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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Nov 28. 2019

전쟁은 노래로

우리 동네  애들은 같은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가 포함된 카세트테이프도 같은 날 동시에  샀다. 메칸더 메칸더 메칸더 브이. 랄라랄라랄라랄라 공격 개시. 만화 주제가 치고는 구슬픈 구석이 있다. 흐릿한 기억 속엔 만화 내용도 애잔하고 묵직한 정서가 있었던 것 같다. 주제곡은 제법 장엄했고 후크송도 아닌 것이 쉬는 곳 없이 숨 가쁘게 가사가 이어졌다. 그 매력에 빠져 메칸더 브이 로봇은 서너 개쯤 보유하고 있었다.


메칸더 브이 다음으로는 철인 28호를 좋아했다. 장식도 별로 없고 대충 그린 2등급스러운 매력이 좋았다. 반에서 선생님들이 반에서 1-5등 45-50등은 기억해도 20-30등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로봇 세계에서 철인 28호는 20등에서 30등 사이 학생 같았다. 우리 골목 애들도 마징가 제트나 로보트 태권 브이를 좋아했다. 철인 28호를 좋아한 건 나 포함 둘 뿐이었다.


철인 28호 조립 로봇을 사러 간 적도 있다. 혼자는 처음이었다. 조립 로봇은 권위자를 끼고 가야 잘 고를 수 있는 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다. 독립적인 행동을 하는 스스로가 대견하고 겁도 났지만 문방구 문을 대범하게 열고 들어가 이것저것 재다가 제일 싼 건 제끼고 두세 번째 싼 녀석으로 골랐다. 너무 좋은 걸 사기엔 내 실력이 못 미더웠다. 결국은 친구 도움으로 완성한 조립 로봇을 손에 쥐고 철인 28호 만화를 보면 끈끈한 연대의식이 느껴졌다.



로봇 만화, 공주 만화, 동물 만화 보느라 바쁜 비디오테이프 시절, 엄마가 필수로 보여주는 시리즈가 있었다. 강시 시리즈, 사탄의 인형(나는 무서운 건 질색하는데 왜 어린애 심장 벌렁거리게 꼭 챙겨보게 했을까), 오멘(왜 이런 걸 잘 때 틀어주지), 그리고 들장미 소녀 캔디였다. 하루에 여러 편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하루 한 편씩 완급을 조절했다. 엄마가 남들 앞에서 울지 말라고 철저히 교육했던 것도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때문이었나. 메칸더 브이, 플란다스의 개, 들장미 소녀 캔디까지. 뭣도 모르는 여서일고여덟아홉 살이 보기엔 굴곡진 서사와 무게감이 상당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쨌든 만화 주제곡을 벗 삼던 나도 드디어 첫 가요 테이프를 사고 첫 팝송 테이프를 사는 때가 왔다. 그리고 마침내 팝송 테이프를 선물 받는 날이 왔다. 어른스러운 취향으로 승격된 것 같아 으쓱했다. 그 선물을 준 이는 버섯머리로써 포장을 벗겨내자 나타난 것은 머라이어케리의 “without you” 가 포함된 앨범이었다. 사전 찾아가며 가사를 외웠지만 머라이어 언니는 노래를 과하게 높게 부르는 사람이었고 초반 몇 마디 외엔 음이 높아서 가사를 내질러볼 수도 없었다. 묵음으로 따라 불러 보는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more.


지구를 노리는 악마의 그림자를 무찌르는 메칸더 브이의 고뇌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겠다는 결연한 캔디의 울분, 못살겠다 못준다 내지르는 머라이어 캐리의 절박함을 듣고 자란 나는 '좋은 건 좋네.' 하는 소신 없는 사람 혹은 이것저것 웬만큼 좋아하는 평이한 사람으로 크는 중이었다. 멜로디, 음색, 악기 뭐든 좋으면 귀를 내어줬지만 그중 제일은 가사였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어떤 노래의 가사는 문학 자체였다. 한 편의 시와 같고 메칸더 브이와 플란다스의 개, 캔디 못지않은 거대 서사를 풀어낸 소설 같았다. 나를 처음 서사와 의미로 채워진 음악 세계로 안내한 것이 신해철이었다. ‘도시인’의 애수, ‘날아라 병아리’의 성장통,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지혜. 음악도시를 듣고 고스트네이션을 듣느라 밤을 붙잡았다.



고상하지도 않고 전문적인 것도 없고 그저 좋은 건 좋지 하며 듣는 노래지만 위로하고 반성하게 하고 대신 울어주는 노래 덕분에 대충 정리라도 하면서 살았다. 플레이리스트가 쉬지 않는만큼 내 인생은 부산스러웠다. 크게 내세울게 없었지만 먼지같은 근심과 돌덩이가 굴러다녔다. 노래가 있어서 다행이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는 도시에서 빌딩 속을 헤매이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을” 때도 노래를 들었다. (조용필, 꿈)


“흔한 여행 한번 가기 힘들어. 뭐 좀 할까 하면 잠은 쏟아지고 괜히 바빴던 하루 내게 남은 건 뭘까

허무하기만 해. 알 수가 없는 친구들 얘기 언제부터 이만큼 멀어진 건지 그저 옛날 얘기만 하다 돌아오는 길 멋쩍은 웃음만 날” 때도 듣고, (스윗소로우, sunshine)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 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버려야 했던 날을 버티고 나서 찾아온 지금, 어쩌면 정말 어른이 되는 순간”에도 듣고, (브로콜리 너마저, 서른)


가사를 곱씹고 가사 없는 곡을 빼곡하게 상념으로 채우며 듣는다. 어쨌든 듣는다. 거의 종일 플레이리스트가 돈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이 온통 난장판일 것 같은데 다행이다. 이제 엄마는 힙합을 듣고 동생이는 뭘 듣는지 도통 모르겠고 나는 옛 노래를 또 듣는다. 각자의 노래로 전쟁을 막으며 산다. 메칸더 브이가 정의와 평화를 지키고 철인 28호는 은하 별 끝까지 날아 악마를 무찔렀지만 나는 최대한 오늘의 걱정을 막아낼 궁리로 살고 있다. 그렇게 노래를 무기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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