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프로그램 속 부엌을 잔뜩 어질러 놓는 아이를 보다가 말했다.
- 내가 저렇게 했으면 벌써 엄마가 등짝을 짝 때렸을 걸?
- 너 자주 그랬어.
- 그러니까 말이야. 벌써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와서 등짝을 때렸겠지.
- ...... 초보였잖아. 엄마도.
그렇구나. 엄마도 초보였다. 하나의 존재를 보살피는 엄청난 과업을 부여받은 초보 엄마는 절대 완벽할 수 없는 실수투성이인데. 나는 그 때 일들을 생생하게 이토록 오래 기억하고 있으니 엄마에겐 억울한 일이겠다. 그래도 엄마가 나에겐 늘 최선이었다는 걸 의심한 적이 없다.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는 걸 알기에 고마웠다. 세상 어떤 엄마보다도 마음을 다 했다는 걸 나는 어릴 때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을 쏟을 수 있을까 신기하리만치 엄마는 나에게 집중해있었다. ㅅ 선배는 내가 누구를 책임지겠다, 위로하겠다는 오지랖 그만두고 이제라도 나를 위해 살라고 했다. 그러고 싶은데 내가 지금 엄마를 위해 딱히 뭘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입장에서 그런 생각은 좀 머쓱하다.
머리를 하고 나니 역시 기분이 좋다. 지저분한 것들의 흔적을 없애버리는 건 상쾌한 일이다. 방을 청소하거나 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리는 것. 가끔은 너무 많은 걸 버린 것이 후회되기도 하지만.
오늘 샴푸를 해주는 직원은 그동안 직원들과 달리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손님과의 대화를 위해 준비해 둔 영화며 드라마 얘기를 조근조근 풀어놓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최선을 다해 미소로 단답형의 대답만 주었다. 샴푸를 하려고 누운 자세에서 긴 대화를 하는 건 생각보다 민망한 일이다. 가벼운 웃음과 대꾸도 나름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사실 대화를 더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내가 묻고 싶은 건 다른 쪽이었다. 언제부터 일을 시작했는지, 왜 시작했는지, 지금 제일 좋은 건 뭐고 언제쯤 디자이너가 되는 건 지, 임시 공휴일에도 쉬지 못하면 보상휴가 같은 건 있는 지, 한달에 얼마나 쉬고 임금은 얼마나 받고 점심시간은 한 시간을 쓰는지 몇 시에 밥을 먹는 지, 하루에 몇명의 머리를 감겨주는 지, 손에 습진이 생길 때는 어떻게 관리하는 지. 와 같은 질문들을 하고 싶긴 하다. 미용실에 올 때마다 나보다 족히 열살은 어린 직원들의 샴푸를 받고 심지어 가벼운 마사지를 받을 때면 이런 질문들을 머릿속에 쌓아놓은 채 약간의 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내가 지불하는 돈에 이런 마사지 등의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머리를 다 하고 나온 미용실 입구에는 별 스티커로 우수 어시스턴트를 뽑게 마련해둔 판넬이 있다. 안경을 벗은 상태였기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지만 어렵게 기억해 낸 얼굴 위에 스티커 하나를 붙인다. 하필 판넬 맨 아래에 그 얼굴이 있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 스티커 한 장을 붙여주는 것으로 미안함을 털어낸다.
미용실에서 나는 경력이 오래된 디자이너를 만나본 적이 없다. 새로운 미용실에 가면 주로 경력이 짧은 디자이너를 붙여주는데 그렇다보니 약간씩은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염색을 하면 얼룩덜룩한 부분이 생긴다거나, 뒷 머리 길이가 짝짝이라거나 샴푸할 때 거품이 튄다거나. 그런 걸 트집잡아 본 적은 없다. 누구나 처음이 있으니까. 실수하면서 성장할 수 있게 시간을 줘야 하니까. 그건 나를 위한 마음이기도 했다. 이런 마음을 미용실 직원이 알리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디자이너들을 자주 만나 머리를 맡기다 보니 이젠 오히려 그런 쪽이 더 편해졌다. 괜히 노련한 디자이너 앞에서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의 처음에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 칭찬해주고 바로잡아주고 시간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최소한 부끄럽지 않게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처음은 다들 그런 도움이 필요하다. 프로가 아니니까 기다려주고 이해해줄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엄마가 초보일 때는 아이의 이해가 필요하다. 나는 이제 이렇게 커서야 그걸 알았다. 그때 이해해주지 못했으니까 지금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하고 여전히 프로가 되기 위해 자식들에게 마음을 쏟고 있는 엄마를 이해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