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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an 15. 2019

큰 사람

나는 성장판을 최대치로 밀어 올리는 유소년기를 보냈다. 과도한 영양 상태 덕분이었을 것이다. 유년기에는 물을 즐겨 마셨다. 냉장고에서 훼미리 주스 병을 한 번 꺼내면 보리차 2/3병 정도는 단 번에 마셨다. 엄마가 콩나물처럼 물만 부어놓으면 자란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교복 치마와 셔츠를 3번이나 다시 샀다.


한 번은 아빠가 이를 불러 키를 물었다고 한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너는 168~9cm까지만 커라. 더 크면 좀 그래. 너희 언니는 아직도 큰다더라.


나는 고3 때까지 성장판을 빵빵 밀어내며  수 있는 마지막 지점까지 꾸준히 자라는 중이었다. 고3 신체검사 때 지난해보다 0.3cm가 자란 것을 확인했는데 그것이 정말 키인 지, 발바닥이나 두피에 살이 찐 것인지 모호하다.

복숭아뼈가 아픈 성장통을 겪으며 나는 꾸준히 훌쩍훌쩍 자랐다. 초등학교 내내 맨 뒷줄에 서서 홀짝이 안 맞을 때면 짝꿍 없는 쓸쓸한 체육시간을 보고 겨울엔 갈탄을 날랐다. 키가 크기 때문에 갈탄 배달에 차출됐다고 해서 더 따뜻한 자리에 앉혀주는 것도 아닌데.



유치원 다닐 때였다. 골목 화단 앞에 앉 놀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길을 물으려고 다가왔다


국민학생이니? 3학년?


나는 그 말에 왜 상처를 받았던가. ‘저는 고작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뿐이라구요!’라 말을 하면 되는 것인데.


서로 비슷한 줄 알고 고만고만하게 자라던 친구들은 어느새 성장을 멈추고 이별의 손짓을 했다. 나만 계속 저만치 달려 나가며 성장판을 밀어냈다. 아주 특별한 한 해가 있었다. 5학년 때 우리 반에는 운이 좋게도 키가 큰 여자애들이 몰려었다. 내 뒤로 무려 5명이 더 있었다. 그 아이들은 중학생 언니들처럼 다른 애들을 조무래기 취급하는 사춘기 소녀들이었다. 그 애들 틈에 끼어 있으면 내가 작아 보인다며 엄마가 좋아했다.



둥둥아, 그 친구들 집에 자주 데리고 와.


친구 좀 그만 데려오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던 엄마였는데 그저 나보다 크다는 것이 엄마에게 그렇게나 호감을 주다니. 내가 작아 보이는 게 그렇게도 좋았던가. 생각해보면 나는 주로 키가 작은 아이들과 어울려 다녔다. 시력이 나빠 앞자리에 앉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는데 엄마는 내가 쑥 커 보이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대도. 대체 내 키무슨 잘못이기에 부모님들은 못마땅해한 것일까. 내 키는 분명 유전인데. 하지만  성장기 동안 나 역시 혼자 훌쩍 큰 것은 싫었다. 좀 작아 보일 수 있을까 해서 어깨를 동그랗게 말고 다닌 덕에 지금의 굽은 어깨를 완성했다. 그때 당당했어야 했다. 굽은 어깨를 펴는 일은 포기해야 할 거 같다. 클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자란 나를 충분히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일이었다. 성장한다는 것은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니까.



나는 수년 째 성장을 멈춘 것 같다. 키가 자라듯이 안으로도 성장판을 쭉 밀어내면서 깊이 넓게 자라나 좋을 텐데. 성장판이 어디까지 열려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이만큼 더 커 있어야 할 듯한데 오랫동안 멈춰 있는 것만 같다. 복숭아뼈가 시리도록 성장한 것처럼 거침없이 안이 깊어지는 성장기를 보내야 했는데. 무엇에 막혀 자라지 못하는 지 모르겠다. 어쩌면 더 자랐어야 한다는 생각이 착각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멈춰있다는 것이다. 자꾸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간다. 성장해 간다. 안으로 밖으로. 내 정수리를 저 위에서 내려다볼 만큼 멀어지는 사람들.

영양상태가 문제일까. 그냥 이만큼이 다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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