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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Dec 29. 2019

행복의 나라로

올해의 감사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한 시기엔 바보 거나 착하거나 사이에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다. 무게중심을 잃고 실수하는 동안 상처 입은 게 죄다 남 탓인 줄 착각하는 시기를 보냈다. 뭐든 마음이 편한 대로 해야지 하다가 애매하게 화를 내보다가 꽁하다가 틀어지다가. 서투르게만 대처했고 여전하다. 아침엔 엄마한테 괜한 짜증을 냈다. 밤에 엄마가 와서 어이없네 하고 동생이와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책망했다.


엄마: 안 하던 밥을 왜 한다고 전화를 해서 화를 내는 거야.
둥둥: 나 밥솥 다룰 줄 안다고. 근데 엄마가 자꾸 밥솥 못 만진다고 무시하니까 그렇지.
엄마: 그렇게 화를 내면서 밥을 하길래 순댓국 있다고 오랜만에 밥을 먹으려나보다 했더니.
동생: 자는데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우당탕탕 오랜만에 밥 좀 한다고 유세 부리는 거야 뭐야. 엄마랑 싸우면서 밥을 했으면 자기가 먹든지 나한테 밥 해놨으니까 먹으라고 생색을 내든지 할 줄 알았는데. 그냥 화를 내고 밥을 한 거야?
엄마: 아주 어이가 없어. 그렇게 밥을 왜 해. 먹지도 않을 거면서.
둥둥: (화를 내려고 한 게 절대 아니었고 나는 엄마가 쌀을 불려놓았길래 오랜만에 좋은 마음으로 밥을 해보려고 한 것이었는데. 미안.) 엄마가 자꾸 무시하니까 그렇지.


동생이랑 엄마에게 어이없는 깔깔깔 에피소드를 하나 남겨주고 말았는데 결국 미안하단 말은 안 하고 변명을 하고 만 것이다. 좋은 마음전부가 아닌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해보고 화가 나는 마음을 누르고 한 박자 느릿하게 생각해보고 하고 싶은 말을 미뤄보고. 그게 어려운 것인데. “slow to anger rich in love” 아무리 다짐해도 오늘도 그게 어렵다.



그 어려운 게 잘 되는 때가 있다. 요즘처럼 촉수가 바짝 서있는 때인데 지난 한 주간 우리 자매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심장을 가진 사람들로 살았다. 서로 이름만 조금 크게 불러도 “왜! 왜왜왜! 무슨 일인데-” 하고 놀라 자빠지다 보니 별것이 다 감사한 지경이다. 마음이 작아지니 작은 일들이 눈에 보이고 예상치 못 감사가 넘치는 은혜랄까.


세무서 언니가 “어려운 거 아니에요.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에요. 겁먹지 마세요.”라고 말해주면 고맙고, 상가 주인이 “꼭 잘 돼서 성공하세요.”라고 인사해주면 힘이 나고 친구들이 도와주려고 한 마디씩 보태주면 찡하고 그렇다. 편의점에서 냉장두유를 집었더니 주인아저씨가 "따뜻한 거 여기 있어요." 라면서 가져다주면 감동한다. 통신사 직원이 전화해서 남은 포인트 쓰는 법 안내해주고 가족 할인 꼭 받으라고 말해주는데 고마워서 “연말 잘 보내세요.”라고 화답했다. 어떤 사람들에겐 작은 친절이 큰 힘이 된다. 나 같은 사람에게.



더 크게 감사할 일들도 많다. 매일매일 많다. 그렇게 기억해도 또 어느 날은 동생이의 말을 통해 아직도 감사할 일이 많구나 느낀다. 


언니, 그래도 우리가 원하는 데로 다 되고 있어. 서울보다 송도를 원했는데 결국 송도로 왔고, 전망 좋은 데 가고 싶었는데 전망 좋은 자리로 왔잖아. 월세도 깎았고 전기공사도 필요 없어졌고 렌트프리도 연장받았잖아. 과정이 험난해서 그렇지.


감사도 자꾸 찔러줘야 기억날 것 같다. 과정이 험난하면 감사가 묻힌다. 우리 자매는 서로 힘을 내려고 요즘 고마운 일을 서로 말한다. 나에게 없는 것이 너에게 있어서 감사하고 도와주는 모든 말과 행동이 고맙다. 오늘도 잠들기 전에 기도한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내일 또 벌렁거리는 마음으로 부딪히지만 결국은 감사하다고 기도한다.


고마운 일이 많아지면 말도 좀 더 친절해지고 화는 줄어드는데 내 남은 화는 엄마에게만 털어내고 있나 보다. 엄마 미안. 2019년 안녕. 고마운 일이 많았던 한 해. 다 기억 못 하지만 분명 지금 머릿속에 있는 것보다 좋은 일이 더 많았을 거야. 내년엔 더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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