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
새해 첫 책을 산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의식처럼 새해 첫 주에 책 한 권을 산다. 새해 첫 책이라고 의미를 얹어 부담스럽게 고른 적은 없다. 평소처럼 그때 기분에 가장 적절한 책을 잡을 뿐이다. 올해 첫 책을 사고 보니, 그동안 샀던 첫 책들의 목록이라도 적어둘 걸 하는 후회가 생겼다. 올해는 성석제의‘꾸들꾸들 물고기 씨 어딜 가시나’로 정했다. 바람이 시린 시골마을 구들에 이불 덮고 앉아 삼촌의 노가리 까는 이야기가 듣고 싶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에 적절한 책이었는지는 좀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우선 초반은 내 선택이 맞는 것 같다.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방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묘수가 없다. 확실한 방법은 가구를 바꿔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것인데 그러자니 돈이 아쉽다. 내 집도 아닌데 돈 들여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역시 독립이 답인가 싶지만 부동산 경기를 보면 독립이 제일 어렵다는 게 문제다. 10년 가까이 일해도 “번듯한”전셋집 하나 가지기 여의치 않은 게 내 탓만은 아니라고 위로해보지만 앞으로 10년 더 일하면 “번듯한”내 집 가져볼 수 있을까에 시원스럽게 답할 수 없으니 점점 더 속이 아리다.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 봐도, 졸라매고 쥐어짜도 푼돈이 목돈 되는 마술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우린 이렇게 일해도 돈이 없을까 친구들과 커피를 마실 때도 이런 얘길 하게 된다.
친구 1 :너 얼마나 모았어?
친구 2: 야, 얘 돈 안 써.
나 : 그럼 뭐하냐. 큰 돈만 안 썼지 흐지부지 모은 게 없다.
어느 집에나 냉장고처럼 기본으로 있다는 흔한 모델의 명품가방도 산 적이 없는데, 해외여행도 몇 번 간 적 없고 출장 때 면세점 쇼핑도 잘 안 하는 나인데. 대체 내가 번 돈은 다 어디로 갔느냔 말이다. 정말 흐지부지다.
정신 차리고 고민하던 방 정리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니 뭐든 잘 버리는 내가 딱 하나 정리하기 힘들어하는 게 책이다. 지난여름 결단을 내리고 한차례 털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늘어가는 책들은 제대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쌓여있다. 책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책들이 앉을 변변한 공간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게 씁쓸하다. 책장을 짜는 것도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던데, 그러다 이사라도 가게 되면 공간이 애매해지는 거 아닌가. 협탁을 바꿔볼까. 침대 아래 수납공간을 두면 짐을 덜어낼 수 있을 텐데, 행거도 바꾸고... 생각이 돌고 돈다. 이쪽에서 시작해도 결국 가구 교체, 저쪽에서 시작해도 가구 교체 혹은 독립. 돈 드는 방법뿐이다.
요즘 나는 돈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한다. 나의 다음 10년이 불안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복권에 당첨되거나(소박하게 2등이라도) 갑자기 나에게 전재산을 상속하겠다는 독지가가 나타나거나 우리 집 벽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나는 매달 약간의 돈을 꾸려 살아야 한다. 이런 불안을 달래 줄 적절한 지질함과 웃음이 이 책에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 기분에 적절히 어울리는 책인 것 같다.
그때 했어야 했는데
동료 한 명이 LH나 SH공사 홈페이지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보는 눈을 키우면 부동산에도 밝아지고 그러다 보면 집을 옮길 묘수가 생각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동갑인데 넌 어쩜 그렇게 정보가 없냐며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응팔에선 은행이자가 무려 15%나 되던데, 그때 돈을 모았어야 하나보다. 그때 물려받은 주식이나 땅이 좀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지. 그럼 지금 효도도 떵떵거리며 하고 좋잖아. 작년 크리스마스 전에 나를 재벌 3세쯤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만들어준 30만 원은 진작 흐지부지 사라졌다. 역시 새해는 지난해의 흔적을 깔끔하게 털고 새로 시작하는 맛인가 보다. 쓰읍. 다 됐고, 새로 산 성석제 아저씨 책을 읽으면서 기분을 띄워보자. 두근두근.
아, 출근하기 싫다! 지난해 흔적이 새해까지 따라왔다. 출근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