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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May 14. 2019

필요한 건 이어폰뿐.

미국의 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분석 결과, 사람들은 33세 이후 새로운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익숙해지거나 성숙해지거나 하는 모양이다. 우리 엄마는 통계를 비트는 쪽이다. 그녀는 우리 집 힙합 권위자로 통한다. 쇼미 더 머니 시즌1부터 놓치지 않고 챙겨보았고 언프리티 랩스타와 고등 래퍼까지 모두 접수했다. 최근에도 D-Day를 세면서 프로그램을 챙겨보았다. 엄마 안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그러나 고등 래퍼 후 엄마는 미스 트롯을 본다. 스펙트럼이 넓은 취향인가 보다.


취향과 별개로 엄마는 음악성이 없다. 꼭 이렇게 객관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아! 해방감! 후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오랫동안 교회 성가대로 활동했다. 노래를 못하는 성가대원을 훈련시키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 아니라 노래방 친구들의 몫이다. 박 집사님의 형편없는 노래실력은 노래방에서 어설픈 기교를 입고 독특한 노련미로 완성되었다. 속된 기교로 부르는 성가를 성도들이 은혜로 듣기를 바란다. 



음치 유전자는 나에게도 전해진 것 같다. 노래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요즘 주일 예배 때 성도들 이 한 사람씩 나와 특송을 하는데 다들 어쩜 그리 실력이 좋은지, 그런 사람들만 선별했다는 걸 알지만 부럽다. 오늘 특송 하신 장로님은 빼고.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의 유물은 TV 아래 서랍장에 있다. 서랍장의 대부분  9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테이프 들이고 일부는 90년대 음악 테이프다. 버섯머리가 생일선물로 사준 머라이어 캐리 2집( Without you만 문자 그대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NOW1집(첫 곡 가수는 Wet Wet Wet, ‘겁나 축축한 ‘이라고 번역해야 할까?), 이젠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더 유명할 폴라 압둘 3집, 리어카에서 파는 불법 복제 테이프들. 지금은 재생하기 어려울 만큼 낡아버렸지만 버릴 수 없다.


요즘은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 m-net을 보면 거의 모르는 노래를 마주하게 된다. 동생이에게 아이돌 업데이트 소식을 듣고 모두가 한곡인 것 같은 노래들을 잠시 감상해본다. 음원사이트에서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수십 곡씩 차트권에 등장했다 사라진다. ‘이렇게 뒤처지나!’ 갑작스러운 위기의식 때문에 멜론 차트를 순서대로 듣기 시작했다. 다행히 익숙한 장범준, 이소라의 노래도 있다. 요즘은 BTS 노래를 듣고 있다. (어쩐지 학습형 입덕을 천천히 시작하게 된 기분이다.) 아직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끼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머나먼 출퇴근 길을 다니는 직장인으로 살면 오가는 길에 내내 음악을 듣게 된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자물쇠 효과 때문인지 듣던 음악을 오늘도 듣고 내일도 듣는다. 지루해지면 두 달 전에 듣던 음악을 다시 듣고, 그런 사이클이 반복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어폰. 이어폰이다. 그래야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왕복 3시간이 넘는 길이 지루하지 않고 각종 소음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어폰을 뺄 수 있을까? 음악이 가장 중요한 곳은 의외로 사무실이다. 두 칸 건너에 앉아있는 호랑이님은 비브라늄으로 만든 키보드를 쓰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의 때려 부수는 타자를 견뎌낼 수가 없다. 아침엔 우다다다 두드리는 타자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오후에는 호랑이와 치타의 투명한 대화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이어폰을 낀다. 목청 좋은 사람들은 공간지각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니 회의실을 바로 등 뒤에 두고도 손바닥만 한 사무실을 회의실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이어폰을 찾는 동료가 있었다. 하루 종일 먹는 동료가 당신 옆에 앉아있다면? 오른쪽엔 매일 사과를 깎아먹는 상사 , 왼쪽에는 피자를 데워먹고 바삭바삭한 과자를 씹어 먹으며 하루에 50번씩 서랍을 열어 먹을 것을 꺼내는 동료가 있다면? 당신은 헤비메탈을 사랑하게 된다.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직원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사고 심리적 안정을 조금 찾았다. 어떤 직장인들에게 이어폰은 생필품이다. 귓속에 꼭 들어오는 이어폰. 언제든 불러올 수 있는 몇 종류의 플레이리스트도 필수품이다. 잔잔한 연주곡들, 비트 중심의 노래들, 아주 많은 악기가 서로 자기주장하는 노래들. 플레이리스트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고리타분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선택이다. 취향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며 플레이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아직 엄마의 힙합사랑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쇼미 더 머니와 고등 래퍼를 함께 볼 순 없다. 아직 거기 까진 노력할 수 없겠다. 너무 멀다. 내 취향에선. 거기까지는 아직 자물쇠를 풀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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