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고백하지만 당신들이 모르는 게 있어.
지하철에서 진지한 아주머니들의 토론을 듣게 된 동생이 해준 이야기다.
- 우리 애가 개미를 그렸는데, 다른 애들은 머리가슴 배로 그리는데 우리애는 머리 하고 배만 그린 거야. 그럼 다리를 그릴 자리가 모자라잖아. 그럼 어디에 그리겠어. 글쎄 머리에 그린 거야.
- 어머어머. 어떡해....
- 우리애가 좀 이상하지? 이거 봐 봐. 이렇게 그렸다니까. 창의력이 부족한 것 같지? 미술 선생님을 바꿔야 하나?
- 그래, 좀 다른 학원을 알아봐봐.
미술 전공자인 동생이 보기에는 유치원생으로써는 꽤 수준급 실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머리가슴 배가 아닌 머리, 배를 가진 요상한(?) 개미 그림을 놓고 아이의 발달 상태나 상상력, 지적능력에 대한 정상회담 급 토론을 마치고 이상한 개미 소녀를 창의력 학원에 보내기로 결론지었다고 했다. 창의력 학원에 다녀야 하는 게 엄마인지 애인지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동생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문득 아득했던 기억 속의 나를 끄집어냈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이제는 사라진 나.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실 나는 천재였다. 이 사실을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천재소녀로서 나는 4살 때 이미 한글을 깨치고 우리 골목에서는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에 동화책을 “완벽하게” 읽을 줄 아는 유일한 어린이였다. 게다가 왼손잡이였다. 아니 양손잡이였다. 어느 손을 더 많이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창의적인 사고로 세상을 뒤집을 만한 능력을 막 싹 틔우려는 미래의 영웅이었다. 나의 사고는 자유롭고 막힘이 없었으며 거침없이 뻗어나갈 힘이 있었다. 까맣고 비쩍 말랐던 유년시절을 회상해보니 아마 먹는 족족 사색과 상상에 에너지를 쏟느라 살찔 틈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나는 그냥 전국 수백만 명의 어린이 1,2,3... 과 같은 평범한 아이로 자랐고 지금은 기억력이 상당히 나빠서 고생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 내가 얼마나 천재였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말해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밝힌 대로 나는 기억력이 상당히 나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저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내가 평범한 전국의 어린이 1,2,3 중 한 명으로 살게 된 몇 번의 계기 중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드물게도(꽃마을이라 불렸던 우리 동네 약 15명 어린이 중엔 한 명도 없었으므로 드문 일인 것이 확실하다.) 양손을 모두 사용할 줄 알았던 나는 그날 거실에서 모나미 샤파로 연필을 깎고 있었다. 마침 우리 집에 놀러 온 오른손잡이 친구 둘이 내 옆에서 놀고 있었다. 연필을 샤파 입구에 끼우고 슥슥 갈리는 소리에 집중하려는데 엄마가 나를 방으로 불렀다.
친구들을 거실에 남겨두고 나는 엄마의 부름을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모나미 샤파를 들고 방에 들어와 딸깍, 문을 닫았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방의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비집고 들어와 모녀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 둥둥 아, 연필 한 번 깎아봐.
나는 시키는 대로 다시 모나미 샤파로 연필을 깎았다. 어머니 앞에서 떡을 써는 한석봉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다 그때의 경험 덕분이다. 연필 깎기를 시작하자 엄마의 입술이 일자로 변했다. 무언가 결심했다는 신호다. 연필 깎기를 마치자 엄마가 낮고 납작한 목소리로 말했다.
- 둥둥 아. 연필을 왜 왼손으로 깎아? 왼손으로 연필을 깎으면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려. 자 이렇게 오른손으로 깎는 거야. 다시 해봐.
‘아니! 어머니, 저는 몰랐어요. 왼손으로 연필을 깎는 아이가 우리 골목에 나 혼자였는데 그럼 나는 동네 바보가 되는 건가요? 그래서 이렇게 몰래 어두운 방에 저를 불러 친구들에게 바보인 것을 들키기 전에 왼손으로 연필 깎는 습관을 버리라고 알려주시는 거군요.’ 마음이 철렁했다. 그리고 아주 신중하고 어색하게 오른손으로 샤파를 잡았다. 손은 떨지 않았지만 심장은 비포장길 달리는 경운기처럼 떨렸다. 덜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아주 진지하게 내 인생 처음 오른손으로 연필을 깎아 보였다. 엄마의 일자 입술 끝이 살짝 풀린다. 합격이다.
- 그래, 잘했어. 왼손으로 연필 깎는 거 아냐. 오른손으로 깎는 거야. 알았지?
앞으로는 반드시 오른손으로만 연필을 깎기로 합의하고 나는 무사히 어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날이다. 나의 천재성은 어둠 속에 묻혔다. 커튼 사이로 우리를 엿듣던 빛줄기는 알고 있다. 나의 잃어버린 천재성을.
개미처럼 슬픈 코끼리
어둠이 먹어버리고 조금 남아있던 천재성을 모두 잃어버린 날이 있다. 1월 생으로 친구들보다 한 살 어렸지만 그들과 동시에 유치원에 입학한 나는 무려 3년이나 유치원을 다녔다. 초등학교 입학 전 마지막 1년은 미술학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다. 유치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수업을 했다. 선생님 취향이었는지 동물원을 자주 그렸다. 선생님이 먼저 도화지에 동물원을 그려 보이면 아이들이 대부분 그와 비슷한 동물원을 그리는 진행방식이었다.
그날은 코끼리를 그렸다. 코끼리가 워낙 커서 도화지에 코끼리를 그리고 나니 다른 동물 그릴 자리가 없었다. 코끼리를 색칠하면서 나는 나의 모든 천재성과 창의력을 쏟아 부었다. 그날 저녁 엄마에게 야단을 맞을 줄도 모르고. 엄마는 내 그림을 보자마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의 눈코입이 ‘이건 왼손으로 연필을 깎는 딸보다 더 나쁜 경우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 이런 코끼리가 어디 있어!
내 코끼리는 오른쪽 귀는 보라색, 왼쪽 귀는 분홍색, 코는 회색, 다리 1은 빨간색, 다리 2는 노란색. 이런 식으로 알록달록한 모양이었다.
- 둥둥 아. 코끼리는 회색이야. 자 다시 그려보자.
가르쳐 준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실행하기 좋아하는 엄마 앞에서 오른손으로 연필을 깎아보였듯, 나는 다시 회색 코끼리를 그리며 내 창의력에 회색을 입혔다. 그렇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전국 1,2,3.... 어린이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엔 과학 상자를 보기만 해도 기겁을 하고 제대로 조립할 엄두조차 못 내는 그런 아이가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왼손으로 연필을 깎고 오른손으로 지우개질을 하며 알록달록 코끼리를 그리는 아이로 남아있었다면 지금 엄마가 원하는 털 코트를 척척 사주는 재력가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제 곧 창의력 학원에 다니게 될 머리 배 2등분 개미를 그린 꼬마야. 너도 나처럼 기억력이 나빠서 과거의 천재성을 잊고 사는 전국의 지극히 평범한 어른 1,2,3이 되더라도 낙심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살아보니 그렇더라도 인생이 영 망한 것은 아니더라고. 우리가 앞가림하며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더라니까.
다만 네가 나보다 좀 더 자각 있는 어린이가 된다면 개미다리를 머리에 그려 넣었다고 너를 이상한 아이 취급하는 엄마와 상당한 갈등이 예상되는구나. 부디 평화로운 중재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