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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Oct 06. 2019

설희야, 어떻게 살고 있니?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만난 지 10년도 훌쩍 지난 사람들이다. 요즘 설희가 무척 생각이 나는데 마음의 빚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내 성격에 ‘개’ 같은 데가 좀 있어서, 아니 ‘개’와 같은 데가 있어서 로열티가 형성되면 오래오래 은혜를 갚고 싶어 지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니 강산이 두 번 변했는데 아직도 생각이 나고 보고 싶고 그런 거지.


평소에 쁘띠 방청소를 즐기는 편이지만 요즘은 몇 년 만에 온다는 그랜드 방청소 주간이다. 이 때는 방안의 먼지 한 톨도 손 끝을 스치지 아니하고는 통과할 수 없다. 버릴 것은 신기하게 계속 나오고 그러다가 또 오잉? 하는 별스러운 물건이나 기억 속 물건도 나온다. 그러다 보면 청소인지 추억 재방송 시간인지 모를 혼돈의 카오스 속으로 빠진다.


그래서 또 설희 생각이 났다. 벌써 여러 번 읽었던 쪽지, 엽서, 귀여운 사진과 몇 가지 소소한 물건을 만지작 거리다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틈틈이 생각했다. 이번엔 본격적으로 방법을 고민했다. 지하철에서도 인스타그램에서 특이했던 설희의 다른 친구들 이름을 검색해보고 포털 사이트에도 여러 단서가 될만한 키워드를 넣어봤지만 성과가 없었다. 알고 있는 정보가 빈약했다.



한 사람이 더 있다. B 선배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결혼 전 버스정류장에서였다. 친구와 헤어지고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만나서 결혼 축하 인사를 전했다. 재수생 시절에도 종종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곤 했다. 따로 자주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코드가 잘 맞았다. 가끔 시무룩하거나 고민이 생기면 툭툭 한 마디씩 던져주고 과자를 나눠먹곤 했는데 코드가 기막히게 맞는 경우엔 툭툭 한마디도 다 로열티 형성의 근거가 된다.


결혼하기 전에도 1-2년쯤 연락이 없다가 그날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것이 신기했다. 두 정거장을 같이 타고 오면서 간추린 근황을 나누고 헤어졌다. 선배가 먼저 내리고 전화가 걸려와서 짧게 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나의 로열티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서 요즘 소식이 궁금하고 보고 싶고 그렇다. 애 키우느라 바쁘게 살고 있겠지?


그래, B 선배가 보낸 메일이 몇 통 남아있지 않을까? 하고 메일함을 뒤졌지만 언제 왜 지웠는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설희와 주고받은 메일을 몇 통 발견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스트레스가 많다는 내용, 임용고시 후 연수원에서 물건을 도둑맞아 속상하다는 이야기, 선생님이 되고는 수업 사이에 쉬는 동안 잠시 보낸 메일 등이 있었다.



설희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설희가 결혼하고 한 1년쯤 되었을 때였다. 대학교를 휴학 없이 졸업하고 바로 선생님이 되어 결혼까지, 설희는 바쁘게 살았다. 나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같이 늘어져 있었는데. 속도의 차이였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고 소식이 끊어진 이유.   


그간에도 가끔 설희가 생각났는데 요즘 부쩍 많이 보고 싶다. 저 속에서 뭔가 꿈틀 하는데 아마 활짝 펴지 못한 내 로열티가 꿈틀거리는 건가 싶다. 두 사람 모두에겐 결정적 한 장면이 있다. 특별하지 않은 스쳐가는 장면이었지만 내게만 각인된 결정적 순간. 내가 아직도 두 사람의 소식이 궁금해지게 만든 결정적 장면. 받기만 해서 미안해지고 기어이 꼭 다시 만나 갚아 주고 싶어지는 기억.


20대 초반에 C 선배가 말했다.  


둥둥이 너는 너를 좋아하는 친구를 좋아하지.  
자기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그런데 암튼 넌 그런 편이야.


생각해보니 새삼 그리운 건 다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이다. 설희도 B선배도 잘해준 것도 없는데 좋아해 줬다. 그래서 더 좋았나 보다. C선배가 맞았네. 선배한테 네가 맞았어요 하고 메시지 보내줘야지.



암튼 아직 설희가 그 메일 계정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멀리 이사 가지 않고 그 도시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 우리 순천 쌍둥이만큼 큰 아이를 키우는 장군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처럼 귀엽고 듬직하고 시니컬한 유머를 즐기는 편일지도 모른다. 달라졌다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겉모습이 달라졌어도 마음은 그대로일 것 같다. 메일을 써보자.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긴장된다. 두근두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설희야, 어떻게 살고 있니? 나 아직도 기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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