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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n 30. 2019

안부를  묻는 이유

최근 안부전화를 부쩍 많이 받는다.

 

잘 지내나? 행복하니? 점검하려고 전화했어. 바쁘니? 재밌는 일 없니? 지금 뭐하니? 다양한 질문으로 안부를 묻는다. 안부를 묻는 건 평범하고 애틋하다. 자주 만나든, 가끔 보든, 아주 오래 못 만난 사이든 다른 방식으로 안부를 묻는다.


안부를 묻는 어떤 사람들은 내가 노력한 것보다 더 가까이에 와 있다. 예상보다 더 친밀해진 사이를 확인하면 나도 더 잘해야지 다짐한다.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려면 먼저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밥을 먹는 건 사적인 영역의 일이라 그 안에 들어온 사람과는 사회적인 격식을 한 꺼풀 벗겨내고 대화하게 된다. 예전 직장동료는 모든 현상을 도식화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한 번은 이렇게 말다.


직장 동료들이 친하다는 걸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 같이 점심을 먹다가 퇴근 후에 저녁을 먹다가 주말에도 만나서 놀다가 휴가를 같이 가는 순서로 가지.



뻔한 얘길 굳이 정리하싶었는데 듣는 순간 나와 몇몇 사람들을 좌표 위에 얹어보았다. 점심을 같이 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막내 시절 나를 괴롭히던 선배는 잘 먹는 사람이었다. 주로 점심시간 즈음 출근해서 밥 짝꿍을 찾았는데 만만한 게 막내지. 그날은 나도 일찍 허기가 져서 점심엔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사실은 그랬다.


아, 배고파. 밥 일찍 먹고 와서 시작해야겠다. 둥둥아, 밥 먹었니?


네? 네, 먹었어요. 저는 배불러요.


선배를 보내 놓고 편집실에서 몰래 과자를 먹다가 다른 선배한테 들켰는데 깔깔깔 웃으면서 비밀을 지켜주었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중요한 의식이다. 아무리 좋은 걸 사준대도 싫은 사람이랑은 밥을 먹지 않는다. 체하거든. 비싼 거 먹고 체하면 더 화가 난다. 어떤 사람들은 밥을 먹는 사적인 영역에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



결국 자주 밥을 먹어야 가까워진다. 반대로 가장 많은 밥을 먹은 사람과 가장 가까워진다고 할 수도 있다. 3년 간 하루 두 끼씩 같이 먹은 사람들이나 매일 점심을 같이 먹고 산책을 한 사람들은 퇴사와 이직을 거친 후에도 서로 안부를 묻고 산다.


최근에는 좌표 상 퇴근 후 만나는 사이가 된 사람들과 오랜만에 광화문에서 저녁을 먹었다. 여섯 명이 둘러앉아 3시간 넘게 안부를 물었다. 안부의 대부분은 이상한 상사와 어떻게 지는 가였다. 짜증과 공분, 박장대소 때문에 배가 꺼지는 바람에 메뉴를 자꾸 추가했다.


이제 호락호락하지 않은 나이의 친구들은 별난 상사를 다루는 노련한 기술을 장착하고 있어서 각 에피소드마다 예상치 못한 전개와 한 방이 숨어있었다. 이직도 축하하고 퇴사도 응원하고 휴식은 더 지지하며 먹고 웃다가, 말을 뺏고 물고 잇다가 자리를 털었다. 나와 가장 많은 점심을 먹은 트위티님과는 다음에 둘이 따로 만나서 안부를 자세히 나누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10년 지기와 근황을 묻고 아기 키우느라 폭삭 늙었다고 한숨 쉬는 친구랑도 통화를 했다. 속상한 일 화나는 일보다 좋은 일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해주면 더 좋다. 나도 덩달아 사는 게 즐거워지는 것 같다. 언젠가 동료가 그랬다.


둥둥님, 행복해요?
네, 저는 요즘 무척 좋아요.
그래 보여서 저도 희망이 생겼어요. 저도 둥둥님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겨서 든든해요.


한때 친구 A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나는 좋은 일이 없으니까 너라도 좋은 일 있으면 좋겠어. 뭐 없어?



나도 친구들의 소식에서 좋은 일을 접할 땐 희망을 만난다. 나의 일상에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과 안도감. 안부를 묻는 건 희망을 탐색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오늘의 안부를 확인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희망을 탐색한다.


엄마, 밥 먹었어? 뭐 먹었어? 별 일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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