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실을 동생이 몰라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완전범죄(사실상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으나 도의적인 면에서 죄의식을 느끼고 있으니 범죄의 범주에 넣었다.) 나에게 처음 그 존재를 알려준 것은 동생이었다. 호텔이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떼부터 거기 뷔페가 소문이 좋다더라. 우리가 큰돈 써서 호텔 밥 한 번 먹어볼 만하지 않은가. 하고 내 귀를 흔들었다. 작은 콧바람에도 나풀거리는 내 귀는 동생이 제법 준비한 듯 보여주는 사진에 넘치게 설득당했다. 마침 오래 끌었던 다이어트에 질려버린 시기였다.
그래, 우리 한 판 먹어보자! 2월의 어느 날 휴가를 내기로 구두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인연은 쉽게 닿지 않았다. 엄마의 갈비뼈가 하필 그 겨울에 부러져서 긴 병원 생활을 했고 우리는 입맛을 다시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나 모든 약속이 그러하듯 다음이란 오지 않는 시간이다. 지금 아니면 의미 없다.
결국 몇 해가 흘러버렸다. 종종 지인들에게 이상형을 고백하듯 있잖아.. 하며 그 뷔페 이야기를 하곤 했다.제집 드나들 듯 뷔페를 맛보러 다니는 블로거들에게 패배감을 느끼기도 했다.
역사는 갑작스레 일어났다. 사연 많은 한 해를 보냈고 지금도 매일 역사를 쓰고 있는 나와 친구는 우리의 고달픈 노동이 좋은 음식으로 위로받아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결단력 없는 팔랑귀는 추진력 좋은 팔랑귀에게 끌려 다니는 법.
둥둥아, 우리에겐 지금 포시즌 뷔페뿐이다.
그 순간 내가 어찌 동생을 떠올리지 않았으랴. 포시즌 더 마켓을 알려주고 함께 가자 굳게 약속 했던 몇 해 전 겨울을 어찌 잊겠나. 그러나 동생은 최근 다수의 경조사 때문에 지출이 많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냈다. 그래, 이건 배려다. 때로는 모르게 하는 것이 진정한 배려다. 나는 몰래 반차를 냈다. 작은 죄책감을 십자가로 지고 가겠노라 생각했다.
나 정말 떨려. 잘 해내고 싶은데. 긴장된다.
나는 하루 전 저녁부터 준비할 거야.
지혜롭게 접시를 채우고 후회 없이 미각을 활용해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와 혜안으로 만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나는 이미 미래를 짐작하고 있었다. 맛있는 게 맛있지 뭐 하면서 먹고, 나중에 친구가 인상적이었던 메뉴의 맛을 설명할 때 ‘그랬던가?’ 하고 머쓱해 하겠지. 그런 자기실현적 예언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맛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으며 특히 디저트 영역에서 만큼은 최대한 많은 메뉴를 또렷하게 기억하려고 애썼다.
하필 옆자리에는 "점심은 늘 여기에서 간단히 해결하는 편이죠. 메뉴 정하기 귀찮고 익숙한 것이 좋을 때면 이만한 것도 없거든요."라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연말이라 그런 것인지, 늘 그런 것인지 실버 그레이 모임도 많았고 또 다른 옆자리 언니 두 명은 시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해 유산과 땅값, 부동산 투자에 이르는 대화에 여
그래, 늘 먹는 익숙한 메뉴를 대하는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 나는 오늘 모든 메뉴를 품을 여유 따윈 없다. 전략적으로 검증하고 집중해야지. 내가 집중한 것은 쫄깃한 랍스터 구이와 참치회, 치즈피자였다. 두 접시쯤 비우고 잠시 디저트 구역에 다녀봤다. 우선, 마카롱, 크림 브륄레, 슈는 먹어야 한다. 케이크는 시간을 두고 정하자. 그러나 페이스 조절에 서투른 초보는 디저트에서 힘을 잃었다.
외투를 챙겨 호텔을 벗어날 땐 ‘완성했다’싶은 성취감도 챙겨 나왔다. 가끔은 이런 선물이 좋다. 공짜 없는 인생에서 나에게 인심 쓰는 날. 일 년 전 일이다. 그해 겨울에 쌩쌩 바람 부는 날. 배불리 먹고 다음을 기약했다. 생각나는 건 그날의 맛보다 그날의 뿌듯함이다. 나를 잘 먹이고 어깨 두드려준 것 같은 행복. 내가 나에게 챙겨준 보너스라 좋았다.
다시 일 년이 지났는데 매년 겨울이 다르다. 내가 서 있는 풍경이 다르고 마음도 다르고. 돌아보는 것이 다르다. 내일 보너스 한 번 더 타러 간다. 가을 단풍 보러. 사는 게 아무리 파삭해도 낭만은 챙겨야지. 가을 보너스 타러 가야지. 낭만 단풍은 공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