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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Feb 01. 2016

좌안에 기대어

아. 둥둥 고객님. 한 가지 전해드릴 말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절절매며 전화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바로 상상할 수 있는 목소리였다. 안경점 직원은 설 연휴 때문에 주문한 물건이 주일에서 열흘 가량 늦어지게 되었다어쩔 줄 몰라했다. 10년 쓴 안경을 열흘 더 쓴다고 뭐 대순가. 아무렇지도 않아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내 대답에도 여전히 미안한 목소리를 풀지 않은 채 그는 통화를 마쳤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그런 곳들 중 한 곳 지난주 일요일 방문했다. 안경점에 간 것은 정확히 10년 만이었다. 대학 졸업 직후 안경을 바꾼 건 렌즈가 깨졌기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시력이 더 나빠진 것 같아서였다. 안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어서 나는 인턴 주제에 일주일이나 결근을 했다. 회사에선 어이없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깨끗하게 잘 쓰셨네요. 오래 쓰셨는데 상태가 좋아요.      


특별히 아낀 것도 아니지만 상태가 좋다고 하니 내가 그렇게 관리를 잘했던가? 으쓱하게 된다.  1년 가까이 눈이 침침해서 렌즈 도수가 맞지 않다고 느꼈지만 안경을 바꾸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온 참이었다. 6개월에 한 번씩은 안과에 가야 하지만 귀찮기도 했고 겁이 나서 십 년 간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10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아니었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한 번도 못 가게 된 것이다. 비싼 가격도 한몫했다. 나름 특수 렌즈라 값이 상당하다.     

안경을 처음 쓴 것은 네 살이었다.


TV를 너무 가까이에서 본다고 엄마에게 엉덩이 발차기를 자주 당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엉덩이를 손으로 감싸고 TV를 봤어야 했는데. 어느 날 엄마와 아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아이가 자꾸 눈을 찡그리니 안과에 데려가 보라고 말해주었다. 그 날로 엄마는 발차기를 그만두고 나를 안과에 끌고 갔다. 시력이 매우 나쁘게 나왔다. TV를 가까이에서 보는 게 당연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TV뿐이 아니라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상당히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안경점 아저씨가 읽어주었으니까.      


이 정도면 꽤 불편했을 텐데요. 어머니는 아이 행동이 이상한 걸 못 느끼셨어요?     


‘이상한 걸 느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선생님! 엄마는 그러기는커녕 제 엉덩이에 얼마나 많은 발차기를 날렸는지 아세요? TV를 가까이에서 본다고 말이에요. 그럴만한 이유가 여기 이렇게 시력 검사로 증명되었잖아요? 그런데 아직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어요. 선생님이 대신 뭐라고 좀 크게 야단이라도 쳐주신다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엄마에게 반성할 기회를 주기로 하고 가만히 엄마를 쳐다보았는데 엄마는 시력검사 결과에 대해 질문하느라 바빠 보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중요한 인생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꽤 자세히 기억한다. 안경을 맞추기까지 검사도 많았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안과에 여러 번 갔고 렌즈를 맞추는 날도 검사만 하루 종일 걸렸다. 긴 대기시간  시력검사를 했고 로봇 안경 같은 테스트 렌즈를 끼고 한 시간 동안 복도를 걸어 다녔다. 실제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제대로 검사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검사를 반복하고 복도를 서너 시간쯤 걸어 다니고 나서야 나의 렌즈가 낙점되었다. 내 인생 첫 번째 안경은 빨간색이었다. 우리애가 조심성이 없다며 선생님께 안경 줄도 몇 개 서비스로 받아냈다. 그날부터 토비콤도 매일 세 번씩 먹었다.     

처음 쓰는 거라 한 1~2주일은 어지러울 거예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첫 안경을 받은 날.  선생님의 말과 달리 나는 바로 적응했다. 시야가 선명하니 놀기엔 더 좋았다. 다만 엄마의 잔소리가 더 많아진다는 부작용은 선생님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안경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해라. 어지러울지 모르니 가만히 좀 있어라. 안경 줄에 손 걸리지 않게 조심해라. 안경 좀 올려 써라. 눈에 좋다니까 콩 많이 먹어라. 과격한 둘째 딸도 자주 혼났다. 언니 안경 조심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성질 하는 둘째 딸의 거침없는 가격에 안경이 일 년에  한번씩은 깨졌다. 그때마다 내 엉덩이를 향하던 발차 같은 손 방망이가 둘째 딸 엉덩이에 쏟아졌다. 둘째 딸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적 없는 나의 분을 풀어주는 엄마의 손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안경을 쓴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하고 속상한 일이었다. 엄마에게는 털어낼 수 없는 죄책감을 심어주는 상징이다. 엄마는 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해서 거의 먹은 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는 안경을 벗어버리고 시원스럽게 살아보는 상상을 자주 했다. 몇몇 시력교정술 있지만 나의 경우엔  그것도 간단하지가 않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안경을 쓴다.      


10년 만에 안경을 바꾸는 날. 결심은 1년 전에 했지만 이제야 안경점에 간 것이다. 당연히 엄마와 함께. 검사과정은 장비나 기술이 상당히 많이 발전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이나 질문은 4살 때나 34살 때나 다르지 않다. 다만 내가 더 명확한 의사표현이 가능해졌다는  것뿐.      

시력이 많이 나빠졌나요?     


엄마가 물었다.     


아... 네. 좋지 않은 경우이긴 한데 오른쪽 시력이 좀 많이 떨어졌네요.
많이 나빠진 건가요?
아... 네, 좀 많이 그렇게 되었네요.      


예상은 했지만 실제 검사 결과가 그렇다니 걱정이 되었다.      


어떤 일 하세요?
아... 사무직이에요.
모니터 하루 종일 보시는?
아, 네...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시력에 대한 걱정을 할 때면 무서운 말들을 쉽게 하곤 했다. 네가 눈이 안 보이게 되면 엄마 눈을 주겠다는 둥. 그런 무서운 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해서 더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최근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했다. 2G 폰을 계속 써야 했는데. 컴퓨터 모니터를 종일 들여다보는 것도 문제다. 얼마 전 블루라이트 차단 프로그램을 설치했지만 그런 게 큰 효과가 있을까. 집에 가는 길에 눈 영양제를 사야겠다. 안경이 불편하지는 않았느냐 질문 하기에 큰 불편은 없었다고 했지만 엄마가 잠시 자릴 비운 사이, 사실은 1년  전쯤부터 눈이 좀 침침해졌고 많이 피곤하기는 했지만 대충 참았다고 말했다.     

시력검사는 제법 정밀해 보였고 안과에 갈 필요가 없어서 좋구나 생각했다. 그런 건 1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엄마는 그래도 시력검사는 안과에서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오늘은 별 말이 없는 것을 보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쓰는 안경엔 난시교정 기능이 필요 이상으로 있어서 오히려 더 피곤할 수 있다고 했다.      


좌안이 주안이라 우안 시력이 떨어져도 잘 모르셨을 거예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시력 검사를 마치고 테를 고르고 나니 렌즈 카탈로그를 보여준다. 특수렌즈를 써야 하는데 국내 렌즈는 25만 원, 독일산 수입 렌즈는 52만 원. 앞뒤가 바뀌었군. 당연히 기능은 수입 렌즈가 월등하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지 너무 명확하다. 진작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엄마의 협상은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다 안경을 써서 단골로 오래 다니던 데가 있는데 얘가 꼭 여기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온 거예요.
(내가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엄마 의도는 알겠어요.)
이번에 하고 나면 우리 가족 다 여기에서 계속 안경 하려고요.
(아, 그건 맞는 말이에요. 특히 여기 계신 우리 엄마는 핸드폰이며 안경을 일 년에 한두 번 씩은 꼭 잃어버리는데 그게 또 값이 적잖이 나가는 것들이거든요.)
아... 하하하... 이것도 많이 깎아드린 거예요.
이렇게 비싼데요? 에이~그러지 말고 잘 해줘요. 너무 비싸. 우리 앞으로 여기 계속 온다니까.
아... 하하하하하...     


엄마는 노련한 사냥꾼. 목표를 정하고 사정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제가 사은품 많이 챙겨드릴게요.
그런 거 챙겨주는 거야 뭐. 값을 깎아줘야지.
아... 많이 해드린 건데.
(맞아요. 엄마. 가격표대로라면 우리는 벌써 74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할인받은 거지만, 여전히 비싸니까 엄마 파이팅!)
아... 그럼... 제가 만 원 더 깎아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만원 깎아주고 사은품 줘요.      

그렇게 59만 원을 일시불로 쓱. 긁고 사은품 샴푸와 핸드크림 (안경과 무슨 상관이람)을 받았다.       

에이~뭐 좋은 것도 아니네.      


엄마는 결코 쉬운 손님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한마디를 남겼다. 이래서 나는 안경점에 절대 혼자 올 수가 없다. 엄마 멋쟁이!      


연초부터 목돈이 나간다. 연말 소득공제나 꼼꼼히 받아야지. 곧 새 안경이 나온다. 10년 만에 새 안경을 쓴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안경을 바꿔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시력검사도 자주 해야겠다. 검사와 확인이 필요한 게  시력뿐은 아니다. 좌안에 기댄 우안이 시나브로 시력이 약해진 것처럼 지금 나이 어느 부분이 어딘가에 기대어 약해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몇 주전 퇴근길에 10여 년 전을 생각했다.


퇴근길엔 생각을 많이 한다. 지하철 안에서는 멍 때리기 좋고 멍 때리면 저절로 생각이 몰려오므로. 10여 년  전 Maja와 나는 같은 책을 읽었고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Feeling is liar." 감정이 우리를 얼마나 자주 속이는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속는지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나쁜 감정의 실체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도 쓰여있었다. 금요일 퇴근길, 그때 우리의 대화를 다시 떠올리며 나쁜 감정이 나를 괴롭힐 때는 다시 한 번 감정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쁜 감정과 대척점에 있는 기억들을 꺼내보면서 나쁜 감정으로부터 나를 객관화 시길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미얀마에 있고, 공연장에 있고, 태국에 있고,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고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사회생활 1주년과 2주년을 기억해주고 저녁을 함께 먹던 사람들이 있었다. 앞으로 더 좋은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격려의 말을 짧고 무겁게 남겨주던 이들이다.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는 건 자주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빈번하게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때문에 감정의 소요를 겪게 된다. 감정이 나를 속일 때마다 걸려 넘어지지 말자. 자꾸 속다 보면 어딘가에 기대어 한없이 약해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어느 날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 수 있다. 감정은 나를 속일 수 없다. 고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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