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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Nov 01. 2019

3인칭 관찰자 시점

1. J는 ‘부분’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이 단어가 등장할 때는 불편한 의제에 대해 불명확한 의사표현으로 회피할때인데 나는 그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2. R은 ‘아니’ ‘틀렸어’를 한 시간에 두세 번은 사용한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이유를 본인은 모르는 듯한데 이제껏 그래 왔듯이 이후로도 누가 말해주진 않을 것 같다.


3. F는 소소한 기억력이 좋아서 수년 전 3사 드라마 방영 스케줄을 읊어준다. 우리는 시청률이 안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편이었다.


4. S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알고 지내는 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불안하게 한 적이 없다.


5. Y는 자신의 공을 여우처럼 챙겨가는 사람이다. 동생 말을 빌면 ‘노간지’인 것이다.


6. H는 어떤 우화를 생각나게 한다. 좋은 일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나쁜 일에 대해서만 ‘우리 참 힘들었지.’라고 말했다. 우리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서로 곤란해질 것 같아 참았다.


7. K는 부정확한 정보를 자랑하길 좋아한다.



8. Y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잃는지를 기가 막히게 실천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게 비극이다.


9. T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자꾸 권한다. 사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10. N은 궁금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고 전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길게 해서 나는 억지로 웃으면서 수시로 시계를 본다.


11. Z는 일방적으로 자신에 대한 정보를 밀어붙이는 편이다. 가끔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난감해서 망설이는데, 그럴 때도 Z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별스럽지 않은 정보로 나를 밀어붙인다.


12. T는 허를 찌르는 통찰을 가졌다. 정보에 대한 해석도, 유머도.


13. K는 항상 나를 가장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나를 아는 누구보다 나를 선의로 이해한다. 자주 부끄럽다. 들킬까 봐.


14. W는 내가 아는 모두 중 가장 패시미스트인데 내가 아는 모두 중 가장 날카로운 유머를 지녔다.



15. S는 싫다는 말을 안 한다. 억지로 회식자리에 끌려 나온 사람처럼 어색하게 웃으면 부정의 의미다.     


16. Q는 말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상처가 많아 보인다. 힘을 빼고 사는 것 같지만 나는  그 어깨에 힘이 가득이라고 느낀다.


17. G는 잘 때도 키가 크는 갓난아이처럼 대화중에도 속이 자라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사람은 언제까지 자랄 수 있을까?


18. H는 말투가 고와서 나는 그녀와 대화할 때 거의 완전히 속을 내보일 수 있다. 실상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19. A는 나를 가장 많이 울렸는데 그 얼룩이 아직 안 지워졌다.


20. E는 사랑받은 사람은 어떤 어른이 되는지 알게 해 주었다. 곁에 두면 향기 나는 사람이라 너무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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