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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Apr 29. 2019

마법이 필요해

정말 ‘오 마이 갓’이다. 10년 넘게 일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내 돈으로 집 한 칸 살 수가 없지? 조엔 롤링은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마법이라고 했다. 그녀가 경험한 ‘마법’을 생각해보면 더욱 믿을 수밖에 없다. 결국 집을 못 산건 내 잘못이 아니다. “마법”이 없었던 것도 내 잘못이 아니다.


약간의 잘못이라면 너무 많이 먹은 것뿐인데, 그 정도 보상 없는 노동은 고문에 가깝다. 정당한 소비였다. 약간의 잘못을 더 찾아보면 거지 같은 재테크. 같은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비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지,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던 비밀을 실천하는 사람처럼 놀라운 재산 아니 자산 관리를 했다.


모아놓은 돈이 얼마 없고 당연히 융통할만한 현금도 얼마 없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스트레스를 받고 초콜릿 케이크를 먹을 수밖에 없다. 죽기 전에 온전한 노동 수익으로 나의 집을 가지게 된다면 인생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남겨줘야 한다. 내가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면 사실이다. 그렇지만 화가 났다고 뭐 어쩌겠다는 건 없다. 할 수 있는 것도 다시 초콜릿 케이크를 먹을 뿐.



초등학교 때 미술 수업 주제로 ‘미래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자주 내주시던 선생님이 있었다. 그때 내가 그린 집들의 공통점은 “각”이란 게 없다는 것. 계단도 없었다. 평평한 바닥도 없었다. 그건 좀 문제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잘 때는 엄마 뱃속에서 웅크린 것처럼 편안하게 잘 수 있는 모양의 구덩이가 있었다. 전체적인 외관은 숫자나 다람쥐, 해바라기 모양 등이었다. 색깔은 노랑, 빨강, 연두색이었다. 아무리 돈이 생겨도 대한민국에서 절대 찾을 수 없는 집이다. 대한민국 주택의 기본은 회색이니까.


송도를 걷다 보면 어릴 때 그리던 집들과는 대척점에 있는 각진 회색 아파트만 끝없이 늘어나고 있는 풍경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이렇게 높게 빽빽하게 아직도 집을 짓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미 주택 수는 인구수를 앞질렀는데 저 공간에 다 들어갈 만큼의 사람은 어디에서 데려올까.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은 저들이 언제 집값을 내릴 것인가 그뿐이다.


이미 신축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늘고 있는데도 집값은 안 내려온다. 8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졌다고 배웠지만 2000년 대 교과서에는 아파트와 쇼핑몰이 국토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개정되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교과서에는 100% 사실만 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언젠가 정말 내 힘으로 집을 사게 되면 그 집엔 엄마 짐의 70%는 버리고 들어와야 할 거야. 짐 안 버리면 엄마는 못 들어온다고 할 거야.

- 그러지 마. 엄마가 유세 부린다고 서운해한다구.

- 그렇지 않으면 엄마의 천벌 동굴도 해결할 수 없을걸.


인삼 신이 사는 냉장고 1층, 천벌 동굴이 된 엄마의 행거. 이사 온 후 한 번도 들어간 적 없는 다용도실, 나와 동생이의 신발은 한 켤레도 지분 참여하지 못한 신발장. 집이 작은 것보다 짐이 많은 게 문제라는 걸 모르는 건 엄마뿐이다. 어제도 자세교정 의자를 사 왔다고 상자를 들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엄마의 변이 들렸다.


- 사람들이 엄청 사가더라구. 그래서 엄마도 사 왔어.


예상한 그대로군. 엄마는 너무 쉬운 사람이다. 아무튼 엄마의 칠순 선물로 “my” own house를 짠하고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엄마의 선물인지 나의 선물인지는 그때 대충 넘어가지 뭐.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my “own” house를 다시 그려보자. 동생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채광, 나에게 가장 중요한 통풍,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허례허식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집. 오븐을 들여놓기 위해 엄마와 투쟁할 필요 없고 벽에는 멋진 그림을 걸어둘 수 있는 집. 만약의 사태에 긴급 탈출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집. 나무가 무성한 공원이 가까운 집. 엄마가 냉장고에서 쿵쿵 물건을 떨어뜨려도 미안해할 필요 없는 둔하거나 너그러운 이웃이 사는 집.


나 정말 어른이 됐나 보다. 어릴 때 수없이 그려본 집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는 현실적인 집만 상상하고 있다. 바로잡아야겠다. 현실적이지 않다. 전혀. 그리고 내 노동 수익으로 집을 가져보지 않았다면 나는 어른도 아닌 것 같다.



다시 좀 더 현실적인 상상을 해봐야겠다. 언젠가 내 힘으로 가지게 될 집에는 친구들이 놀러 와서 편하게 묵을 아늑한 방을 마련하고, 엄마가 와인 한잔에 치즈를 늘어놓고 허세 부릴 화려한 테이블도 마련해주고, 같이 다닥다닥 붙어 누워서 이모가 선물해준 티브이 앞에 누울 수 있게 3인용보다 조금 작은 매트도 깔아놓을 예정이다. 어느 집에서든 다닥다닥 붙어 누워서 싸우는 재미는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좋은 딸이 된 것 같은 착각도 해 본다. 하나님, 제 상상을 알고 계신다면 이제 마법을 선물해주실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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