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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an 03. 2016

"엄마 돈다발 주웠다!"

“엄마 돈다발 주웠다.”


오 마이 갓! 어머니 우리가 큰  죄짓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느 정도) 얌전히 산 덕분에 새해부터 이런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군요! 돈이 아니라  돈다발이라고 했나요? 만 원짜리? 오만 원 짜리 라면 더없이 좋을 텐데 현실적으로 그건 너무 큰 행운이라 부담스러우니 만 원짜리라고 해요.


- 치-. 얼만데?
- 얼마가 아니라  돈뭉치야.


맙소사! 잠깐. 얼마인 지 말하지 마요. 우선 뭘 하지? 엄마 백화점 지난해 매출이 똥 같아서 엄청난 세일을 한다고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죠? 이런 일을 예감했는지 마침 내가 오후에 백화점에서 사전조사를 했는데 정말 왕창 물건을 풀어놓긴 했더라고요. 뭐 물론 싸게 파는 건 그만해 보이는 것들뿐이고 손이 가는 건 여전히  몇십 만원씩 하는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있지만 말이에요. 세상에 내 명함보다도 작은 가격표가 그렇게 비싼 이유가 뭘까요. 암튼 어머니, 거기에서 본 패딩을 하나 먼저 사요. 내가 얼마나 추위에 약한 딸인 지 엄마가 잘 알죠? 그리고 엄마가 마음만 열어준다면 코트도 하나 사면 좋을 텐데. 요즘 10만 원 이면 얄팍한 간절기 코트 하나 사는 건 쉽죠. 아, 심장이 점점 두근거려요. 그래서 얼마를 주웠다고요?


- 봉투 안에 두둑하게 들어있는 걸 주웠어. 그래서 어머! 이게 웬 일이야 하고 가지려고 했다가. 안내 데스크에  가져다줬어.


네? 엄마. 저는 아직 패딩이랑 코트를 못 샀는데요.


- 잘했어!
- 경찰서에 갈까 하다가 그냥 쇼핑몰 안내데스크에  가져다줬어. 주인이 찾아갔데. 고맙단 말도 못 들었네. 근데 경찰서가 가져다주면 얼마 준다던데?
- 응. 10%
- 암튼 주인이 찾아갔데.
- 잘했어!
- 엄마 새해부터 좋은 일 했다고. 잘했지?
- 응. 잘했어. 잘했어.


엄마는 어릴 때부터 자주 돈을 잃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명절에 큰 갈 때면 현금을 두둑이 찾아 지갑에 넣었는데 배를 타면 화장실에 지갑을 그대로 두고 오는 일이 빈번했다. 차에 지갑을 두고 가라고 하면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해?’라고 말했. 확률적으로 문 잠긴 차 속 지갑을 도둑이 훔쳐갈 확률보 엄마가 소변이 급해 화장실을 찾은 시민 눈에 최대한 보이는 곳에 지갑을 놓아 둘 확률이 100만 배 높은 것 같은데. 엄마는 늘 이성적 근거가 분명한 조언을 무시하고 화장실에 지갑을 들고 갔다. 그리고 여지없이 들려오는 소리.


- 어머 어머! 어떻게 해. 지갑이 없어졌어!

어머니, 그런 건 없어졌다고 하는 게 아닐 거예요. 내가 잃어버리도록  했다.라고 해야 맞지 않나요? 화장실에 가보나 마나다. 그곳은 귀성객이 바글바글한 여객선의 화장실이. 엄마는 명절 동안 쓸 돈을 말끔하게 해치웠다. 처음  한두 번은 엄마를 위로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이후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가 “화장실 갔다 올게.”라고 말하면 신호를 받은 사람처럼 바다 쪽으로 가서 갈매기를 구경했다. 적중률 100%. “어머어머 어떡해!”차라리 갈매기가 집어갔더라면 새우깡으로 유인해서 되찾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경험으로 우리 모녀는 돈뭉치를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사람들인데, 운 좋은 돈다발 주인이 하필 엄마 눈에 가장 먼저 띄도록 돈을 흘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할렐루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돈다발 주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듣지 못했다. 원래 그다지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지, 돈다발을 찾은 안도감에 인사할 여유마저 잃었는지. 엄마는 좋은 일을 하고 듣지 못한 말을 들으려고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대신 말해주었다. “잘했어!”한 껏 목소리를 높여 여러 번 말했다.

정말 잘 한 일이었다. 길바닥에 떨어진 만원, 그래 뭐 한 5만 원만 주워도 그냥 새해벽두 찾아온 첫 번째 행운이라고 믿을 텐데. 돈다발이라지 않나. 잘 한 거다. 그 돈 잃어버리고 심장이 철렁했을 주인을 생각해도 그렇고 두둑한 현금뭉치 앞에 자존심 구기지 않았으니 정말 잘한 일이다. 아마 새해를 우리가 어떻게 꾸려갈지 한 번  볼까?라고 하나님께서 귀여운 트릭을 쓴 건 아닐까? 그렇다면 하나님, 착하게 살기로 한 거  눈치채셨으니까 진짜 돈뭉치를 제 앞에 흘려주시는 건 어때요? 아, 아니다. 주인 찾아주기 애매하게 길거리 한 가운데 제 눈에만 딱 보이게 5만 원짜리 몇 장만 놓아두세요. 그럼 우리끼리 신호인 줄 알고 제가 잘 챙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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