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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n 01. 2017

모두에게 공개된 비밀

한때는 종종 공항엘 갔다. 공항 가는 시내버스 안에서 흐릿한 바다와 하늘 사이를 멍하니 응시하면서 소란한 도시와 멀어지는 안도감을 즐겼다. 입국장에 앉아있으면 사람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떤 사람들이 해외에 다녀오시나, 우리나라엔 어떤 손님들이 오시나(그땐 중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기 전이었다.) 관찰하다 보니 운동복 차림의 흑인들이  많았다. 스포츠 팀일 수도 있다. 모두 운동선수가 아닐 수도 있고. 그저 그런 패션이 유행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간절히 기다렸던 만남의 순간, 어색한 사업 관계자들의 첫 만남, 대면 대면한 가족들의 인사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일이 즐거웠다. 공항 특유의 불안정함에 둘러싸인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았다. 가끔은 한두 시간씩 게이트 앞에 서 있는 나를 힐끔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땐 괜히 비행기가 연착되어 답답한 사람처럼 전광판 한 번, 시계 한 번 보다가 그 사람의 귀에 살짝 들릴만한 소리로 한숨을 쉬면서 옆 게이트로 이동하면 된다.


사람들 표정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내 얼굴도 바쁘다. 관찰 대상의 표정이 어느새 내 얼굴에 옮겨 온다. 공항의 사람들은 표정이 밝다. 설렘, 반가움, 기쁨, 기대. 뭐 이런 것들 때문에 살짝 상기된 볼. 많은 사람들이 웃는다. 그 공기가 좋아서 자꾸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볼 일이 많지 않다. 가끔 길게 누워 TV를 보는 엄마의 얼굴을 본다. 예전엔 동안 자부심이 대단했던 엄마인데 어느새 나이 따라 늙고 있다. 이 말을 엄마에게 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다.

내가 그래도 관리도 안 하고 이 정도면 동안이지. 내 친구들은 주사도 얼마나 맞는데. 엄마 나이로 보는 사람 별로 없어!
(엄마는 원래 빈말도 진심으로 듣는 은사가 있잖아요. 그리구 오랜만에 만나서 ‘어머, 너 왜 이렇게 늙었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엄마뿐이라고요.) 어? 어...


엄마 얼굴을 한참 보다가 손을 들어 무방비 상태의 미간으로 가져간다. 쭉-! 미간 사이 주름을 손 다림질한다.


인상 좀 펴.
잘 안 보여서 그렇지
잘 때도 왜 인상 쓰고 자.
내가 그래?


또 나란히 누워 TV를 보다가 동생 얼굴을 빤히 본다. 어릴 때도 자주 그랬다. 동생이란 것이 참 신기했다. 동생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얘가 정말 태어난 것이 맞나. 우리 집에 사는 내 동생이란 것이 신기해서 쳐다봤다. 키도 작고 성격도 나랑은 영 딴판인 것이 신기했다. 새로운 식구가 합류하는 순간을 경험하고 함께 자란다는 것. 모든 과정이 신기했다. 그랬는데 어느새 30년 가까이 지지고 볶고 살고 있으니 더욱 신기해서 동생 얼굴을 빤히 본다.


(어릴 땐 피부도 귀여웠는데. 머릿결도 보드랍고 좋았지. 내가 가위질도 자주 했는데.)


손을 들어 동생의 미간으로 가져간다. 쓱-! 눈썹을 쓰다듬는다.


아유! 빼빼~액 하네. 하하하하


머리 많은 것이 평생의 불만인 둘째는 눈썹마저 짙고 두껍다. 한 올 한 올 존재감이 대단한 호랑이 눈썹.


힝!


지방 사는 친구네 가면 첫째와 자는 일이 많은데, 잠자는 꼬맹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마냥 빠져든다. 맑은 표정으로 머릿속엔 어른들의 먼지 낀 잡념 같은 것이 없다는 듯 잘도 잔다. 자는데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는지 얼굴이 따뜻하다. 볼이 빨간 것도 귀엽다. 이마에 송송 땀이 맺혔다. 물끄러미 쳐다보다 나도 잠이 든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두 녀석이 나를 빤히 보고 있다. 언제부터 그렇게 보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말도 없이 관찰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한 번은 곤히 자고 있는 배 위에 갑자기 푹 내려앉아 손을 들어 내 눈가로 돌진! 야무진 검지와 엄지가 내 닫힌 눈을 열어준다. 강제 기상. 갑자기 떠진 눈으로 꼬맹이의 얼굴이 가득 찬다.


이모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히 자고 있었다. 이놈아!) 으응, 이모는 잘 잤어.


나의 얼굴도 한 번은 지긋이 바라본다. 나쁜 사연이 도드라 보이진 않는지 점검 차원에서 욕실 거울을 빤히 쳐다본다.


(어머, 이 주름 이거 뭐야. 그 새 또 늙었네! 나이만 한 사연도 없지. 뭐.)......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잠시 보는 얼굴이 낯설 때가 있다. 가까이에서 보는 얼굴은 멀리서 보던 이미지와 다른 느낌. 원래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던가 하고 새삼 새로운 얼굴을 보는 것 같다.


가끔 사진을 꺼내본다. 평소에 빤히 쳐다보지 못했던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 다. 오랫동안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찾는다. 볼수록 애정이 깊어진다.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참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가끔 엄마가 별것 아닌 일에 고개를 재끼고 웃는 모습에서 뿌연 국민학교 졸업 앨범 속 어린 엄마를 발견한다. 입을 꾹 다물고 휘적휘적 걷는 동생의 표정은 아직 놀이터에서 심통 부리며 뛰어다니던 꼬맹이 때와 똑같다.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여장부로 사는 친구의 얼굴에는 둘이 같이 학교 앞에서 떡꼬치와 호떡을 사 먹던 이야기가 숨어있다. 이야기가 숨어있어 더욱 아름다운 얼굴들. 어떤 이야기들은 세세하게 떠오르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개별로 존재하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오묘한 표정으로 떠오른다. 사랑스럽다.


오랜 관찰에서 발견한 한 가지는 모두의 얼굴엔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50대 중반이 되어도, 70이 되어도, 마흔이 되어도 우리는 얼굴에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산다. 그것을 발견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깊은 이야기를 읽어내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오늘 당신의 얼굴을 본다. 눈을 보고 눈빛을 읽으려고 애를 쓴다. 입 꼬리에 숨은 사연을 상상한다. 더 알고 싶어서. 당신들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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