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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Nov 30. 2015

체르니 30번짜리 사람

#1 


피아노 좀 친다는 소릴 듣는 애들은 모두 적어도 체르니 40번 정도까지는 배운 애들이었다. 불행히도 나는 건반으로 소리를 낼 줄 아는 정도만 피아노를 배웠다. 수많은 샵과 플랫을 정복하지 못하고 그 전 언덕에 풀썩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뱃속에서부터 아들로 오해받을 만큼 산만했던 나는 피아노 앞에 10분을 못 앉아있었다. 체르니 30번까지 배우는 것도 남들보다 몇 배 수고로운 일이었다. 결국 열 살 때 막 결혼한 새 신부 숙모에게 배운 것을 끝으로 나는 피아노를 그만뒀다. 피아노가 나를 그만뒀는지도 모른다. 그 후로는 꼭 쳐보고 싶은 곡이 생겨도 악보를 읽으려고 애쓰다 결국 포기하는 일을 수시로 겪었다. 샵과 플랫이 3개 이상 넘어가면 손가락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포기가 너무 빨랐던 나를 그때마다 원망했다. 더 배웠어야 헸는데!


생각해보니, 섣불리 포기한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 더 매달리고 기를 쓰지 못하고 적당한 선을 넘지 못했다. 인내심이 부족했다. 체르니 40번을 치기 위해 느끼는 심리적 압박과 반복되는 연습의 무게를 나는 재빨리 벗어버렸다. 빨리 멋진 손놀림으로 건반을 치고 싶은 마음만 앞섰고 샵과 플랫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해 훈련받는 걸 두려워했다. 나는 딱 그만큼이었다. 체르니 30번만큼의 사람. 지금은 건반을 만져본 것도, 노래를 연주해 본 것도 오래되어서 악보 읽는 법도 가물가물하다. 이제와 다시 배우려니 예상되는 수고가 10살 때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때 넘지 못한 돌부리가 지금은 돌덩어리가 된 것 같다. 


<출처: 영화'호로비츠를 위하여'>


#2


포기와 미련의 경계는 늘 지나 봐야 안다. 끈기인지 집착이었는지는 결과로 판가름 난다. 좋은 선택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나는 자주 무엇이든 설익은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을 내린다. 체르니  30번짜리 선택을 한다. 


#3 


나는 기다리는 게 참 싫다. 참 싫은 일인데 잘한다. 억지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나는 잘 버틴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통지표에 선생님이 “한문에 대한 흥미가 높고 성취도가  좋음”이라고 써줬다. ‘에? 난 한문이 정말 싫은데.’ 선생님이 그렇게 써 준 건 그 학기 한문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시험공부할 때 정말 외우기 싫은 한문부터 해치우려고 달달 외웠는데 뜻밖에 중간 기말고사 모두 한문 성적이 좋았다. 가장 싫어하는 과목에서 가장 괜찮은 성적을 받아 급기야는 통지표에 이런 당황스러운 코멘트를 받게 된 것이다. 싫었지만 잘했다. 한문 시험공부처럼 기다리는 건 참 싫다. 그렇지만 기다릴 때가 되면 나는 제법 오래, 끈기 있게 잘도 기다린다. 약속시간을 밥먹 듯 어기는 친구를 두 시간 넘게 기다리는 일이 가끔도 아니고 종종 있다. 집에 와서 두 시간짜리 짜증을 부리면 동생은 그냥 집으로 오면 되지 미련하게 기다렸다고 한마디 한다. 그래, 기다리지 않고 그냥 오면 되는데 나는 기다린다. 참 싫어하는 일인데. 


<출처: '응답하라 1994'>


#4 


언제 기다리고 언제 돌아서야 하는지 좋은 선택을 하는 건 내가 잘 못하는 일이다. 미련하게 기다리거나 미숙한 판단으로 후회를 부른다. 그건 내가 체르니 30번을 넘지 못하고 피아노를 그만둬버리는 종류의 사람일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버릇 때문일 것이다. 열 살 때는 미숙한 판단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별거 아니었는데 이제는 대가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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