 이 안에 잘 보관했구나.’ 하는 뿌듯함은 좋은 말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아둔 것이 아쉽기만 한 이야기들도 함께 있다. 항아리에 담아둔 “말”. 아니 말의 형태를 뗘본 적이 없는 이야기들. 언어로 세상의 공기와 접촉해본 적 없는 것들. 발화하면 휘발되는 아쉬움을 막아내기 위해 항아리에 담아둔다. 얼마 전 본 '스타이즈본(A star is born)'에서 브래들리 쿠퍼가 말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내 식대로 들려줬는데 통한다는 건 특별한 재능이에요.


그건 아주 축복받은 재능일 것이다. 말이 두렵지만 오늘도 말의 의미에 기대어 다. 어느새 마카롱을 다섯 개나 먹어버린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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